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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여의도 찍고 청와대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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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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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총력전 펼치는 10·25 재·보선… 대선 전초전 성격에 중앙당 지원 돌입

사진/ 여야는 국회의원 재·보선 총력지원 체제를 갖추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구로을 김한길 후보.(강재훈 기자)
‘이용호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 의혹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온 정치권이 10월25일 국회의원 재·보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월9일 서울 동대문을과 구로을, 강원도 강릉 등 3개 재·보선 지역에 등록을 마친 후보들은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며 한판 전투를 시작했다. 여야 지도부도 이번 재·보선이 내년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의 판세를 가름할 전초전이라는 판단 아래 총력지원 체제를 갖추고 있다.

민주당, 2석 목표로 비장한 각오

‘DJP공조’ 파기로 소수당이 된 민주당의 분위기는 비장하다. 당 쇄신 방안을 놓고 내분을 겪은 데다,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까지 겹친 상황에서 재·보선마저 패배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중압감에 짓눌려 있다. 민주당 한 핵심 당직자는 “이번에 패배하면 우리는 끝장이다. 동교동 책임론이 다시 터져나오면서 당은 더 큰 분란에 휩싸이고 이미 상처난 김 대통령의 통치력도 급속히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동교동 해체’ 깃발을 내걸고 당무까지 거부했던 김근태·정대철 최고위원의 행동에 “상황을 좀더 지켜보자”며 동참을 자제했던 개혁성향 초·재선의원들이 가세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민주당이 풍비박산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몇몇 소장 당직자들은 “3개 선거구에서 모두 질 경우 민주당 간판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최소한 당명은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민주당 지도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판세분석을 토대로 전략전술을 짜내고 있다. 민주당은 동대문을과 구로을 지역을 최대 승부처로 잡고 있다. 자체 여론조사 결과 두 지역 모두 우세를 보이고 있고, 수도권이라는 상징성도 크기 때문이다. 몇몇 낙관론자들은 두 지역에서 동시에 승리할 수 있다며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자체조사는 물론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고, 한나라당 후보들이 선거법위반 전력과 학력변조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자질론’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세균 민주당 기조위원장은 “야당이 제기한 각종 비리의혹이 대부분 허위로 밝혀지면서 선거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면서 “후보 자질 위주로 홍보하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민주당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두 지역 모두 민주당 후보가 앞서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미세한 우세일 뿐이다. 민주당 자체조사 결과 동대문을은 허인회 민주당 후보가 홍준표 한나라당 후보를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고 있고, 판별분석을 하면 그 격차가 좀더 벌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반면 구로을은 김한길 전 문화부 장관이 이승철 한나라당 후보를 오차범위 안에서 약간 앞섰지만 판별분석 결과 그 격차가 미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여권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된 점도 난제다. 민주당 조직국 핵심 관계자는 “지역 여론조사에서 앞서지만 국민의 전반적인 여론을 볼 때 두 지역 모두 이긴다는 것은 우리의 바람일 뿐이다. 최소한 한 군데만 지켜내도 선전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보선의 중요성을 볼 때 민주당은 총력지원에 나서야만 한다. 그러나 섣불리 개입하기 어렵다는 데 고민이 있다. 중앙당이 전면에 나설 경우 이번 재·보선이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변질되고, 결국 이용호 케이트 등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DJ정권에 대한 심판”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전술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민주당은 한광옥 대표와 노무현 상임고문, 이인제·정동영 최고위원 등 스타급 인사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지만, 겉으로는 “후보 자질론을 무기로 지구당 중심의 선거를 치르겠다”고 외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쪽 여론조사 결과에 대체로 수긍하면서도 선거 결과는 낙관하고 있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현재 우리 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도 동대문과 구로을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가파르게 따라붙고 있어 모든 곳에서 압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각종 권력형 비리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의 수사를 통해 여권 핵심부의 개입 사실이 유권자에게 알려지면 현재의 미세한 격차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김기배 사무총장은 “구로을은 여권이 10여명의 인물을 대상으로 사전 여론조사를 실시해 김한길씨를 내세웠지만 지금은 우리 당 이승철 후보와 별 차이가 없다. 곧 역전하게 될 것”이라며 “동대문을도 정당연설회가 시작되면 우리가 앞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나라당, 정권 심판 내세워 3석 노려

