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토론 호평, 블레어 스타일 벤치마킹…이미지 변신에 주력하는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
<한겨레21>은 올 신년호 표지이야기(340호)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 등 여야 대선주자 11명에 대한 전문가들의 자질평가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정치학자 52명과 중앙언론사 정치부 기자 60명 등 112명의 평가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대선주자는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다. 전문가들은 ‘도덕성’, ‘민주개혁의지’, ‘통일비전’ 등 3개 항목에서 김 최고위원을 1위에 꼽았고, ‘지역갈등 해소’와 ‘경제적 비전’ 등 2개 항목에서는 2위로 지적했다. 단 하나 ‘강력한 지도력’ 항목에 대해서만 9위로 낮게 평가했다.
이 결과에 어리둥절한 독자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기사가 나간 뒤 독자로부터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군복무중 잠시 휴가나왔다가 기사를 봤다는 독자는 “김근태라는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고 적어보냈다.
전문가들의 높은 자질평가와 국민들 사이의 낮은 인지도 및 지지도. 차기를 꿈꾸는 김근태의 가능성과 한계는 모두 이 격차 사이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격차를 얼마나 줄이느냐, 하는 것이 김 최고위원의 대선가도 성패를 좌우할 열쇠인 것이다.
이런 김 최고위원 주변에 최근 눈길을 끄는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언론사 세무조사 관련 TV토론에서 핵심을 찌르는 논리전개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더욱이 6월30일 출연했던 한국방송의 <생방송 심야토론>의 경우 10%를 넘는 시청률로 역대 토론프로그램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김 최고쪽 관계자들은 “김 최고위원의 대중적 이미지를 한껏 높였다”고 들뜬 분위기다. 민주당 안팎에서도 “평소 김근태가 말을 너무 어렵게 하는데다 점잖아서 TV토론에서는 재미를 못 봤는데, 이제 ‘TV토론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감을 잡게 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있는 것일까. 김 최고의 대선행보가 한결 바빠지고 있다. 지난 4월 자신의 싱크탱크격인 한반도재단을 출범시키며 대선행보를 공식화한 김 최고는 최근 매주 화요일 기자간담회를 정례적으로 열어 대언론접촉 확대에 나섰으며 7월22일에는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과의 민주세력 연대를 공식선언했다. 그를 7월28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2시간 남짓 만났다.
-7월22일 노무현 상임고문과 만나 연대를 공식 선언했는데.
=개혁과 변화에 함께 참여하자고 하는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공식화하는 것이 유력한 방도라고 노 상임고문과 합의하게 된 것이다. 민주세력을 좀더 힘있게 결집시키고 그것을 통해서 다시 외연을 확대하는 게 지금 시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연대는 국민 앞에서의 약속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도 87년처럼 민주화세력이 분열되는 일을 막겠다는 약속이다.
-민주세력이 함께 모여서 대선정국을 돌파하자는 것인데, 민주세력의 단결로 정권재창출이 되나.
=그 세력만으로는 어렵다. 그러니까 민주세력만 똘똘 뭉치자는 게 아니다. 우선 우리가 결집하고 그래서 그 힘으로 외연을 확대해나가면, 국민들이 아, 저기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라는 기대를 갖는 것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누구냐,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87년 전후까지는 민주 대 반민주의 대치선이 명료했다. 그러나 이제 극복대상은 국민들이 모두 동의하는 부패특권세력이라고 본다. 이들을 보수세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보수와 개혁의 대결이 아니다. 부패특권세력을 제외한 중산층과 서민, 이 부분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모든 세력과 연합하고 동맹해야 한다. 그 첫 출발로서 민주세력이 먼저 결집하자는 것이다. 87년 이후 민주화운동세력이 범했던 과오 중 하나는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안으로 오그라든 것이다. 이런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강조한 것이다.
-민주세력결집론에는 민주세력의 독자세력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제3정당, 대안정당은 찬성하지 않는다. 지금은 또 한번 참 중요한 시기다. 폭넓은 연합 내부에서 민주화세력의 후보를 전체 후보로 만드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민주화세력 후보가 전체 후보가 안 될 때는 버금가는 역할, 그것을 통해서 정치의 민주화가 앞당겨지는 이런 방향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동안 민주당에서는 한화갑 최고위원과의 3각연대 얘기가 많이 돌았다.
=한 최고는 살아온 것도 그렇고, 정책적 판단을 할 때 유사한 판단을 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연배가 다소 위이고, 본인 말대로 김대중 대통령과 오랫동안 함께 걸어온 태생적 한계 같은 것 때문에 운신을 자유롭게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선 노무현과 김근태가 먼저 움직인 것이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연대에 대해 부정적인데.
=분열적 지역주의의 극복과 1인보스체제의 극복, 정치자금의 투명성 등 세 내용만 충족한다면 누구하고도 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최고가 연대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이 최고가 이 내용을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현재 대중적 지지도에서 앞서 있는 것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추측되고 그것도 현실정치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언론사 세무조사 관련한 TV토론에 출연한 뒤 당안팎에서 토론내용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자부심을 느낀다. 으쓱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었고 우리 입장이 정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해도 잘할 수 있는 토론의 주제였다. 언론문제여서 정치인은 심리적 부담이 있다. 그래서 심리적 부담 그런 것만 극복하면 양식있는 정치인은 다 잘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측근은 “토론 참석 전 너무 점잖게 나가지 말고 좀더 공격적으로 나가자는 얘기가 내부에서 있었고, 김 최고도 이런 조언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며 나름대로 준비된 쾌거(?)였음을 내비쳤다.)
