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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다목적 카드 ‘낡은 색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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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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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의장의 사회주의 매도 발언 파문… 한나라당 지도부 계산에 정치적 야망 담아

사진/ 정부정책과 사회단체에 사회주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김만제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김 의장이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전교조에 대한 발언을 해명하고 있다.(김경호 기자)
김만제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한국판 메카시’인가. 그가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 ‘사회주의’라는 붉은 색깔을 연상시키는 꼬리표를 붙이고 다니면서 이런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의장이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꺼낸 것은 지난 7월24일. 인천에서 열린 한나라당 시국강연회장이었다. 그는 정부의 의약분업, 기초생활보장 등 복지·개혁정책을 겨냥해 “김대중 대통령은 외국에서도 용도 폐기된 낡은 사회주의적 정책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즉각 김 의장을 “색깔공세를 취하는 어설픈 사이비 정치꾼”으로 몰아세웠지만 한나라당과 김 의장은 당당했다.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용어를 공격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여당은 자성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7월31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이후 그의 ‘사회주의’ 발언은 사회적 논란거리로 발전했다. 전교조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회주의적 집단”이라고 비난한 것을 비롯해 노사정위원회, 주5일근무제, 정기간행물법 개정론, 신자유주의 등에 모두 ‘사회주의’라는 꼬리표를 붙였기 때문이다.

전교조 등에 사회주의 꼬리표


전교조, 민주노총, 한국노총, 언론노조 등이 당장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8월2일 한나라당사 앞에서 “김 의장의 직위를 박탈하라”고 외치며 페인트병을 던지는 등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회창 총재의 명확한 태도 표명도 함께 요구했다.

김 의장의 발언이 시민단체와 한나라당 사이의 전면전 양상으로 번지자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겉모습은 김 의장을 두둔하는 듯하다. 권철현 대변인은 8월3일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야당 당사 진입을 시도하고 붉은 페인트를 뿌리는 모습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시민단체는 자숙하라”면서 “모든 혼란과 국론 분열상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권의 홍위병’인 시민단체와 이를 사주한 김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휴가중인 이 총재는 전교조가 시위를 벌인 2일 김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제를 당부했다. 이 총재는 “대정부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은 좋지만 전교조와 노조를 자극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냐”고 말했다. 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인 김락기 의원(전국구)을 비롯해 이부영·김원웅 의원 등도 “고위당직자로 특정단체를 지목, 매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거나 “당에는 아직 냉전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김 의장을 겨냥했다.

안팎의 비판에 직면한 김 의장은 2일 이후 일단 주춤거리고 있다. “가장 사회주의적인 집단”으로 평가했던 전교조쪽에 “전교조가 현재의 교육난맥상에 대해 여러 개혁을 요구하는 것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면서 “특히 사학비리 척결과 정부의 과도한 통제 해소 등을 위한 정책 입안에는 한나라당도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당분간 인터뷰를 자제하는 등 침묵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의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한국개발연구원장, 재무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포항제철 회장 등 정책 개발과 실무에 두루 경험이 있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대구 수성갑에서 6공 시절 ‘떠오르는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자민련 의원을 꺾고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5월9일 정책위 의장에 발탁된 뒤에는 “재벌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등 일률적 규제 대신 결합재무제표 공개, 사회이사제와 소액주주 권한 강화 등의 방식으로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자”거나 “주택양도세 면제”를 주창하는 등 보수층을 대변한 나름의 정책 대안을 제시했고, 여권이 이를 일정부분 수용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역대 의장 가운데 정치적 감각과 기획력이 단연 돋보인다”는 긍정적 평가도 많았다. 그런 그가 왜 극단적 발언을 거듭하며 스스로 위기를 불렀을까.

김 의장은 김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정육점 아저씨의 수술’에 빗댄 것은 “집회 분위기 띄우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기자에게 “내가 언제 당 3역회의나 기자회견에서 그런 말을 하더냐. 그저 집회에서 가볍게 한 말인데, 여당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말했다. 전교조 발언은 “너무 더워 오버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김 의장을 잘 아는 한나라당 몇몇 인사들은 “자유경쟁에 기반한 시장경제”에 대한 개인적 신념을 과도하게 표출했을 뿐, 실수는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도 당내 비판과 시민단체의 공격에 일시적으로 몸을 숙이고 있지만 ‘자유경쟁을 통한 효율성 확대’라는 소신을 꺾지 않겠다는 태도는 분명히 하고 있다. 3일 오전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문수 사무부총장은 “자꾸 적을 만들어 힘들다”고 김 의장 발언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김 의장은 “나더러 꼬리를 내리란 말이냐. 이 총재도 이념문제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을 것이다. 나에게 수고한다고 했다. 앞으로도 더욱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못말리는 정치적 신념 지도부 묵인

