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예비후보가 2012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선수단 본진을 지난 7월2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격려하고 있다. 인천공항/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황선홍·안정환·김주성이 모인 이유는 한국의 스포츠 국가주의는 수십 년 동안 집권 정치세력이 배양해왔다. 쉽게 말해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이 주로 만들었다. 스포츠 국가주의라는 나무는 분단과 체제 대결이라는 흙에서 자랐다. 공산주의 북한을 모든 방면에서 이겨야 했다. 스포츠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1960~70년대 북한은 남한보다 선진국이었다. 스포츠라도 이겨야 했다. 열정보다 증오, 즐거움보다 각오가 비료로 뿌려졌다. 1966년 김기수-벤베누티 전에서 벤베누티의 대전료는 정부 예산으로 지출됐다. 1966년 태릉선수촌이 처음 만들어졌다. 북한이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데 자극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친인척과 측근을 통해 체육단체를 관리·육성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 즉 박근혜 후보의 사촌오빠인 박준홍씨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을 맡았다.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인 ‘피스톨 박’ 박종규씨를 세계사격연맹장에 앉혔다. 복싱 선수들에게는 종종 하사금을 줬다. 일본 오키나와의 가라테에 뿌리를 둔 혐의를 받는 태권도가 민족무술로 둔갑하고 국가 지원을 받은 것도 이 시기였다. 언론이 즐겨 쓰는 ‘국위 선양’이란 말 안에 이미 국가주의가 숨어 있다. <조선일보> 데이터베이스에서 ‘국위 선양’을 검색하면 ‘1937년 7월16일 석간 21면’ 기사가 처음으로 나온다. 제목은 ‘비상시에 대처할 3대 원칙 천명. 산회 후 일동 국위 선양 기원제에 참렬(參列). 긴급 지사회의 경과’. 당시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전쟁에 나선 상태였다. 총동원 체제가 시작됐다. 학교·관공서 등에서 자주 ‘국위 선양 무운 장구’(國威宣揚 武運長久) 기원제가 열렸다. ‘나라의 위세를 드높이고, 군인의 운수가 길고 오래 지속’하기를 바라는 행사다. 대한체육회의 이번 조처는 앞세대의 ‘국위 선양’ 지상주의가 2012년에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대한체육회장은 1940년생의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다. 그는 1982년 대한유도협회 부회장직을 맡으며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프로야구 등을 도입해 자본주의 스포츠산업의 새 장을 열었다. 그러나 국가대표 엘리트 스포츠에서만큼은 선배 군인 대통령과 다르지 않았다. 1978년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정부도 월드컵을 개최해 내부 문제를 국가주의로 덮으려 했다. 스포츠가 정치에 악용된 최악의 사례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개최한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다. 정치인들은 노골적으로 스포츠 열기를 선거에 써먹으려 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의 칼럼 ‘선거판 얼굴마담 스포츠 스타들’(2008년 4월3일 <서울신문>)에 상징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둔 3월31일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 축구 스타들이 모였다. 당시 부산 아이파크의 황선홍 감독과 안정환 선수, 울산 현대 김정남 감독,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부회장, 김주성 사무총장이 모였다. 프로축구 시즌 중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지역에 출마한 정몽준 의원은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었다. 정 의원은 2002년 대선 때도 선거운동 당시 대한축구협회 임원들에게 수행을 강요해 비난을 샀다. 그러나 달라진 측면도 있어 x축에 ‘스포츠’를 두고 y축에 ‘정치’를 둔 좌표평면에서 2012년의 한국은 어디쯤 위치할까? 정윤수 평론가는 ‘스포츠팬의 높은 민도’와 ‘정치인·기업가의 여전히 낮은 의식’으로 표현했다. “(스포츠) 민도랄까 네티즌 반응을 보면 변해도 많이 변했다. 체육계가 구태를 보이면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따위냐’고 하는 시기임에도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은 ‘팬들은 떠들어라, 어차피 사람들은 ‘온 국민’이라는 테마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한체육회의 행태를 보면, 스포츠를 국가나 기업의 전유물로 삼고 이미지 개선에 활용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 평론가는 스포츠의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효과도 지적했다. “(올림픽이) 예리한 정치 이슈나 사회 이슈를 잠식하는 효과는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여당에 유리하다.” 이런 효과는 진보·보수와 무관하다. 2002년 월드컵 열기는 집권당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손해될 게 없었다. 당시 정몽준 의원이 월드컵 효과를 다 가져갔다는 분석이 많았다. 정 의원도 당시 집권당 후보와 연합을 논의하던 ‘범집권당 쪽 후보’였다. “예전처럼 거대한 퍼포먼스로 스포츠의 열기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실제로 줄었고 그런 시도를 (정치권이) 한다면 팬들이 비난할 정도로 팬심과 민도는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스포츠의 이런 열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거나 기업 이미지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활용하겠다는 (정치인과 기업가의) 의도는 여전한 것 같다.” 다만 정 평론가도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언급했다. “노골적으로 유력 정치인이 이걸(스포츠 열기) 어떻게 활용해볼까 하는 건 사라졌다. 오히려 우려하는 정치인도 있다. 최근 한 야권 대선주자 캠프를 우연히 들렀는데, 그 후보는 올림픽의 열기가 정치인이 붐업할 수 있는 계기이긴 한데 옛날처럼 메달리스트에게 전화하고 사진 찍고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고 후보 본인의 이미지나 정신과도 맞지 않는 것 아닌가 고민하고 있었다.” 정 평론가는 그 후보에게 메달을 못 따고 먼저 귀국한 선수들을 만나고 격려하는 ‘전술’을 조언했다고 덧붙였다. 누가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때를 묻히나 스포츠를 통해 호감과 지지를 유발하려는 정치인의 노력은 이처럼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다만 과거에 비해 스포츠 정치마케팅이 섬세하고 다양해졌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는 7월9일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문 후보는 유도 국가대표 선수들과 대련했다. 문 후보는 7월8일에는 경기도 일산 대화동 고양 원더스 야구단을 찾았다. 패자부활이라는 구단의 특징을 자신의 정치철학과 오버랩시키려는 의도다. 김두관 후보의 지지 모임인 ‘피어라 들꽃’에 야구팀 넥센의 김병현 선수가 지지자로 이름을 올려 주목을 끈 바 있다. 김 후보 쪽은 “김두관 캠프의 지인과 김병현 선수가 오랫동안 아는 사이다. 김병현 선수가 지인을 통해 김두관 후보가 살아온 과정을 알게 됐고, 자신처럼 어렵게 자란 것 등에 호감을 갖게 돼 지지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스포츠는 놀이다. 국가주의와 자본에 물들지 않은 즐거움에 스포츠의 참된 위안이 있다. 이런 스포츠의 이상향을 정윤수 평론가는 ‘진정한 천진난만’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정치는 지금까지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더러운 세상을 가르쳐왔다. 아이는 2012년에도 아직, 때가 묻어 있다. *참고 문헌: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정희준·개마고원), <축구 전쟁의 역사>(사이먼 쿠퍼·이지북), <축구장을 보호하라>(정윤수·사회평론)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