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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엉킨 정치권, 매듭이 풀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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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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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둘러싼 6대 핵심 이슈 입체 점검… 이것을 알면 대선정국도 보이죠

일러스트레이션/ 방기황
새로운 정치구도가 자리잡아가는 진통일까. DJ정권이 집권 후반기로 치닫고 대선정국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우선 정권교체 이후 우리 정치의 근간이었던 DJP 공조가 붕괴됐다. 이 여파로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급속도로 접근하며 민주당을 포위하는 국면이다. 여권 내에서는 여소야대 정국을 맞아 한광옥 대표 체제를 새로 출범시켰으나 민심과 동떨어진 당정개편으로 비판받으며 당내 심각한 갈등을 낳고 있다.

과연 이런 움직임은 향후 정치권에 어떤 발자국을 남길까. <한겨레21>은 최근 정치판의 흐름을 몇 가지 주요사건을 중심으로 점검하고 전망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편집자


JP의 구애, 재혼을 위하여!

한나라당·자민련 완전공조 여부… 장기적 동맹은 변수 많아


사진/ 이회창과 JP는 결혼에 골인할 것인가. 지난 9월18일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특별한 만남'을 위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맞이하고 있다.(한겨레 김경호 기자)
임동원 장관 해임안 처리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DJ와 ‘이혼’한 JP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재혼’을 꿈꾸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9월18일 신라호텔에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DJ와 갈라선 JP는 이 총재에게 강한 공조의지를 내비치며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고, 이 총재도 일단 ‘OK 사인’을 보냈다. 두 사람은 일정액 이상 대북지원사업 국회동의 의무화 추진, 언론탄압 중단 요구,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3역 협의와 정책협의회 가동에 합의하는 등 사실상 공조관계, 즉 ‘혼전동거’에 들어갔다.

두 사람의 관계가 과연 ‘DJP 공조’에 버금가는 완전한 결혼상태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위기에 몰린 JP와 자민련은 좀더 발전된 관계를 원하고 있다. 18일 만남 직후 변웅전 자민련 대변인은 “이제 (공조가) 시작됐다”고 힘줘 말했다. 자민련은 이어 한나라당이 요구해온 ‘이용호 게이트’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에 찬성했다. 21일에는 남북협력기금 사용 전 국회동의를 의무화하는 쪽으로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하고, 교원정년을 63살로 높이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사무처 직원 월급을 절반으로 삭감할 정도로 위기에 몰린 자민련은 한나라당과 공조 강화말고 별 묘책이 없다.

그러나 이 총재와 한나라당 주류쪽 생각은 좀 냉정하다. 이 총재의 최측근 인사는 “18일 만남을 놓고 ‘한-자동맹’이나 대선공조를 논하는 것은 성급하다. 우리는 특별한 사안을 놓고 선택적 공조를 통해 DJ를 압박하려는 것일 뿐, 아직 자민련과 지속적 공조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두 당의 공조는 제한적 선택일 뿐 대선전략 전반을 아우르는 ‘한-자동맹’으로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JP와 자민련이 이 총재의 대선가도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JP가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지금은 이 총재쪽에 열렬히 구애하고 있지만 결국 이 총재와는 상극인 경쟁관계다. 이 총재는 집권을 위해 반드시 충청권을 장악해야 한다. JP 또한 정치적 생존을 위해 충청권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또 수권능력을 갖춘 유일 야당이란 깃발 아래 반DJ 성향의 ‘야당표’를 결집시키려는 이 총재에게 ‘원조 보수’를 자처하며 DJ를 더 거세게 공격하는 자민련은 골치 아픈 존재다. 결국 JP가 내년 대선 때가지 건재하다면 충청권에 대한 자민련의 배타적 점유권을 보장하고 권력도 분할하며 달래야 하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때문에 이 총재를 비롯한 주류쪽은 지금은 ‘선택적 공조’를 택했지만, 대선을 고려한 장기포석에는 자민련 고사쪽에 더 마음을 두고 있다. 한나라당 한 핵심 당직자는 “솔직히 자민련이 대선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데, 지속적인 공조로 입지를 강화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자민련이 고사하면 우리쪽에 입당할 의원들이 많고 충청권 공략도 쉬워지는 등 이래저래 득이 된다”고 말했다. JP와 ‘혼전동거’는 해보겠지만 많은 혼수비용이 들어갈 완전공조인 ‘결혼’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광옥 체제는 시한부인가

