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12일 이인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가운데)이 박연차 로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좌우에는 중수부 수사팀이 앉았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중수부가 다시 수사를 하게 된 계기는 새롭게 등장했다는 13억원 때문이다. ‘3년 전 수사 종결 당시에는 몰랐던 새로운 내용이 나왔으니 다시 봐야 한다’는 논리다. 검찰은 이미 3년 전 정연씨에게 집값으로 흘러간 140만달러를 계좌추적과 혐의거래에 대한 사법 공조를 통해 확인해놓은 상태다. 이렇게 확인한 140만달러는 ‘노무현 공소권 없음-박연차 내사종결’로 어쩔 수 없더라도, 이번에 새로 등장한 13억원(환치기 뒤 100만달러)은 수사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수부는 지난 2월27일에는 박 전 회장을 불러다가 “지금 문제가 된 13억원은 내가 준 돈이 아니다”라는 진술까지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부적절한 처신까지 감쌀 수는 없다 하더라도, 묻어두기로 했던 과거를 민감한 시점에 다시 들쑤시는 중수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야당 등으로부터 ‘매우 고약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극우단체인 국민행동본부(대표 서정갑)는 지난 1월 말 13억원 의혹과 관련한 수사의뢰서를 대검에 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대대적인 검찰 개혁 요구를 촉발했던 중수부가 극우단체의 수사의뢰서 한 장에 움직인 것도 그렇지만, 수사 실익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건에 검찰총장 직할부대인 중수부가 나선 것도 검찰 수사 방식을 아는 이들을 갸웃하게 만든다. 검찰은 형사처벌이 가능해야 움직인다. 노 전 대통령이 숨진 상황에서 법적 책임을 물을 대상이 없기 때문에 13억원 의혹도 공소권 없음 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설사 정연씨를 뇌물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하려 해도 정연씨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않으면 처벌은 어렵다. 수사 실익은 없지만 ‘먹물 튀기기’ 효과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조선일보> 등은 3년 전에도 자신들이 보도했던 내용을 마치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내용인 양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고문 등을 공격하는 불쏘시개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권력을 잡을 경우 필연적으로 불어닥칠 검찰 개혁을 막으려 중수부가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다시 칼을 겨눴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 개혁의 첫 번째는 중수부 폐지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검찰 수뇌부가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쪽에 줄을 선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대검 고위 관계자는 “수사 착수에 대한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고 했다. “그런 시각은 너무 기계적이다. 이 사건은 일단 수사 의뢰가 들어온데다 마침 이씨 형제도 한국에 들어왔다. 우리가 사전에 이씨와 접촉한 사실도 전혀 없다. 우리가 수사 착수 시기를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경씨와 함께 일하다 사이가 틀어진) 이씨는 경씨를 어떻게든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수사 시기, 얼마든지 ‘선택’ 가능해 수사 착수 시기는 사실 ‘선택’이 가능하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더욱 그렇다. 검찰은 총선 등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시기에는 관련 수사를 가급적 피해왔다. 이에 대해 대검 고위 관계자는 “총선을 넘겨 수사에 들어갔다면 이번에는 또 대선에 영향을 주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을 것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도 그랬지만 큰 선거로 갈수록 이런 식의 압박은 점점 더 심해진다”고 했다. 중수부는 2009년 6월 관련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끝내며 “이번 사건에 관한 역사적 진실은 수사 기록에 남겨 보존된다”고 ‘아쉬움’을 나타낸 바 있다. ‘역사적 진실’로 봉인해뒀다는 내용들이 불과 3년 만에 캐비닛에서 튀어나오는 데 이유가 없을 수 없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