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화해와 통일국제회의’ 참석한 세계 NGO 관계자들 특별 좌담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겨레를 환희와 희망으로 들뜨게 했던 남북 화해와 협력 과정이 올 들어 크게 뒷걸음치고 있다. 명백한 퇴보의 시기에 우리는 향후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을까.
8월13일과 14일 연세대에서는 세계 NGO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세계평화를 위한 한반도 화해와 통일국제회의’가 열렸다.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연대는 과연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는 것일까. 이 대회 참석자 몇명을 14일 대회장소인 연세대에서 만나 1시간 남짓 이야기를 들었다.
이정옥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었고, 필리핀대 교수인 월든 벨로, 제3세계 시민사회단체 지원단체인 ‘TNI’의 연구원 브리드 브레넌, 미국 퀘이커재단의 봉사단체인 ‘친우봉사회’(AFSC)의 활동가 조셉 거슨 등 4명이 대화에 참여했다.
위기에 빠진 한반도 평화와 화해
이정옥(이하 이) 먼저 남북정상회담과 화해·통일과정, 세계적 차원의 평화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봅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방안도 논의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기대한다. 월든 벨로(이하 벨로)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모두 흥분했다. 마막 남은 냉전국 사이에 이뤄진 획기적인 돌파구였기 때문이다. 또한 두 아시아 국가가 주도한 외교적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시아사람들이 아시아사람들과 회담을 진행해나갈 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약 1년3개월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평화와 화해의 과정은 위기에 빠졌다. 또 이 과정에서 문제점들도 드러났다. 우선 남북정상회담이 개인적 차원에서 추진되거나 정부 차원에서만 추진됐다. 남북화해과정을 적극적으로 진전시켜나가도록 하는 대중적 시민단체들의 지지가 부족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 몇달 동안 한국 시민사회가 이런 중요한 과정에 중심적이지 못하고 옆으로 물러나 박수만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부시 정부의 등장으로 남북 화해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남북정상회담이 잘된다면 그것은 한국인의 승리일 뿐 아니라 아시아인의 승리다. 왜냐하면 미국의 개입없이 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한의 NGO들은 현재 난관에 빠진 이 과정을 전진시키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에너지를 끌어내려고 더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 아시아 시민사회로부터 나오는 추동력을 보태야 한다. 그래서 남북 화해와 평화의 과정이 다시 시작돼야 한다. 남·북 정부에 바라는 것은 우리를 경쟁자나 위협자으로 보지 말고, 평화를 위한 논의과정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줄 협력자로 봐달라는 것이다.
브리드 브레넌(이하 브레넌) 내 생각에는 아시아지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김대의 대북 이니셔티브는 대담하고 대단한 것이었다. 두 가지 점에서 유럽에 경종을 울렸다.
유럽은 냉전에 대해 유럽 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 냉전의 더 깊은 함의는 무시됐다. 그래서 남북한이 주도하는 평화과정은 냉전에 대한 새로운 각성,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유럽에서 냉전이 끝났는가에 대한 성찰이 일었다.
또 하나는, 유럽 시민사회는 냉전 종식의 결과로 나타난 이른바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 군비축소로 경제발전과 복지 등에 돌릴 수 있게 된 사회적 비용)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이 평화배당금은 동유럽뿐 아니라 서유럽에서도 사회구조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좀더 많은 개발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 시민사회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했고, 그 사이 부시 정부가 일방적으로 미사일방어(MD)를 추진하면서 유럽을 각성시켰다. 유럽에서 안보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유럽이 점점 MD에 참여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한 방식이긴 하지만, 유럽 문제는 한국의 문제다. 유럽의 시민사회가 평화운동, 군축운동 등의 쟁점에 참여하고, 좀더 한국의 화해와 평화과정에 개입해야 한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유럽 시민사회는 스스로 새롭게 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MD와 군축문제 등 글로벌 차원의 평화의 핵심과제에 뛰어들어야 한다.
