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시간이 흐를수록 밀양 주민들이(다른 사람들이 볼 때) 별스러운 풍경으로 타자화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한국전력이 이런 상황을 바랐는지 모르죠. 사람만 죽지않으면, 이러다 탑 하나 꽂히면 (마을 사람들도) 주저앉겠지 하고 말이죠.” 지난 5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경남 밀양 송전탑 문제를 다룬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계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언론이 밀양 송전탑 문제를 그저 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갈등으로 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면2 비슷한 시각,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70km 떨어진 바라카의 핵발전소 건설 현장에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윤 장관은 모하메드 알하마디 UAE 원자력공사(ENEC) 사장과 나란히 선채로 UAE 핵발전소 2호기의 첫 콘크리트 타설을 했다. 이 핵발전소에는 지난해 7월 공사를 시작한 1호기에 이어 우리나라가 수출한 이른바 ‘한국형 원자로’ APR-1400 모델이 들어선다.
“신고리 3호기 가동 안 되면 벌금”
언뜻 보면 아무런 관련이 없을 듯하다. 한국전력이 2007년부터 형식적인 주민설명회를 진행한 뒤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면서 갈등을 겪고 있는 경남 밀양시 부북면·산동면·산외면·단장면 4개 지역과 UAE의 바라카 핵발전소 건설 현장을 보면 말이다. 밀양송전탑 공사 현장 인근의 70살 넘은 주민들이 모여 굴착기·자재 등을 몸으로 막아서며 농성을 벌인 건 지난 1월부터다. 그동안 공사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온 한전은 경북 울진군에서 건설 중인 신고리 3호기와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 사이를 잇는 765kV 송전탑 162기(90.54km) 가운데 69기(39.15km)를 이 지역에 세우는 공사를 얼마 전부터 다시 시작했다.
밀양과 바라카의 연결고리를 제공한 이는 변준연 전 한전 부사장이었다. 그는 지난 5월23일 기자들을 만나 밀양 송전탑 공사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UAE 원전을 수주할 때 신고리 3호기가 참고 모델이 됐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 문제는 꼭 해결돼야 한다. 2015년까지 (신고리 3호기가) 가동되지 않으면 페널티(벌금)를 물도록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밀양 주민들이 들어온 “겨울철 전력난 해결을 위해서 송전탑 건설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설명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변 전 부사장은 다음날 사표를 냈다.
변 전 부사장의 발언 내용은 실제로 한전컨소시엄이 UAE 원자력공사와 맺은 주계약서 안에 자세히 등장한다. 김제남 의원실(진보정의당)이 한전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보면, 실제로 주계약서에는 ‘Reference Plant’(참조용 발전소)라는 항목이 존재했다. 상업운전을 한 적 없는 한국형 원자로를 UAE에 판매하려면 예로 들 만한 발전소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제남 의원은 “신고리 3호기의 상업운전을 2013년 9월에 한다고 명시돼 있으며, 2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15년 9월까지 상업운전을 하지 못할 경우, 공사비의 0.25%의 지체보상금을 물도록 하는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원자로의 운행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핵발전소 운영 품질을 UAE에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신고리 3호기의 완공 시점(올해 12월)에 맞춰 만든 전기를 실어나를 송전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원개발촉진법’ 개정 필요
그러나 밀양 송전탑 갈등의 본질적 원인은 ‘한국형 원자로’ 수출을 넘어 ‘엇나간 전력수급 정책’에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모여 사는 서울·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밀양 같은 지역의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전력수급 정책이 대형 사고의 위험에 대비해 해안가 등 외진 지역에 들어설 수밖에 없는 핵발전소의 전력 의존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더 먼 거리에서 전력선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역별 전력 자급률의 차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환경단체 ‘에너지정의행동’이 2011년 전국 지역별 전력 생산량과 소비량을 계산해 산출한 ‘시도별 전력자급률’을 보면 그렇다. 화력발전·핵발전 등 대규모 발전단지가 밀집한 경남, 전남, 인천, 충남 등은 전력자급률이 200%가 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서울(3%), 대전(1.7%), 광주(0.5) 등 대도시의 전력자급률은 매우 낮았다. 