10·25 재보선 승리하면 실세형 관리자로 전당대회 치를 수도

사진/ 한광옥 민주당 대표는 얼마나 버틸까? 한광옥 대표(사진 가운데)에 대한 개혁과 의원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다.(한겨레 이정우 기자)
한광옥 민주당 대표 내정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9월6일. 당무회의에서 한 대표가 인준된 것은 9월10일. 그 나흘 동안 민주당은 벌집 쑤셔놓은 듯 들썩거렸다. 소장파 의원들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의 대표 내정은 인적 쇄신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킨다”며 크게 반발했다.

특히 김근태 최고위원은 “동의할 수 없다”며 연일 수위를 높인 끝에 “동교동 계보 해체”까지 들고 나와 DJP 공조 붕괴로 어수선한 당을 한번 더 뒤흔들었다. 그동안 당내 개혁파에 의해 쇄신의 대상으로 지목돼온 한 실장이 당 대표로 영전(?)돼 온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이튿날 터진 미국 테러사건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묻히는 바람에 더이상 당내 갈등이 증폭되지 않았으나, 언제 터질지 모를 불씨를 여전히 안고 있는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왜 이렇게 무리해가면서까지 한 실장을 대표로 내정한 걸까. 정치권에서는 김 대통령의 당 장악력 강화 시도를 꼽고 있다. 대선주자가 아니면서 김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실세형 관리자’를 파견해 DJP 공조 붕괴 이후 당내 동요 가능성을 막고 효율적인 대선주자 관리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대통령은 본래 정기국회 이후 연말께 한 대표 체제 투입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DJP 공조 붕괴라는 뜻하지 않은 사태를 맞아 당정개편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당 안팎에서는 특별한 정국변화가 없는 한 한 대표 체제가 대선후보를 뽑는 내년 전당대회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한 대표 체제가 과연 이런 김 대통령의 뜻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우선 그동안 당정쇄신을 요구해온 소장파 의원 등 개혁파 의원들의 경우 불만이 팽배해 있다. 한 소장파 의원은 “이제 더이상 김 대통령에게 당정쇄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절망감을 느낀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대표의 투입이 오히려 자칫 김 대통령의 뜻과는 반대로 레임덕을 재촉할 가능성도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또 한 대표 임명과정에서 한 최고위원이 대선출마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도 당내 분란의 불씨가 될 소지가 많다. 그동안 자제하던 한 최고위원이 본격 대권행보에 나설 경우 다른 차기주자들도 경쟁적으로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DJP 공조 파괴로 정국이 여소야대가 됐다는 점도 한 대표 체제의 불안정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야당이 대선 전 마지막 정기국회를 대선 전초전으로 삼아 공세를 펼칠 경우 소수당으로 전락한 여당의 무기력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10·25 재보선이 한 대표 체제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잠시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당내 개혁파의 목소리가 재보선 결과에 따라 표면화될 여지를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DJ가 박지원을 챙기는 까닭

‘심신관리’로 대통령 신임 얻어… ‘박지원 총애’ 깊어 뒷말도 많아

사진/ 김대중 대통령은 박지원만 예뻐한다?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신임을 받아왔다.(이용호 기자)
김대중 대통령이 가장 이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여권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대부분 주저하지 않고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꼽는다.

실제 박 수석은 정권출범과 더불어 청와대 공보수석, 문화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해왔다. 지난해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 연루 의혹으로 밀려나기도 했으나,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3·26개각 때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돼 김 대통령의 신임이 변치 않았음을 과시했다. 이번 당정개편도 박 수석을 위한 인사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광옥 비서실장과 남궁진 정부수석이 떠난 청와대에서 실질적인 ‘왕 수석’이 됐다는 것이다.

