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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주의 트윗- 대선 후보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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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16 17:10 수정 : 2012-07-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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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슬로건 대세인 이유는?

고단한 시민 삶 반영한 치유 언어로 채워진 슬로건, 가짜 감별해야

슬로건은 일종의 전투 구호다. 피아가 서로 섞여 전투를 벌일 때 자기 편을 격려하거나 집합행동을 유도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구호다. 익숙한 구호를 사용해 기억하도록 하고 그를 통해 정체성을 갖게 하는 소리 토템인 셈이다. 구호 아래 같은 편이 모이게 하는 호루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피아를 구분케 하고 더 많은 같은 편을 모으는 게임인 선거 국면에서 멋진 슬로건을 갖는 일은 정치 일정에서 고지를 차지하는 사건이다.

대선 정치 일정이 무르익자 주자들의 정치 슬로건이 착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한 톤도 있지만 지금까지 등장한 슬로건은 대체로 호젓한 호루라기 소리로 이뤄져 있다. 꿈, 보통, 평안, 치유의 어휘가 대세다. 위로의 흔적이 역력하다. 부정적 어휘를 담은 슬로건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고집과 불통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 지쳐하는 시민들의 표정을 읽은 결과로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주목을 끌었던 경쟁, 돈, 성장 슬로건과는 대조를 이룬다. 말을 퍼붓는 대신 건네야겠다는 생각을 정치권이 이제야 하게 된 모양이다.

살벌한 전장에서 쓰일 전투 구호가 호젓해졌음은 이번 대선 국면의 풍경을 예고하는 일이기도 하다. 후보자들끼리 엉켜붙는 육박전의 풍경은 연출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경쟁자끼리 마주 보는 눈싸움이 아니라 은근한 눈빛으로 시민을 바라보며 호소하는 게임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누가 더 잘 시민과 입과 발을 맞출지 경쟁하는 시간이 되리라 예고한다. 심상(이미지)과 운율을 담은 시적 슬로건이 더 많은 호응을 얻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렇다.

정치 슬로건은 슬로건일 뿐이다. 좋은 슬로건은 남보다 한발 앞서는 결과를 선사하긴 하지만 정치 승리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후보자의 입과 발이 슬로건과 공명을 일으킬 때 비로소 슬로건은 펄펄 날게 된다. 과거의 행보가 슬로건과 어떻게 화합하는지도 슬로건 평가의 관건이다. 후보자의 과거를 들추고, 미래의 비전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로건 배틀은 더 많은 발언이 등장하고, 더 많은 과거 행보가 드러날 지금부터라고 보는 편이 맞다.

대선주자들이 신발끈을 묶으며 정치적 슬로건을 내놓았듯 시민들도 마음 다지기를 시작할 때가 된 듯하다. 정치 슬로건 따지기의 과제가 시민들에게 선사되었다는 말이다. 말을 퍼붓고 비트는 시대의 마감은 곧 정치 슬로건을 정치인의 과거, 미래와 겹쳐가며 따져보는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담을 내용도 그런 것 아닐까 싶다. 가짜 위무는 아닌지, 슬로건의 이미지만 깔끔한 것은 아닌지, 과거 행보와 슬로건이 도무지 아귀가 안 맞는 것은 아닌지, 맨얼굴과 화장 간에 너무 큰 차이가 있지는 않은지. 대선주자들의 정치 슬로건, 제대로 묻고 따질 시간이 왔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


후진 박근혜, 후진하는 비판

표절 의혹 받는 박근혜 대선 구호에 쏟아지는 힘없는 조소

[%%IMAGE3%%] 꿈보다 해몽이랄까, 아니면 원작을 능가하는 패러디의 역동성이랄까.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의 대선 심벌 아이콘과 슬로건이 화제다. 논란은 2가지다. 이미 있던 걸 베꼈다는 것이고, 문장 구성이 너무 후지다는 것이다.

박 의원의 이름 초성인 ‘ㅂㄱㅎ’을 형상화한 심벌 아이콘에 대해 새누리당의 또 다른 대선 후보인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반발이 거세다. 자신이 훨씬 전에 이미 이름의 초성을 따 ‘ㅇㅌㅎ‘ 이모티콘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슬로건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에 대해선 민주통합당이 시시비비를 따지고 있다. 민주당 김기식 의원은 자신이 활동하던 단체 ‘내가 꿈꾸는 나라’의 표절이라고 몰아세운다. 인터넷의 반응은 더 차갑다. 결국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란 박근혜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냐는 조소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박 의원의 대선 심벌 아이콘과 슬로건 논란은 바야흐로 정국이 농염한 정치의 계절로 접어들어 진영과 그 지지자들 간에 본격적인 물고 뜯기가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는 편이 더 정확하다. 박 의원의 심벌과 슬로건을 비난하며 그녀의 무른 도덕관념과 내용과 구호의 괴리를 지적하기엔 우리나라 정치 전체가 너무 추상적이고, 너나 할 것 없이 대중추수적인 가치를 앞세운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지금까지 나온 대선주자 누구의 슬로건도 사실 큰 틀에서 보면 박 의원을 비판하는 논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 정도가 사회적·경제적 가치의 지향을 잘 길어내 형상화한 축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슬로건 문장의 후진성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을 뽑은 문재인 상임고문의 그것과 ‘빚 없는 사회’를 내세운 정세균 상임고문의 그것 역시 만만치 않다. ‘신3균주의’(지방균형발전·남북균형발전·사회균형발전), ‘아래로부터’를 내세운 김두관 전 경남지사 역시 내용을 온전히 포착해낸 언어감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문 상임고문의 디자인은 노골적으로 참여정부의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도록 강요하고, 정 상임고문의 구호는 새누리당 후보가 주장한들 전혀 어색하지 않은 구성이다. 대선주자 그 누구도 ‘위에서부터’를 슬로건으로 쓰진 않을 것이다.

그나마 박 의원이 홍보 라인을 대거 보강하며 자신이 취약한 계층에게 소구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려고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슬로건의 1차적 목표는 그 지점에서 달성되는데, 박 의원을 나무랄 건 없다. 그래서인지 세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캠프의 조윤선 대변인은 슬로건 논란에 대해 “그만큼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여유를 보인다. 박 의원을 향해 진영이 일치된 힘을 모아 맹비난을 퍼붓는 것은 애석하게도 전혀 아프지 않은 것 같다. 별로 남다를 것 없음에도 유독 박 의원의 일거수일투족만 후지다고 느끼는 감수성을 대량 공유한들 선거 결과는 바꾸긴 힘들다는 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영화 <타짜>에서 아귀는 “복수 같은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 말고 고깃값을 번다는 각오로 덤비라”고 했다. 지금 박근혜를 향한 조소와 비난은 이미 지나간 세월에 대한 복수감으로 너무 충만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우리에게 고기 값을 벌어줄 것이냐 인데, 그건 이상하리만큼 너무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김완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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