한나라당은 3개 재·보선 지역을 전부 석권한다는 목표 아래 구체적인 전략을 짜고 있다. 한나라당의 기본전략은 ‘부패한 DJ정권에 대한 심판론’이다. 이를 위해 이용호 게이트 등 중앙정치의 핵심 이슈를 재·보선 지역에 고스란이 옮겨놓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재오 한나라당 총무가 ‘이용호 게이트’ 특검제에 앞서 국정조사를 하자며 “국정조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하반기 정기국회 자체가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여권을 압박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재오 총무의 한 측근은 “이용호 문제는 재·보선 때까지는 지속될 파괴력 있는 이슈”라며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이 총재가 직접 3개 지역을 돌며 바람몰이를 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에게도 약점은 있다. 공천을 둘러싸고 당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총재는 강릉과 동대문을 지역에 선거법위반 혐의로 논란을 빚었던 최돈웅, 홍준표 전 의원을 각각 공천했고, 구로을 이승철 후보도 지난 16대 총선 때 학력과 경력을 허위로 기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한 핵심 당직자는 “이 후보의 학력은 미국에서 인정하는 사이버 학력 시스템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제도적 차이에서 나온 것이다. 이 후보 학력이 오소독스(정통)는 아니지만 법적으로 문제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고민의 핵심은 바로 최돈웅 후보 공천을 둘러싼 내분이다. 이부영 부총재, 김원웅·서상섭 의원 등 한나라당 소장 개혁파들이 최 후보 부친의 친일경력을 문제삼고 나오자 당 지도부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이 총재의 다른 한 측근은 “우리 내부에서도 강릉 공천은 좀 심했다는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 압도적 우세를 보이는 최 후보를 공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 후보 부친의 친일경력을 계속 문제삼으면서 경쟁자인 무소속 최욱철 후보가 뜨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장파들은 단호하다. 김원웅 의원은 “공천 심사 과정에서 이미 최 후보 부친의 친일행적이 문제가 됐는데도 공천을 강행한 당 지도부의 현실 인식 자체가 큰 문제다. 국민이 아무리 정치를 불신해도 총재 뜻만 받들면 밀실에서 공천장을 주는 행위로 절차상 명백한 하자가 있다. 이를 방치하면 내년 지방선거 공천 때도 똑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소장파 의원들이 집단 의지를 표시를 하는 문제를 진지하고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부영 부총재도 조만간 강릉에 내려가 최 후보 공천의 부당성을 역설할 것으로 알려져 한나라당 지도부를 더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 총재쪽은 “지금 와서 후보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당의 큰 목표를 위해 서로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유리한 주변 여건에 힘입어 3개 선거구를 석권해 ‘이회창 대세론’을 확고히 하려는 한나라당 주류의 구상이 내부에서 등장한 복병에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반면 민주당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있다. 민주당 조직국 한 관계자는 “절대 열세인 강릉 지역에서 최돈웅 후보와 최욱철 후보가 경합할 경우 우리 당 김문기 후보가 틈새를 엿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부지리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자민련, 민주·한나라 구도에 틈새없어

자민련은 몹시 궁색한 처지다. 구로을에 이홍배 전 의원, 강릉에 김덕원 국회 정책연구위원을 후보로 내세운 자민련은 ‘안보정당론’을 내세워 보수·안정 희구세력의 지지를 얻어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맞대결 구도에서 틈새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자민련은 또 공천자를 내지 않은 동대문을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후보를 밀겠다며 한나라당에 선거공조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 총재쪽은 “어차피 자민련의 힘이 미치지 않는 동대문에만 후보를 안 낸 뒤 공조를 하자는 것은 좀 지나친 요구다. 3개 재·보선 지역에 대한 완벽한 공조가 아니라면 각자 알아서 뛰면 된다”고 난색을 표했다. 자민련은 재·보선에서도 좀처럼 앞길이 보이지 않고 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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