국제 시민사회가 평화 과정에 개입해야
이 많은 아시아인들, 특히 경제대국인 일본도 안보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군사대국화를 통해 안보를 보장받으려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군사력 강화에 대한 유럽 시민들의 생각은 어떤가.
브레넌 유럽연합 내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있다. 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나라들이 국제적 갈등을 빚고 있다. 평화운동의 전성기였던 80년대 초, 독일의 본에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50만명의 인파가 모인 적이 있다. 트라이던트 마사일 배치 반대 등을 위해서다. 그러나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평화운동은 날로 약화되고 파편화됐다. 물론 유럽의 안보정책, 나토의 확대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하는 사람들은 아직 있다.
최근 희망적인 사건이 있었다. 아일랜드가 국민투표에서 나토의 확대를 거부했다. 그때까지 어느 나라의 국민투표에서도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나토의 확대를 부결한 경우가 없었다. 유럽도 아시아와 비슷한 점이 많다. 유럽에서도 냉전의 종식은 선택이 아니었다. 자본의 승리, 자본가의 승리였다.
이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의 부시 행정부에 대한 전세계적인 적대감도 있고, 한국분단에 대한 미국의 책임문제도 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 미국 시민단체는 어떻게 보고 있나.
조셉 거슨(이하 거슨) 먼저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그렇다고 아주 개인적 것은 아니겠지만, 세계가 부시 행정부에 대해 반대의견을 밝히는 것에 대해 환영한다. 부시 정부는 한국에서나 전세계적으로나 여러 가지 못된 일을 하고 있다. 교토 의정서를 따르지 않는 것도 환경적으로 흉악한 일이다. 마음이 놓이는 것은 부시 정부의 이런 정책이 미국민의 단결된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시 정부는 뻔뻔한 정부다. (웃음) 이런 뻔뻔한 행동을 계속하면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몇 마디 하자면, 미국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눈을 감고 있었거나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을 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지도에서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조그만 솜털 같은 긍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전쟁 위협의 완화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의 평화 논의를 궤도에서 이탈시키려고 했다. 김대중에게 굴욕감을 강요했다. 이것은 미국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시민사회가 나서 정부에게 압력을 넣어 평화 논의가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나는 벨로 교수의 생각에 동의한다. 우리가 직면해 있는 문제는 지도자들에게 기대어 그들에게 이끌려 다닌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진행된 평화운동을 봐도 마찬가지다. 평화운동은 강력한 대중운동, 민중운동이 필수적이다. ‘대중, 민중이 앞서 나가면 지도자는 따라오게 마련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한국과 미국에서도 적용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싶다.
대중의 힘 결집해 합법성 획득해야
이 한반도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평화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한반도문제와 관련해 국제적 연대를 이룰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냉전체제 때문에 반복적으로 희생양이 된 조그만 국가에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것을 내부문제로 치부한다. 우리는 한국의 경험을 단지 한국의 문제로 보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현실에서 국제적 연대를 세울 수 있겠는가.
벨로 내 생각으로는 남북의 사람들을 동원하려는 노력이 핵심이다. 한반도 통일은 정치적·경제적 차원에서 함께 이뤄져야 한다. 단지 소수 지도층들만의 추진으로 통일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또 국가의 이익을 위해 통일해야 한다는 논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통일은 대중적 민중적 정치·경제 계획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요점이다. 둘째, 왜 통일이 좋은 것인가, 왜 반드시 통일이 한반도에 필요한가를 토론하고 논의해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각종 국제회의나 토론회 등에서 지적되고 있지만, 부시 정부만이 남북 화해와 통일의 장애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 강한 세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시 부시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이 문제에 관한 지속적인 교육과 치열한 토론이 꼭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럴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화해와 통일이 가능하다.
세째, 시민사회뿐 아니라 한국 이외의 정부와 조직된 정치세력이 도와주는 것이 미국이 진행하는 정치적, 군사적 행동에 제동을 거는 데 본질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력은 합법성의 개념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합법성이 없어지면 권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심 권력, 즉 미국의 군대에 반대하는 힘은 바로 일반 국민의 힘이라 생각한다. 국민의 힘이 작용하면 중심 권력은 처음에는 강해보이지만 결국에는 약해지게 된다. 합법성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합법성을 둘러싼 싸움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종국에 가서 승리하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물론 이것은 길고 힘든 과정일 것이다.