도대체 김 대통령의 박 수석에 대한 신임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박 수석은 김 대통령과 주파수가 가장 잘 맞는 사람이다. 누구나 내놓고 말하기 껄끄럽지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박 수석은 그런 일을 이심전심으로 읽어내고 알아서 해결한다.” 이 의원은 “3·26개각 때 박 수석의 등용에 대해 다들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필요하다고 봤다. 당시 대통령 얼굴이 너무 안 좋았다. 아직 우리나라는 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된 나라이기 때문에 대통령 ‘심리관리’는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 그동안 청와대에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박 수석은 그런 일에 적임자”라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이 가려워하는 곳을 먼저 알아 긁어주니 신임을 안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 꼭 필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박 수석의 부지런함과 남다른 성실함도 김 대통령의 신임을 얻는 데 한몫한 것으로 평가된다. 90년대 초반 평민당 부대변인 시절 새벽 6시 반 어김없이 동교동 DJ의 집을 찾아 DJ의 말을 기자들에게 전하는 부지런함은 익히 잘 알려진 일화. 김 대통령도 박 수석의 자서선 <넥타이를 잘매는 남자> 첫머리 ‘내가 본 박지원 대변인’이라는 글에서 “지칠 줄 모르는 성실함, 놀라운 정치적 순발력을 지닌 정치인”이라며 이렇게 쓰고 있다. “박 대변인은 나의 하루 일과 중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다. 새벽 6시30분 그는 정적에 잠긴 우리 집을 깨운다. 그로부터 온갖 정보를 듣는다. 내가 일일이 살펴보지 못한 모든 정치현안을 그로부터 알게 된다. …그의 하루는 어느날이건 자정까지 이어진다.…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는 나를 찾아서 알릴 것을 알려준다.”

이 밖에 박 수석이 당내 독자적인 기반이 별로 없어 김 대통령의 정치적 경계심을 자극하지 않는 점 등도 김 대통령의 호감을 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 대통령의 이런 ‘박지원 총애’는 반작용도 부르고 있다. 특히 여권 내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9월10일 한광옥 대표 인준을 위한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청와대 개편이 필요하다”는 등 박 수석을 겨냥한 발언들이 많이 나왔다. 당 관계자는 “민심과 동떨어진 최근 당정개편 등의 배후에 박 수석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 게 당 분위기”라며 “박 수석의 전횡이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동교동 신·구파 분가한다

권노갑과 한화갑, 정면대결 치달아… 신파의 딴집에 식구들 몰리려나

일러스트레이션/ 방기황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못 나눈다.” 민주당 동교동계의 신구파 갈등이 이제 서로 딴살림을 차리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화갑 민주당 최고위원이 10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민주화와 정권교체로 동교동계의 역사적 임무는 끝났으며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못박은 것이다. 여권에서는 이 발언을 한 최고위원이 더이상 동교동계의 좌장격인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그늘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하겠다는 공식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교동계의 분화 현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권노갑 전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구파’와 한화갑 최고위원쪽의 ‘신파’는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을 앞두고 불협화음을 드러낸 이후 당직개편 등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동교동은 하나다”며 서로 확전을 피한 채 봉합해오곤 했다. 한 최고위원은 9월5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동교동에 신파, 구파는 없다”며 결속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사이 “이제 서로 갈 길을 가자”는 말로 동교동계의 분열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 며칠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실 동교동계 신구파의 갈등은 향후 차기권력을 둘러싸고 이견을 드러내왔다. 구파는 정권 재창출의 대안으로 이인제 최고위원을 지지해온 반면 신파는 한 최고위원의 직접 출마를 추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당정개편 과정이 한 최고위원의 결심을 재촉한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권 전 최고위원은 최근 당정개편을 앞두고 한 최고위원을 만나 “대권을 포기한다면 대표로 밀겠다”고 말했다. 구파쪽이 한 최고위원에 대해 대권행보냐, 대표냐의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이미 대권의지가 분명했던 한 최고위원이 “조건이 붙은 대표는 미련이 없다”고 치고 나온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여기에 당정개편 결과는 구파쪽과 가까운 한광옥 대표 체제가 들어서는 등 신파의 위상이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나자 한 최고위원으로서는 정면돌파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 최고위원쪽 관계자도 “말로만 한 식구지, 그동안 사사건건 발목 잡고 소외시키지 않았느냐. 이제 독자노선을 분명히 해두고 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제는 동교동 구파와 선을 분명하게 그은 한 최고위원이 과연 경선과정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느냐 여부. 한 최고위원쪽은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 1위의 저력을 상기시킨다. 그만큼 당내 기반이 튼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파쪽은 동교동계 구파의 지지가 없었으면 1위는 불가능했으며 그것을 한 최고위원 자신에 대한 지지로 해석하면 착각이라고 보고 있다.