사진/ 김만제 의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집단으로 전교조를 꼽았다. 전교조 조합원들이 한나라당 당사로 들어가려는데 경찰들이 막고 있다.(김경호 기자)
그는 기자에게도 자기 주장의 핵심이 잘못 전달돼 오해를 빚었다며 정당성을 오랫동안 역설했다. 정부의 의약분업 정책은 “점진적으로 의료서비스를 민간 영역으로 확대해야만 질이 향상되는 데도 김대중 정부는 오히려 민간영역을 없애고 정부관리 아래 두려고 한다”면서 “그래서 낡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고 말했다. 논란의 핵으로 등장한 전교조 비판도 “비리 교주(학교주인)를 자연발생적으로 처벌하고 도태시키는 방향으로 단계적 개선을 시도해야지, 전교조가 말하듯 인위적인 법으로 교주와 학교 운영을 분리해 자본주의의 근간인 소유권문제를 두부 자르듯 자르는 것은 사회주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 비판의 핵심은 점차 경쟁을 촉진해 효율성을 높이는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서 정부가 자꾸 평등주의를 강조하면서 자원을 총동원해 경제·사회·복지 등의 문제를 모두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낡은 사회주의적 사고라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김 의장이 아무리 ‘경쟁을 통한 효율’을 확신한다고 해도 당 지도부의 묵인이나 동조없이는 이런 발언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김 의장 발언에는 이 총재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계산과 노림수가 함께 숨어 있다는 것이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며칠 전부터 의장님 발언이 도를 넘어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참모진들은 말렸다. 하지만 정치적 감각이 무뎌 실수하신 것 같다”며 순수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총재의 한 측근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은 아니지만 당 안의 일정한 기류를 반영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사회주의’ 발언을 사주했거나 시나리오에 따라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발언으로 촉발될 정치적 이해득실은 계산했다는 것이다. 몇몇 당직자들의 해석은 이렇다. 먼저 민주당에서 노무현 상임고문이 이회창 총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저격수’로 떠올랐다. 이 총재가 직접 나서 맞대응하기는 거북하고 누군가 나섰으면 하던 때 김 의장이 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말릴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내년 대선에서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자극하기는 어렵겠지만 여야를 구분할 대결구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당 안에 널리 퍼져 있다. 특히 구 민정계 등 보수성향 의원들은 여권을 중도좌파로 몰아 보혁대결 구도를 만드는 게 대선에 유리하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김 의장의 발언은 여당의 정책을 싸잡아 좌파로 모는 효과적 수단이다. 김 의장도 기자에게 “김 대통령은 중도우파라고 주장하지만 내 눈에는 좌파적 생각으로 서민의 인기를 끌려는 중도좌파로만 보인다”면서 “자꾸 그런 사람들이 그쪽으로 모여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이 이런 당내 기류를 읽고 발벗고 뛰는 것까지는 이 총재로서도 크게 문제될 게 없는 셈이다.

이 총재의 다른 한 측근은 “김 의장이 오버하면서 전교조 발언 등으로 전선을 너무 넓혔다”고 비판했다. 총재가 발끈한 것은 김 의장의 무차별적인 ‘사회주의’ 발언이 당 언론자유수호특위(위원장 박관용 의원)의 홍위병 발언에 분노하던 시민단체에게 한나라당에 대한 직접 공격의 명분을 줬다는 경계표시인 셈이다.

김 의장이 ‘오버’한 원인 분석도 다양하다. 이 가운데 이른바 ‘총리 대망론’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부총리까지 지낸 김 의장이 이 총재가 집권했을 때 총리자리를 노리면서 경쟁관계에 있는 홍사덕 의원 등을 의식해 너무 앞서 나갔다는 게 그 핵심이다. 김 의장은 “나는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할 줄 모른다”며 소신발언임을 강조했다.

“이념적 표현에 대한 거부감일 뿐이다”

김 의장 발언 의도와 노림수가 무엇이든 그의 발언은 우리 사회에 다시 한번 색깔논쟁을 불러왔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시민사회단체는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원초적 본능’을 지적하며 김 의장의 발언에는 그 본능을 자극해 색깔을 덧씌우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반박한다. 김 의장은 그러나 “나는 사회주의도 아닌 사회주의적, 그것도 낡은 사회주의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그런데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맘에 안 든다며 과민반응하는 것은 바로 그쪽”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우리 모두가 아직 이념적인 표현에 익숙하지 못해 용어에 거부감을 갖는데, 언젠가는 익숙해져야 한다”면서 “앞으로 여야 모두 각자의 정책을 통해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고 유권자들은 득실을 따져 선택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이념과 색깔로 지지정당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김 의장은 “대선을 앞뒀고, 절대 빈곤층이 존재하는 만큼 한나라당도 낡은 사회주의적 정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 국가의 간섭을 줄이고 경쟁을 촉진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라면서 “그것이 수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유권자들이 다른 쪽을 선택하면 된다”고 자신감까지 내보였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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