-TV토론에서 염두에 뒀던 것은.
=솔직히 말하면 우리 시대 마지막 성역인 언론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국민의 정부에서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했다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느낀다. 절대성역은 절대부패한다. 그것은 민주주의 원칙에도 안 맞고, IMF 관리체제 이후 국민적 합의였던 투명성의 확보, 투명성의 실현에도 맞지 않느다. 그래서 자부심 갖고 TV토론에 나갔고, 토론을 통해 국민에게 이 자부심을 동의받고 지지받아야겠다, 이런 생각했다.
-TV토론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탓인지 최근 여론조사 지지도가 상승했는데.
=여론조사가들이 머리를 드는 것 같다고 한다. 아직 상승기류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최근 어떤 여론조사에서는 6.4%까지 나왔다.
-연초 2% 수준에 머물던 지지도와 비교하면 많이 상승한 것이다. 그러나 애초 8월까지 1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정치를 시작한 지 6년 됐는데, 마음에 이런 부담이 있다. 재야운동을 오래하고 독재세력과 많이 싸워서 강경파다, 비타협적이다, 이런 이미지가 있어서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이런 이미지를 벗기 위해 항상 큰소리보다는 합리적으로 절차와 체계를 밟아서 일을 처리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이 국민들 눈에 잘 띄지 않은 원인이 된 것 같다. 또 하나는 정치에는 일종의 연기, 연출적 요소가 있다. 재야운동에서는 그런 게 필요없었다. 진실함, 희생, 용기 이런 것만 있으면 된다. 재야에서는 오히려 연기, 연출은 사람들의 마음을 잡는 데 걸림돌이다. 그래서 연출 연기에 거부감도 있었다. 뭐 내가 사기꾼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것들이 현실정치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을 마음으로부터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요즘 김 최고는 머리를 조금 기르고 다닌다. 개인적으로 아는 헤어디자이너의 충고 때문이라고 한다. “얼굴이 작아 사람들 사이에 서면 왜소해 보인다. 그래서 토니 블레어 스타일로 머리를 길러 보완하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영국 노동당 역사상 처음으로 연속집권에 성공한 토니 블레어 스타일의 벤치마킹, 김 최고가 이미지 연출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려는 변화의 몸짓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김 최고는 실제 “이렇게 하는 것에 다소 심리적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김근태의 변화다”라고 잘라 말했다.)
-재야 출신들이 본격 정치입문한 것은 87년부터다. 그러나 아직 분명한 정치세력으로 홀로서기를 못하고 있는데 재야 출신의 대표로서 지도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부덕의 소치다. 사실 양김만 분열한 게 아니라 재야세력도 분열했다. 여야로 나뉜 것뿐 아니라, 민주당 참여과정에서 시기적으로도 서로 다르고, 그리고 단계적으로 들어와서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기 어려웠다. 또 현실정치에서 공천을 결정하는 당의 중심 부분이 재야를 견제하고 개별화했다. 이것을 다시 묶어내고 통합시키는 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부끄럽게 생각한다.
-5월 정풍파의 당정쇄신 요구가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을 맞아 일단 잠복한 것 같다.
=지금은 언론개혁을 둘러싸고 개혁을 통해 바꿔가자는 국민들도 결집하고, 이것에 반대하는 세력도 결집하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는 개혁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동력을 다시 모을 수 있는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여권 자신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언론기업에 대한 세무조사결과가 사법적으로 처리된 뒤 여권도 쇄신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아 민주당이 뭔가 좀 새롭게 다시 해보려고 하는 구나, 하고 기대한다. 그래야 큰 방향에서 옳은 길을 가는 국민의 정부의 개혁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물론 쇄신의 범위와 시기는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다. 그러나 너무 늦지 않아야 한다.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는데.
=대통령이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믿고 있다.
-지금까지 DJ 정부의 개혁은 스스로 자기기반을 잘라내는 개혁이라는 혹평도 있다. 예컨대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경우 대량해고가 불가피한데, 이때 피해자는 DJ 정부의 지지층인 서민 아닌가. 대안은 없나.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개혁을 지속하면 정치적 기반이 축소되고, 그렇다고 개혁을 중지하면 나라가 망한다. 한마디로 피눈물을 흘리는 상황에 서 있다. 그래서 사회안전망 확충이 대단히 중요하고 투명성 확보가 아주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집권세력이 뭔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국민들 눈에 저 사람들만 잘나간다, 이런 모습으로 보이면 이 개혁은 지속할 수 없다. 그래서 거듭 태어나기 위해 우리의 희생과 쇄신이 필요하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 김근태 최고위원은 한반도재단 지부설립 일정에 맞춰 지역순회강연에 나서고 있다.(이용호 기자)

사진/ 김근태 최고위원.(이정용 기자)

사진/ 7월 4일 오전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민주당 당무회의에 앞서 한화갑 최고위원과 노무현 상임고문, 김근태 최고위원(왼쪽부터)이 악수를 하고 있다.(윤운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