북한 인권을 거론하고 연평도를 방문한 민주당 지도부의 최근 행보에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종북 논란’을 피해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어 보인다. 전병헌 원내대표(가운데)는 북한 인권 관련 법안 추진과 관련해, ‘남북 사형제 폐지 합의’의 사례를 들었다.국회사진기자단
“인권 타령하며 돈벌이하는 날라리 기독교 놈들.”
지난해 12월 북한의 대남 선전용 누리집 ‘우리민족끼리’에 올라온 댓글의 일부 내용이다. 기독교 단체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은 이른바 ‘기획 탈북’에 관여한 이들이 북한 내 인권침해 현실을 ‘폭로’하는 데 대한 강한 적개심이 엿보인다. 북한은 외부에서 제기하는 인권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2년도 채 안 돼 변한 민주당 태도
최근 국내에서 논의 중인 북한인권법과 관련해 <조선중앙통신> 논평은 “우리의 존엄 높은 체제를 헐뜯는 또 하나의 엄중한 도발”(1월14일)이라며 맹비판했다. 논평은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가 전면적으로 구현된 우리 공화국에는 적들이 떠드는 ‘인권 문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또 존재할 수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진정한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북한의 이른바 ‘우리식 인권’이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은 마냥 묵과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심층면접을 바탕으로 통일교육원이 펴낸 <2013 북한인권백서>를 보자. 2000년대 들어 줄어드는가 싶던 공개처형이 2007년 이후 다시 늘어났다. 북한 쪽은 존재를 부인하지만 정치범수용소가 계속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토대’(성분)에 따른 차별과 뇌물 수수를 통한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종교·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거주·이전·여행의 자유는 제한적이다. 전반적인 식량 증산에도 불구하고 가용 식량이 부족하고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부족해 식량권과 건강권도 침해받는다. 근로나 교육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민간단체인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역시 탈북자의 증언에 기초해 펴낸 같은 제목의 백서에선, 전체 인권 피해 사건과 피해자가 각각 10%, 11% 정도씩 늘었다고 설명한다. 최소한 북한 스스로 주장하듯,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천국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말 장성택 전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의 처형도 이처럼 열악한 인권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비판에 말을 아끼는 통합진보당조차 이 사건에 대해선 ‘인권’의 시각에서 접근했다. 1월16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남과 북 모두에서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꾼다”고 답했다.
이 사건에 가장 먼저 인권의 잣대를 들이댄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16일 “북한의 폭정과 극악무도한 피의 숙청, 공포정치에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북한의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북한인권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가 장 전 부장을 처형했다고 보도한 지 사흘 만이었다.
오래지 않아 야당 지도부도 화답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북한의 인권이 개선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그걸로 문제제기할 이유는 없다”(1월13일)고 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같은 날 “민주주의와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민주당은 북한 인권 문제도 직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한 것이다. 2년도 채 되지 않은 2012년 6월 이해찬 전 대표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을 ‘내정간섭’이라고 한 데 비추면, 상전벽해와 같은 태도 변화다. 이를 놓칠세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이튿날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좋은 북한인권법이 반드시 통과되길 기대한다”며 쐐기를 박았다.
보수·극우 성향 단체들 ‘돈줄’ 우려
전망은 밝지 않다. 여야가 입을 맞춰 ‘북한 인권’을 노래하는 것과 달리, 법안의 실질적인 통과는 힘들어 보인다. 양쪽이 추진하는 법안의 내용이 너무 달라서다. 새누리당은 ‘북한인권법’을, 민주당은 ‘북한인권민생법’을 만들겠다고 말한다(표 참조). 열쇳말은 ‘인권’과 ‘민생’으로, 양쪽은 서로 자신이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한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민생이랑 인권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민생은 남북경협(경제협력) 얘기”라고 말했다.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은 “김한길 대표가 (말하는) 민생,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이건 우리가 대북정책을 통해서 전반적으로 해결하는 거지,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반면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북한인권법에 대해… 새누리당은 규제에, 민주당은 인도적 지원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 다르다”고 했다. 문병호 민주당 의원은 “저희 법안은 채찍과 당근을 같이 병행해서 하자는 것이고, 새누리당은 채찍만 들자는 취지의 법안”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쪽이 2003년 한나라당 시절부터 줄기차게 추진해온 북한인권법안은 번번이 반대에 가로막혔다. 법안에 등장하는 ‘북한인권재단’이 장벽이었다. 새누리당 쪽 법안에서 이 재단은 △북한 인권 실태 조사·연구 △북한 인권 관련 국내외 민간단체 지원 △북한 인권 관련 홍보·교육·출판 등을 주요 사업으로 맡는 것으로 돼 있다. 통일부 장관의 지도·감독을 받기에, 별도 법인이라 해도 실질적으로는 통일부 산하 기관이다. 통일부가 지원할 ‘북한 인권 관련 국내외 민간단체’가 어디인지는 지정돼 있지 않다.