어떻든 민주당에서는 향후 경선구도가 이인제 최고위원과 동교동계 구파가 결속하는 가운데 한 최고위원, 김근태 최고위원, 노무현 상임고문 등이 이에 대항하는 형태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최고위원은 노무현 고문 김근태 최고위원 등과의 연대를 “패배주의”라며 부정하고 있으나, 당내에서는 이 최고위원에 대항하기 위한 이들 3자의 연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개혁신당이 보이는가

정치권 인사들 참여 가능성 낮아… 시민·사회단체는 현실적 한계 많아

사진/ 개혁신당은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일까? 개혁신당으로 비약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화해전진포럼'의 창립 기자회견 모습.(한겨레 이종근 기자)
내년 대선전에 민주노동당 외에 제3의 개혁신당이 출사표를 던질 수 있을까?

그동안 ‘화해전진포럼’은 개혁신당으로 비약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지목됐다. 지역주의 해소와 정당 민주화를 내걸고 모인 이부영, 김덕룡, 김원기, 김근태 등 개혁성향 여야 의원 45명이 함세웅·송기인 신부 등 50명의 재야 명망가와 결합하는 등 폭발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포럼에 참여한 재야인사들은 현역 의원들에게 “더이상 기성 정당에서 뭘 기대하겠냐”면서 결단을 요구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임동원 장관 해임안 처리 이후 이 가능성은 크게 줄었다. 포럼의 산파역할을 해온 이부영 의원(한나라당)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민족문제 후퇴 불가”를 외치며 신당 창당 가능성을 흘리던 기존 태도를 바꿔 당론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포럼의 한 핵심 관계자는 “포럼 해체 주장이 나오는 판에 신당 얘기가 먹혀들겠냐”고 비관했다.

그렇다고 포럼의 약화로 신당 창당 가능성이 완전히 물건너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기성 정당이 담지 못하는 유권자들의 변화 열망을 대변하겠다며 ‘틈새시장’을 노리는 개혁신당 추진 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을 대거 출마시킬 계획인 ‘전국자치연대’가 그 한축이다. 이들은 ‘무소속연대’ 형태로 모여 일단 지방선거를 치른 뒤 상황을 봐가며 대선을 겨냥한 개혁정당 창당에 나설 계획이다. 지방선거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면 현역 의원 일부가 동요할 것이고, 대선에서 10% 이상 득표할 후보만 찾는다면 새 정당을 만들어 도전할 만하다는 것이다. 현재 정성헌 자치연대 공동대표가 전국을 돌며 지구당위원장을 물색하는 등 조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정우, 고진화, 정태근씨 등 450여명의 386인사들이 결집한 ‘제3의 힘’도 개혁신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신당 창당 예비군’을 자처해온 이들은 현재 ‘부분운동 및 개혁적 정치세력의 대통합을 통한 한국정치의 개혁’이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신당 창당과 함께 대선후보 찾기에도 나섰다. 내부에서는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이 여권의 대선후보 경쟁에 불복해 이탈할 경우 함께 신당을 창당하는 방안과 전국자치연대 등 다른 개혁신당 추진세력과 결합하는 방안 등을 놓고 탐색전을 벌이고 있다. 제3의 힘 한 핵심 관계자는 “창당 조건과 명분만 갖춰지면 즉각 개혁신당 만들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민족운동과 시민운동 일부 인사들이 출범시킨 ‘푸른정치연대 준비위원회’도 개혁신당 창당에 적극적이다. 재야운동가인 도천수씨, 박호성 시민정치연구소장, 박성규 전 흥사단사무총장 등이 주축이다. 이들은 9월4일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최근 몸놀림이 아주 빨라졌다.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은 도천수씨는 “한국정치의 독점구조 타파는 지역정당 구조의 해체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중도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개혁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내년 초 개혁신당을 창당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문제는 의지나 계획이 아니라 현실적인 힘이다. 개혁신당 창당을 위해서는 돈과 조직, 유권자가 공감할 만한 대선후보라는 ‘3박자’가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수월치 않다. 개혁신당 창당을 모색중인 한 재야 인사는 “너나없이 창당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대선을 책임질 리더조차 불분명한 게 우리 현실”이라며 “마음만큼 현실이 따라줄지 걱정”이라고 전망했다.


