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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 발로 나가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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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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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보수의 ‘눈엣가시’ 김원웅 의원, 연이은 소신발언…당지도부 징계수위 놓고 고심

사진/ 한나라당의 대전 시국보고대회를 거부해 파문을 일으킨 김원웅 의원. 그의 소신발언이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이용호 기자)
김원웅 의원(대전 대덕). 그는 정치권에서 ‘야당 속 야당 인사’ 또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민족주의자’로 불린다.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이 정책과 대여투쟁 방침을 내놓을 때마다 탈냉전·탈맹주·탈지역 등 이른바 ‘3탈 원칙’의 잣대를 들이댄 뒤 거침없이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그에게 ‘타협’, ‘망설임’ 등의 단어는 왠지 낯설었다.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지원론, 국가보안법 개정 불가, 미국 주도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 찬성,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음모론…. 당이 정한 이런 당론에 대해 그는 어김없이 딴소리를 해댔다.

“언론 권력 비호하는 집회 열 수 없다”

그런 그가 지난 7월22일 개인적 고뇌를 견디다 못해 지리산 실상사로 도법·수경 두 스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고민을 털어놨다. “제가 이렇게 계속 버티는 게 옳은 일인가요?” 두 스님은 “김 의원 얘기는 많이 들었다. 외롭지만 힘내라”고 용기를 북돋웠다.


굽힘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김 의원의 인간적 고뇌는 한나라당이 전국을 돌며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를 규탄하는 시국보고대회를 열면서 싹텄다. 김기배 사무총장은 7월18일 총재단회의에서 전국적인 시국강연회 일정을 보고하고 당론으로 확정했다. 7월20일 의정부를 시작으로 24일 대전, 27일 광주·전남, 8월8월 인천, 10일 충북·청주, 14일 강릉, 17일 서울로 이어지는 보고대회 일정을 의원들에게 통보했다. 그러나 대전시 지부장인 김 의원은 “대전에서 세습 언론권력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집회를 열 수 없다”고 반발했다.

한나라당은 발칵 뒤집혔다. 김문수 사무부총장 등 지도부가 대전집회 이틀 전인 22일까지 김 의원을 집중 설득했다. “광주에서도 집회를 하는데 대전에서 왜 못한다고 버티냐”는 것이었다. 김 의원은 그러나 “언론개혁의 당위성도 함께 주장한다면 몰라도 영남 일부의 정서를 충청과 호남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집회는 반대한다”고 버텼다. 당 지도부는 결국 집회를 하루 앞둔 23일 대전대회를 인천대회로 대체했다. 이는 한국 정당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야당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여 규탄집회를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당지역 의원이 좌절시킨 것 자체가 이변이기 때문이다.

당의 압박은 그뒤 더욱 거세졌다. 체면을 잔뜩 구긴 한나라당 지도부와 발끈한 당내 보수파 의원들은 “오는 8월8일 대전에서 보고대회를 강행하겠다”며 김 의원을 꺾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10여 차례 이상 전화로 설득전을 펼치던 김문수 사무부총장은 최근 이재오 총무와 함께 김 의원을 찾아와 “물러설 것”을 거듭 요구했다. 고민하던 김 의원은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회창 총재와 김 의원 자신이 연사로 나서되, 당에서 연사를 추가할 경우 김 의원이 추천하는 2명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의원은 기자에게 “현 정권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족벌언론의 폐해와 정권의 의도를 동시에 비판할 수 있는 인사에게도 발언권이 인정돼야 한다”고 타협안을 낸 이유를 설명했다. 김 의원은 김홍신·서청원 두 의원을 연사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오 총무와 김문수 부총장은 이 총재와 협의하겠다며 일단 물러섰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답변은 최후통첩성 경고였다. 7월25일, 이회창 총재가 직접 “이번에도 또 지난번처럼 문제가 생기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8일 대전집회마저 좌절시킨다면 당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겠다는 엄중 경고”라고 전했다. 김 의원의 ‘당론 거스르기’가 불거질 때마다 출당을 요구해온 보수파 의원들도 들끓고 있다. 이번에는 꼭 김 의원을 제명시키자는 것이다. 26일 열린 한나라당 국가혁신위 비전분과회의에서 이병석 의원(경북 포항)은 “극단적 진보주의자부터 진보적 운동권 출신까지 포괄된 당의 구성은 집권당의 실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한다”면서 “과감한 당의 포지션 이동”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의원의 발언은 번번이 당론을 거역해온 김원웅·서상섭·안영근 의원 등 이른바 골수 해당행위자들을 확실히 정리하자는 당내 영남지역 보수성향 의원들의 정서를 대변한 것이다.

출당은 오히려 날개 달아주는 꼴?