이 미국은 한반도 분단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한국과 미국의 시민사회는 서로 공동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데, 이 점은 어떻게 보나.
거슨 한국의 통일이 미국에서는 중점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제기하는가가 중요하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기 베트남의 예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베트남운동은 미국의 시민운동과 연계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정력을 쏟았다.
우리가 할 일은 미국인들이 한국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국, 일본, 중국, 혹은 인도 등지에서 운동권 학자들을 초청해서 미국의 관료들과 만나도록 하고, 미국 대학에서 강연하도록 하여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고, 이것이 한국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한반도 화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야기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또다른 일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데, 최근에 뉴욕시에서 미국이 한국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전범재판 법정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인들에게 실제로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인터넷이 매우 중요한 도구라는 점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정력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연대를 지지하고 추구할 수 있고, 미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보내오는 지지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지역적 한계 넘어서는 공동체 주목
이 한반도문제는 더이상 지역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다. 전세계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MD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는 지속적인 공동체 또는 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거슨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한 개인에게 본질적인 문제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피부에 와닿는 문제라도 단지 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후손, 그리고 미국인, 아시아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진지한 대화가 고맙다. 앞으로도 이런 대화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정리=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 이정옥 대구카톨릭대 교수. 냉전체제의 희생양이 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반도문제를 내부문제로 치부한다. 우리는 한국의 경험을 단지 한국의 문제고 보는 것이 현실이다.(이정용 기자)
이정옥(이하 이) 먼저 남북정상회담과 화해·통일과정, 세계적 차원의 평화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봅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방안도 논의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기대한다. 월든 벨로(이하 벨로)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모두 흥분했다. 마막 남은 냉전국 사이에 이뤄진 획기적인 돌파구였기 때문이다. 또한 두 아시아 국가가 주도한 외교적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시아사람들이 아시아사람들과 회담을 진행해나갈 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약 1년3개월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평화와 화해의 과정은 위기에 빠졌다. 또 이 과정에서 문제점들도 드러났다. 우선 남북정상회담이 개인적 차원에서 추진되거나 정부 차원에서만 추진됐다. 남북화해과정을 적극적으로 진전시켜나가도록 하는 대중적 시민단체들의 지지가 부족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 몇달 동안 한국 시민사회가 이런 중요한 과정에 중심적이지 못하고 옆으로 물러나 박수만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부시 정부의 등장으로 남북 화해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남북정상회담이 잘된다면 그것은 한국인의 승리일 뿐 아니라 아시아인의 승리다. 왜냐하면 미국의 개입없이 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한의 NGO들은 현재 난관에 빠진 이 과정을 전진시키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에너지를 끌어내려고 더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 아시아 시민사회로부터 나오는 추동력을 보태야 한다. 그래서 남북 화해와 평화의 과정이 다시 시작돼야 한다. 남·북 정부에 바라는 것은 우리를 경쟁자나 위협자으로 보지 말고, 평화를 위한 논의과정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줄 협력자로 봐달라는 것이다.

사진/ 브리드 브래넌 TNI 연구원. 유럽문제는 한국의 문제다. 유럽의 시민사회가 평화운동, 군축운동 등의 쟁점에 참여하고, 좀더 한국의 화해와 평화과정에 개입해야 한다.(이정용 기자)

사진/ 조셉 거슨 친우봉사회(AFSC)활동가.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의 평화 논의를 궤도에서 이탈시키려고 했다. 김대중에게 굴욕감을 강요했다. 이것은 미국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이정용 기자)

사진/ 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 시민사회뿐 아니라 한국 이외의 정부와 조직된 정치세력이 도와주는 것이 미국이 진행하는 정치적, 군사적 행동에 제동을 거는 데 본질적으로 필요하다.(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