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0일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과 김무성 의원, 민주당 박기춘 사무총장과 이윤석 의원(왼쪽부터)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 구성 등을 담은 여·야·철도노조의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한겨레 김경호
파업은 끝났다. 동시에 ‘그 후’가 시작됐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민영화 반대 파업은 ‘국회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 구성’ 합의로 마침표(2013년 12월30일)를 찍었다. ‘그 후’를 넘겨받은 민주노총의 ‘국민총파업’이 박근혜 정부의 폭주를 막아낼지는 아직 물음표다. 마침표가 정당한 평가를 얻고 물음표가 꼬리를 뗄 수 있을지는 ‘그 후’에 달려 있다. ‘그 후’의 한계와 가능성은 ‘철도 파업이 이기지는 못했지만 지지도 않았다’는 평가 속에 있다. 철도 파업이 모아낸 분노한 민심의 확장 혹은 쇠퇴 여부도 마침표와 물음표 사이에서 가려질 것이다. 어쩌면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파업 그 후’는 ‘파업 그 전’과 달라
허탈하다는 반응이 없지 않았다. 파업은 철도노조·민주노총과 시민이 했으나, 최종 스포트라이트는 정치권이 가져갔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파국을 막아냈다는 평가를 취하며 합의한 내용은 소위원회 설치(위원장은 새누리당)와 여야·국토교통부·철도공사·철도노조·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정책자문협의체 구성이 전부다. 한국전력 논리 추인과 공사 재개의 정당성 부여 기구로 전락한 국회 밀양송전탑전문가협의체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국회에서 진통이 예상된다”며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강조했다.
“무의미한 소위가 되지 않으려면 3가지 원칙이 서야 한다. 첫째, 정부가 수서발 KTX 민영화가 아니라고 약속했으므로 민명화를 원천 차단할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둘째, 소위 논의가 허깨비가 되지 않도록 자회사 면허 발급 이후 절차 일체 중단. 셋째, 노조원 징계와 손해배상 최소화 노력.”
파업 복귀 노동자들의 수난 정도에 따라 ‘그 후’는 핏빛 멍투성이로 출발할 수도 있다. 코레일은 파업 책임을 물어 6850여 명의 직위해제와 191명 고소·고발, 152억여원(12월31일 기준)의 손해배상 청구와 116억원의 재산 가압류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코레일은 영업손실뿐 아니라 파업 장기화를 대비해 채용한 대체인력의 인건비까지 손해배상 청구 금액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찰과 경찰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조합원 31명의 검거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파업 그 후’는 분명 ‘파업 그 전’과 다르다. ‘철밥통’으로 매도되던 공기업 노조가 공공선의 대변인으로 등장해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철도 파업이 대중과 노동의 거리를 좁히는 징검다리를 놓은 셈이다. “따가운 시선을 받아온 공기업 노조가 민영화 반대 여론을 주도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어낸 것은 공기업 노조 역사상 획기적인 일”(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란 평가가 나온다.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풀이했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용안정을 희생하며 전 시민적 의제에 뛰어들자 시민들이 반응했다. 노동권과 민영화에 따른 시민의 권리 침해가 상충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관습적 집회 아닌 대중 축제로 만들어야
그래서다. 22일간의 철도 파업과 시민의 자발적 호응을 거치며 공고했던 정국에도 균열이 일고 있다. 국가기관 선거 개입 사태로 끓어오르던 민심은 파업을 계기로 세를 얻었다.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던 ‘국정원 시국회의’ 중심의 촛불집회는 철도 민영화 이슈를 만나며 10만 명(12월28일 서울 시청광장 집회) 선으로 불어났다. 박근혜 정부를 향한 비판 목소리가 정권 출범 이후 최대 규모로 결집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진 것도 철도 파업 이후였다. 최영준 KTX민영화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국민 다수는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보다 철도노조를 믿었다. 비판적 국민들이 박 대통령과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했다. 철도 파업은 정권 비판 여론을 만나 불붙었고, 정권 비판 여론은 철도 파업에 힘입어 타올랐다. 철도 파업은 노동조합의 힘을 보여줬으나, 노동조합의 진짜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실도 일깨웠다. 철도 파업을 계기로 터져나온 ‘안녕하냐’는 연쇄 대자보가 에너지원이 됐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접으며 달아오르던 민심은 기관차를 잃었다. 파업 철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안타까움은 철도노조가 끌고 온 ‘국민적 분노의 진로’가 합의 내용에서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노의 진로는 ‘파업 그 후’의 양상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진로를 가늠할 두 가지 방향타는 철도 민영화 논쟁 2라운드와 민주노총의 국민총파업이다.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전망했다.
“철도노조의 파업 이전엔 민영화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했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야권은 국회 소위에서 민영화 방지를 위해 치열하게 다퉈야 한다. 시민사회가 국회 밖에서 강력한 문제제기를 이어가지 못할 때 국회 소위는 요식행위로 전락할 수 있다.”
철도노조가 논쟁의 1라운드를 만들어냈다면 2라운드의 성패는 바통을 이어받은 야권과 시민사회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국회 소위가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는 소화기가 될지 펄펄 끓는 공론장이 될지도 그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31일 오전 파업을 철회하고 업무 복귀를 선언한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수색차량사업소를 향해 선로를 건너가고 있다.한겨레 박종식
민주노총의 국민총파업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종교계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 퇴진 목소리의 최전선에 서 있다. 민주노총은 3차례의 ‘박근혜 퇴진-민영화 저지-노동탄압 분쇄 촉구 전국 동시다발 총파업 결의대회’(1월4일·9일·16일)를 거쳐 2월25일 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국민파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1월2일부턴 권영길·단병호·천영세 전 의원 등 지도위원단 10명이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국민파업이 민주노총의 울타리를 넘어서려면 2008년 촛불시위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장석준 부대표는 “12월28일 1차 총파업 때처럼 민주노총이 관습적인 민중대회 형식에 머물러선 안 된다. 대중이 축제를 만들어나가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국민파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2008년 촛불 때와는 큰 차이 있어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총 설립(1995년) 이후 처음으로 경찰을 본부 건물에 진입시키며 노동계를 정권퇴진운동의 장으로 끌어냈다. 정부의 ‘마지노선 넘기’가 의도인지 패착인지를 두고 해석이 많다. 노동계 전체를 일거에 굴복시키려는 ‘의도된 도발’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일전이 불가피한 듯한데, 2008년과는 큰 차이가 있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떨어져도 40%대’인 지지율을 믿고 ‘국민을 굴복시키겠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파업 그 후’에 붙은 물음표가 완고해 보인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