결국 대도시에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송전 시설이 과도하게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이제는 발전소 부지를 어디에 정하느냐의 문제뿐만 아니라,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어떻게 옮길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며 “수도권·비수도권·제주권 등 권역별로 전력수급 정책을 짜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4월에 내놓은 ‘제6차 전력수급계획의 문제점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서도 “전력수급계획의 수립 과정에서 송배전 설비계획을 동시에 고려해 기술적·사회적 수용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전 등이 송배전 설비계획을 일방적으로 진행하도록 만든 ‘전원(電原)개발촉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978년에 만든 전원개발촉진법은 한전 등 전원개발사업자에게 사업에 필요한 토지 등을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는 권한을 부여한 법이다. 송전탑이 지나가는 농지 등을 헐값에 강제 수용할 수 있었으나, 2009년에야 주민 등의 의견을 청취해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의무화한 개정안이 나왔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최재홍 변호사는 “전원개발촉진법이 그동안 한전을 비민주적 절차를 통해 사업 비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도록 했으며, 7년 가까이 밀양송전탑 문제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것도 이런 행정 관료주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송배전 설비계획에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법안을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전력수급계획의 문제
송전탑 공사 강행과 저지를 둘러싸고 충돌을 빚어온 한전과 밀양 주민들은 지난 5월29일 중재안에 합의하고 대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여야 정치권의 중재로 이뤄진 이 중재안에는 전문가를 주축으로 협의체를 꾸려 송전탑 건설에 대한 대안을 40일 동안 연구하기로 했으며, 이 기간에는 공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전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밀양 송전탑 갈등이 불거지자 “(갈등이) 시작된 지가 7∼8년은 됐는데 그 세월 동안 뭘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오랜 시간 전력수급계획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송전탑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만 높여온 결과인 셈이다. ‘밀양의 교훈’이 필요한 때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지난 5월21일 경남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 89번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쇠사슬로 포클레인과 몸을 묶고 공사를 저지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이런 현상은 지역별 전력 자급률의 차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환경단체 ‘에너지정의행동’이 2011년 전국 지역별 전력 생산량과 소비량을 계산해 산출한 ‘시도별 전력자급률’을 보면 그렇다. 화력발전·핵발전 등 대규모 발전단지가 밀집한 경남, 전남, 인천, 충남 등은 전력자급률이 200%가 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서울(3%), 대전(1.7%), 광주(0.5) 등 대도시의 전력자급률은 매우 낮았다. 결국 대도시에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송전 시설이 과도하게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이제는 발전소 부지를 어디에 정하느냐의 문제뿐만 아니라,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어떻게 옮길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며 “수도권·비수도권·제주권 등 권역별로 전력수급 정책을 짜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4월에 내놓은 ‘제6차 전력수급계획의 문제점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서도 “전력수급계획의 수립 과정에서 송배전 설비계획을 동시에 고려해 기술적·사회적 수용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전 등이 송배전 설비계획을 일방적으로 진행하도록 만든 ‘전원(電原)개발촉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978년에 만든 전원개발촉진법은 한전 등 전원개발사업자에게 사업에 필요한 토지 등을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는 권한을 부여한 법이다. 송전탑이 지나가는 농지 등을 헐값에 강제 수용할 수 있었으나, 2009년에야 주민 등의 의견을 청취해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의무화한 개정안이 나왔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최재홍 변호사는 “전원개발촉진법이 그동안 한전을 비민주적 절차를 통해 사업 비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도록 했으며, 7년 가까이 밀양송전탑 문제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것도 이런 행정 관료주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송배전 설비계획에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법안을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도별 전력자급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