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1표 비례대표제 위헌판결로 정치권 긴장… 군소정당 활로 찾고 지역구도 완화 기대
지난해 2월8일 밤 선거법 개정안이 표결에 부쳐진 국회 본회의장. 본회의 전자투표 전광판에 표결결과가 찬성 151명, 반대 106명으로 나타나자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 “잘했어” 하는 환호와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나왔고 민주당 의원들은 침통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지역구 의원을 상대로 한표를 찍고 비례대표 의원 배분을 위해 지지 정당에 또 한표를 찍는’ 이른바 1인2표제를 제안한 민주당의 수정안이 부결되고 한나라당이 제안한 기존의 1인1표제가 통과된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1인2표가 직접선거 정신에 부합하며 지역대결구도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1인2표제를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1인1표가 그동안 여러 차례 선거에서 아무 문제없이 시행돼왔고 1인2표의 경우 투표절차의 번거로움이 예상된다는 등의 이유로 1인1표를 주장하며 맞섰다. 그러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자민련이 1인1표의 기존제도 고수를 당론으로 결정함으로써, 1인2표제 도입은 무산되고 두달 뒤 4·13 총선은 1인1표제로 치러지게 된다.
정당별로 반응 엇갈려… 진보정당 날개 달아
그로부터 1년6개월 뒤인 7월19일, 헌법재판소는 현행 1인1표식 비례대표제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현행 1인1표제하에서 비례대표제는 유권자의 정당지지와 후보자 지지가 엇갈릴 경우 절반의 선택권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고 신생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으며 비례대표 의원 선출도 정당의 명부작성 행위에 따라 결정돼 직접선거 원칙에도 위배된다. 또 국민들의 비례대표 의원 선거권을 침해하고 무소속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를 차별해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헌재의 결정내용에 대한 여야의 반응은 당연히 엇갈렸다. 당시 1인2표제를 추진했던 민주당은 헌재 결정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며, 한나라당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민주당쪽 반응은 “헌재가 지역구 후보에 대한 투표결과로 비례대표 의석을 규정하는 것은 헌법의 직접투표제에 위반돼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은 당연하다”(박상천 최고위원), “우리당은 1인2표 정당명부식 투표제를 도입해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전용학 대변인) 등이었다. 반면 한나라당은 “헌재의 결정사안을 수용하겠지만 우리 정치관행상 한 사람이 후보와 정당에 동시 투표하는 방법이 여러 어려운 문제를 야기하지 않겠느냐”(김기배 총장), “헌재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을 존중한다. 다만 현실정치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오랜 정치적 관행, 독특한 정치문화 등 현실적 측면도 고려돼야 하기 때문에 여야가 충분히 협의해 합리적인 제도보완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권철현 대변인)는 등 신중한 태도였다.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우리나라 선거제도 사상 처음으로 1인2표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져 기존 정치권에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1인2표제가 시행되면 군소정당의 원내 진출이 쉬워져 공고한 양당체제가 다소간 약화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의 정당 지지도가 투표행위에 직접적으로 반영됨으로써 지역구 당선자를 내지 못하는 군소정당들도 당 지지도에 의해 원내 진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수적인 기존 정치권의 의회 독과점 현상이 완화되고 진보정치세력의 정치권 진입의 단초가 마련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7월20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은 정책과 노선이 분명한 신진 정치세력의 원내 진출을 앞당김으로써 정쟁과 당략에 찌든 보수정당 중심의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진보세력의 원내 진출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 지난해 4·13 총선에서 원내 진출에 실패한 민주노동당은 1인2표제가 시행됐을 경우 3∼6석의 의석을 얻었을 것으로 예상하는 자료를 내놓고 있다. 당시 총선을 앞둔 1월1일 <경향신문>의 여론조사를 근거로 비례대표 의석 수를 가상 집계할 경우 민주노동당은 7.0% 지지율로 5.98석을 얻게 되며, 1월7일 <한겨레> 조사를 근거로 계산할 경우 4.2% 지지율로 2.76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1인2표제 도입이 기존 정치질서를 실제 어느 정도 흔들어놓게 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현재 전국구 의원이 46명으로 전체 의석 273석의 16.8%에 그치기 때문에 비례대표를 통한 원내 진출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진보정치세력의 원내 진출이 제도권 진입이라는 ‘상징성’에 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전체 의석의 50%로 끌어올리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을 조정하는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정당간 지역구도를 완화시키는 효과도 낳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정 정당의 지지가 압도적인 지역에서도 지역구 후보에 대해서는 좀더 자유롭게 투표행위를 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마음에 안 들 경우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민주당을 찍고 지역구 후보는 한나라당이나 다른 당 후보를 지지할 수 있고, 한나라당이 우세한 영남지역에서는 거꾸로 투표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개특위 위원장인 박상천 최고위원은 “이념정당체제인 독일도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의 지지가 다른 경우가 15%로 나타난다. 이념정당체제가 아닌 우리의 경우 약 30%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여야 모두 약세지역에서도 지지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역대결구도 완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1인2표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시행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전국을 5개 또는 6개 권역으로 나눠 해당 권역별로 비례대표 의원을 뽑을 경우 지역대결구도를 완화하는 데 효과가 크다. 그렇지만 46명밖에 안 되는 전국구 의원을 또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여부는 당에서 좀더 면밀히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인2표제가 지역구도를 완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고계현 경실련 시민입법국장은 “1인2표제가 되면 지방색을 완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과거 지방선거 사례를 보면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 4개를 모두 함께 찍는 경향이 있다. 지역주의가 심한 상황에서는 비례대표 투표까지 지역주의로 가면서 아예 지역주의가 노골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지역주의 자체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제도 하나 바꾼다고 지역주의가 옅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례대표 늘리고 지역주의 완화될 것인가
여야 정치권은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선거법 개정이 발등의 불이 됨에 따라 각 당마다 입장을 정리한 뒤 곧 여야간 협의에 들어갈 계획이다. 아직 여야는 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한 당론을 확정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이번 선거법 개정을 정치개혁 차원에서 접근할 계획이다. 김중권 대표는 7월20일 기자들과 만나 “헌재가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한 만큼 지금이 지구당 존폐문제를 포함해 정치전반에 대한 제도개혁문제를 논의할 적기다. 헌법정신에 충실하고 돈 안 드는 선거문화, 지역주의 극복의 필요성 등 여러 문제를 충분히 반영해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선거법뿐 아니라 정당법, 국회법 등 정치개혁 전반에 대한 여야간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여 여야간 합의안이 단시일 내에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게다가 자민련은 이번 기회에 중·대선거구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소선거구제 고수 입장이어서 정당간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밀고 당기기를 상당기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 1인2표제는 기존 정치권 지형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1인1표제로 선출된 16대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서 나오고 있다.(이용호 기자)

사진/ 진보세력의 국회 진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1인2표 전국단위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