비판하는 쪽에선 북한인권재단이 반북운동을 벌이는 보수·극우 성향 단체들의 ‘돈줄’이 될 것을 우려한다. 최근 입장 변화를 시사한 전병헌 원내대표도 “새누리당에서 북한인권법이라고 들고나온 것이, 오히려 북한에 비판적인 국내 단체에 대해서 지원을 강화하는 법이지 북한 인권에 대해서 실효성 있게 대응하거나 북한 인권을 실효성 있게 지속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그런 방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단체들 중에선 인권 개선 활동인지 불분명한 대북 전단(삐라) 살포를 하는 곳들도 있어, 민주당에선 ‘삐라지원법’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일각에선 남북 교류·협력 단체들도 재단으로부터 ‘인권활동’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느냐고도 한다. 그러나 교류·협력 단체들은 이미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지원받으며 대북 사업을 해왔다. 한 관계자는 “대북 지원 사업을 하는 단체들은 북한인권법 없이도 기존에 활동을 해왔다. 이명박 정부 시기 중단된 교류 사업을 재개할 생각은 않고 북한인권법만 필요하다는 건, 결국 정치적으로 특정 성향의 단체들을 지원하겠다는 뜻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홍보 창구 단일화 등의 효용을 들어 재단의 필요성을 계속 주장하지만, 민주당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이는 대목이다.
자유권과 더불어 사회권도 고려해야
민주당이 이 사정을 몰랐을 리 없다. 더 큰 의도는 다른 데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북한인권법은 민주당으로선 골칫거리였다.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북한인권법에 반대한다’고 주장해봤자 그저 ‘북한인권법 반대’로 요약됐다. ‘북한 인권 개선에 반대한다’는 이미지로 귀결되기 십상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유엔 인권위의 북한 인권 결의안 표결에 불참·기권했던 일까지 싸잡아 비난받기 일쑤였다. 주요 국면 때마다 이 법안을 둘러싼 ‘종북 논란’을 걱정했고, 오는 6월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결국 먼저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해서 논란을 피하고, ‘민생’이란 단어를 넣어 차별화하는 전략인 것이다.
동시에 민주당이 자산으로 여기는 ‘통일 브랜드’를 어떻게든 지켜보려는 노력이란 설명도 있다. 2012년 총선·대선에서 복지 담론의 주도권을 새누리당에 내줬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략 부문의 한 당직자는 “민주당 지지층으로 봤던 30~40대 화이트칼라층에서, 새누리당이 내걸었던 ‘선별적 복지’라는 용어가 ‘보편적 복지’라는 민주당 용어보다 잘 먹혔다. 현실성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복지는 원래 우리 브랜드인데 주도권을 뺏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사를 따지고 보면, 통일도 인권도 민주당이 권리를 내세울 만한 브랜드라고 할 부분이 크다는 판단이다.
정치적 셈법상으로는, 결국 민주당이 실제 통과시킬 것을 목표로 ‘북한 인권’ 카드를 꺼내든 것 같진 않다.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만약 정치적 셈법을 거둔다면 북한 인권 관련 법안, 특히 새누리당 북한인권법의 의미는 어떨까? 민간단체들에선 ‘북한 인권’에 대한 내용을 법안으로 명시화하는 게 정권 교체와 무관한 지속성을 담보해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처럼 정치적 거래 대상으로 흔들릴 가능성은 외려 줄어든다는 얘기다.
1961년 동독이 베를린장벽을 세우자, 서독은 ‘잊지도 용납하지도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잘츠기터(독일 중북부 소도시)에 중앙기록보존소를 설치했다. 보존소에는 동독을 탈출한 이들이 전한 각종 인권침해의 기록이 보관됐다. 통일 뒤 1991년엔 이 기록을 모은 <잘츠기터 보고서>가 발간됐다.영화 <불의의 기록> 갈무리
재단의 경우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지만, 나머지 자문위원회나 각종 모니터링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생길 여지가 있다. 인권기록보존소 또한 마찬가지다. 통일 전 서독의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는 동독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상황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누군가 그 기록을 말소할 거란 우려 때문에 만든 기관이었다. 통일 때까지 현직 검사들이 탈출자들을 상대하며 약 4만2천 건의 인권침해 사례를 기록했고, 통일 뒤 관할 지역의 치안 당국에 인계했다. 국내에선 2003년부터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이 일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법안은 보존소를 국가인권위원회 산하에 두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북한 인권을 다루면서 한국의 입장만 반영했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북한이 공감하고 수용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보장할 수 없다. 북한 내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기본적인 상황조차 파악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북한 사회의 개혁·개방을 위한 별도의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북한 인권을 보는 시각에 대한 합의도 절실하다. 국제사회는 정치적 인권(자유권) 못지않게, 경제·사회적 인권(사회권)도 중요하게 다룬다. 냉전 당시 자유 진영이 공산 진영에 대해 그러했듯, 남한의 보수 진영은 북한에 대해 자유권의 잣대만 들이대는 경우가 많지만, 먹고사는 권리를 포함한 사회권의 가치도 고려돼야 한다.
한국 스스로 인권 보장된 사회 돼야
무엇보다 한국 스스로가 인권이 보장된 사회로 인정받아야 한다.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줄기차게 인권 현실에 대한 비판을 받던 중, 2004년 돌연 ‘미국의 인권에 관한 보고서’를 내어 인종차별, 타국 인권침해 등 6개 분야에 걸쳐 미국의 인권 현실을 비판한 바 있다. 북한이 “인권이 최고로 존중되고 발현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오히려 남녘 겨레의 선망과 동경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고 하는 건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그 근거로 “남조선 도처에서 일어나는 생존권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끊임없는 자살 사건”을 예로 든 대목만큼은 남녘 겨레의 속을 쓰리게 한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