홀로된 김중권 ‘아 옛날이여!’

차기주자로 재기 여부 불투명… 영남권 주자는 씁쓸히 퇴장하나

사진/ 끈 떨어진 영남권 주자는 홀로서기에 성공할 건가?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는 당정개편으로 권력핵심에서 완전히 밀려났다.(이용호 기자)
통상 국무총리, 여당 대표, 대통령 비서실장 등 권력의 핵심포스트 세 자리를 ‘빅3’라고 한다. 이번 여권의 당정개편은 김중권 민주당 전 대표에 열패감을 안겼다. 8월24일 청와대 주례보고 이후 ‘빅3’를 포함한 전면적인 당·정·청 개편을 주장했으나 관철하지 못한 채 돌아온 것은 ‘혼자만의 퇴장’이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빅3’ 가운데 이한동 총리는 유임되고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은 당 대표로 옮겼으나 김중권 전 대표만 유일하게 무대에서 내려왔다.

게다가 대표 시절 원내진출을 위해 내심 입질하던 10·25 서울 구로을 재보선 출마도 당내 견제세력의 반발로 무산돼 잔뜩 이미지를 구겼다. 지난해 8월 최고위원 경선 3위를 발판으로 12월 당 대표로 발탁되면서 차기주자의 반열에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금석지감을 느끼게 하는 추락이다.

과연 김 전 대표가 차기주자로서 재기할 수 있을까. 그는 10일 마지막 당무회의를 주재한 뒤 “대통령 후보 경선을 준비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분간 쉬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20일 이임인사차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것을 필두로 김영삼·노태우 전 대통령 면담 일정을 잡는 등 곧바로 활동 재개에 나섰다. 24일부터는 고향인 경북 울진을 성묘차 방문하면서 봉화, 영주, 상주 등 경북 북부지역을 차례로 순방하며, 11월 초에는 대구에서 대규모 후원회를 열 계획을 세우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김 전 대표쪽 관계자는 “대표에서 물러났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대표로 있을 때는 행보에 제약이 많았지만 이제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며 대선주자로서 본격 행보에 나설 계획임을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표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 8월24일 구로을 공천과 관련해 김 전 대표가 당무거부 등 김대중 대통령에 항명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김 대통령으로부터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당내 뿌리가 없는 김 전 대표가 차기주자 반열까지 오른 것은 이른바 ‘김심’을 등에 업었다는 점 때문 아니냐. 그런데 당무거부 파동으로 김 대통령의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재기가 가능하겠는냐”고 말했다. 실제 이번 당정개편으로 김 전 대표는 영남후보론에도 타격을 입었다. 그의 한 측근은 “대구에 내려갔더니 ‘결국 팽당한 것 아니냐, 그럴 줄 알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전에는 김 전 대표에 대한 대구·경북지역의 기대를 느낄 수 있었던 게 사실인데, 기세가 꺾여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김 전 대표가 여권으로서는 소중한 영남권 주자라는 점에서 김 대통령도 김 전 대표가 대선주자로서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랄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김 전 대표쪽 관계자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영남권을 버릴 수 없는 것 아니냐. 김 전 대표는 여전히 유용한 대선카드일 수밖에 없다. 아직 시간이 많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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