실제 당의 최근 분위기는 흉흉하다. 지도부는 적어도 김 의원은 반드시 손봐야 한다는 강경한 분위기로 기울었다. 이 총재의 다른 한 측근은 “총재가 그동안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인정하는 ‘퓨전정당’을 지향하며 일부 의원의 돌출행동을 수용했다. 그러나 김 의원의 발언과 행동은 도를 넘었다. 더이상 참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민은 김 의원을 손볼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재 당 지도부는 경고, 시지부장직 박탈, 제명 및 출당 등 3가지 방안을 놓고 그 효과를 저울질하고 있다. 경고는 김 의원이 무시하면 그만이다. 자칫 총재와 당 지도부만 더 우스워질 수 있다. 제명 및 출당은 김 의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까 더 걱정스럽다. 당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탈당 명분을 얻기 위해 계속 당론에 딴죽을 거는 것 아니겠냐”는 웅성임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더욱이 김 의원을 출당시킬 경우 이 총재의 수구적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물론 이부영·서상섭·안영근·김홍신 의원 등 당내 개혁성향 의원들의 반발도 각오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이재오 총무는 “의원 출당은 당으로서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할 사안”이라며 출당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한나라당 지도부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김 의원을 시지부장직에서 끌어내려 정치적 타격을 주는 방법 정도가 고작이다. 이 또한 ‘거저먹기’는 아니다. 시지부장은 해당지역 대의원들이 직접 선출한다. 전당대회를 전후해 직접투표로 교체하는 게 관례였다. 당 지도부에서는 현재 시도지부 운영위를 소집해 시지부장 교체를 결의하거나 내년 대선전에 대비해 중량감 있는 인사로 전국의 시·도지부장을 일괄 교체하면서 김 의원을 함께 하차시키는 방법 등이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김 의원이 나름의 명분을 가지고 버티는데다, 한나라당 유일의 대전지역 의원인 김 의원을 대체할 만한 중량감 있는 인사를 찾기도 수월찮다. 김 의원은 기자에게 “자를 수 있다면 한번 잘라보라. 당이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라고 징계 움직임을 비웃으며 “어떻게 세상의 변화에 그렇게 둔감한 사람들이 아직 현역 정치인으로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그는 오히려 “이 총재가 공천권이 나에게 있고, 내가 결정했는데 당 기강을 흔들 수가 있느냐고 분개하는 것 같은데…. 이제 그런 의사결정 과정은 바뀌어야 한다”면서 비민주적 당 운영 방식의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툭하면 당론을 어겼다고 나를 몰아세우는데, 총재의 사적인 이해인 대권도전의 유불리에 따라 당론을 정한 뒤 공천권을 무기삼아 모든 의원을 공격수로 몰아넣는 게 제대로 된 당론이냐. 이번 보고대회도 그렇다. 여야를 떠나 정치가 지금처럼 총재 한 사람의 사적 야심에 따라 움직여선 안 된다. 국민의 이해는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을 깨는 것은 시대적 요구다. 나는 결코 절망의 정치에 앞장설 수 없다. 내가 정치를 하는 동안 지켜야 할 양심의 마지노선이다.”

사진/ 경기도 의정부 시민회관에서 열린 시국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을 들어서고 있는 이회창 총재. 그는 김 의원을 출당시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김경호 기자)
“한나라당 개혁에 온몸 바치겠다”

이런 반발에 한나라당 지도부나 보수성향 의원들은 발끈하면서 이른바 ‘배신론’을 들이댄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되 뒤 맨날 딴죽만 건다”는 게 그 요점이다. 김 의원은 펄쩍 뛴다. “지난 총선 때 대전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는 2등도 없었다. 모두 3등이었다. 그런데 나는 민주당의 젊은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요즘도 유권자들은 그때 한나라당에 입당해 실망했지만 당이 아닌 당신을 보고 찍었다면서 소신껏 하라고 격려한다.”

당 일각에서는 그의 이런 소신과 명분, 보수적 당론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부담스러워한 나머지 김 의원이 알아서 당을 떠나주기를 바라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김 의원이 최근 ‘개혁신당설’을 언급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면서 그가 과연 탈당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논쟁까지 벌이고 있다.

김 의원은 시민단체나 학계·종교계 인사들, 특히 ‘화해전진포럼’을 중심으로 신당 창당 요구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정치권 바깥에서 지역주의적인 3당 구도로는 도무지 희망이 없다면서 참신한 인물들이 모여 새 정치세력을 형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퍼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제3세력을 만들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러나 그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스스로 탈당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무엇보다 나는 대선을 앞두고 야당을 분열시켰다는 책임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다. DJ가 현실정치인으로 존재하는 한 DJ 대 반DJ 정서에 기반한 지역구도로부터 주민들을 견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에게는 또 지난 15대총선에서 이철·박계동·제정구 의원 등과 꼬마민주당을 통해 시도했던 ‘제3세력화’ 노력이 실패한 학습효과가 남아 있다.” 때문에 그는 당 안에서 온갖 압박이 계속돼도 버티면서 한나라당 개혁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자신의 소임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안에는 결집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고, 나는 그 부분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어차피 한나라당이 영남기득권에 기댄 당 체질을 개선하지 못하고 민주당도 지금처럼 지역정당으로 계속 남는다면 이 땅에는 희망이 없다. 정당이 아니라 국가 발전의 암적 존재로 전락한다. 몸담은 한나라당이 지역주의를 탈색하고 민주적 체질로 개혁될 수 있도록 더 철저히 맞서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그러다 한나라당에서 쫓겨나면 모를까…. 내 발로는 절대 걸어나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총재가 김 의원을 출당시키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좌고우면하는 이상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 총재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보수성향 의원들, 그리고 김원웅 의원 사이에 끝없는 힘겨루기와 신경전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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