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공식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9월12일(현지시각) 워싱턴 D.C. 버지니아 타이슨스의 한식당 ‘우래옥’에서 웃고 있다. 이날 미국 상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법안을 가결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세계 금융위기가 진행 중인 지금, FTA를 맺겠다고 나서는 나라는 아무데도 없다. 특히 위기에 빠진 미국과 교섭을 진행할 나라는 앞으로 당분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첫 번째 주장은 원인 무효가 되었다. 두 번째 우리만 먼저 FTA를 맺어서 관세율 2.5% 인하의 혜택을 얻으면 과연 무역 흑자가 확 늘어날까? 미국의 수입은 당분간 정체하거나 감소할 것이다. 수요를 부추기려 해도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경기 부양을 위해 이제 수출밖에 매달릴 곳이 없는 미국은 자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려고 저 악명 높은 ‘슈퍼 301조’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무역 흑자가 증가할까? 이건 오히려 확실성 영역에 속한다. 이미 발효된 한-유럽연합(EU) FTA는 그 미래를 지금 보여준다. 정부의 또 다른 당위론은 한-미 FTA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켜 한국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킨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서비스 시장 개방 등 신이슈(지적재산권·서비스·투자)와 연관됐고, 기실 이것이야말로 한-미 FTA 추진의 근본 이유다. 한국의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는 오래전부터 중국의 성장에 놀라 하루바삐 대한민국을 ‘서비스 선진국’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에 가까운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글로벌 스탠더드’였던 개방과 규제 완화, 민영화는 그 첩경이다. 그러나 내부의 완고한 반대와 첩첩의 공공 규제는 이 ‘유일한 활로’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다. 한편, 삼성 등 재벌은 한국 경제에서 마지막 남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공공서비스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 의료민영화가 대표적이고 장차 철도 등 네트워크 산업도 좋은 먹잇감이다. 한-미 FTA는 이 둘의 소망을 동시에 해결해주고,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를 “미국의 선진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2005년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외부 쇼크에 의한 내부 개혁’에 의해 “대한민국을 확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붕괴한 ‘선진 시스템’의 직수입 대공황에 버금가는 현재의 금융위기는 그 ‘선진 시스템’이 붕괴한 것이다. 금융뿐만 아니라 지난 30년간 지배해온 ‘글로벌 스탠더드’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오죽하면 젊은이들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며 월가가 지배하는 미국 정치에 항의하려고 노숙을 자처하겠는가? 금융, 의료 등 공공서비스, 부자 감세, 형편없는 인프라, 1%의 민주주의, 기후변화에 대한 태도 등 시장만능론이 빚어낸 모든 미국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불만에 가득 찬 철부지들의 울부짖음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 젊은 영혼의 공명으로 보는 것이 옳다. 김현종의 공언대로 한-미 FTA는 바로 그 시스템을 직수입하는 것이다.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의 우리 법과 제도는 모두 한-미 FTA의 각 조항으로 대체될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최소한의 공공성이 사라지고,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우리 스스로 기어코 이 난파선에 올라타야 하겠는가? 참여정부는 짐짓 부정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드러내놓고 강조하는 세 번째 이유는 한-미 동맹 강화다. 미국에 간 대통령이 “아시아 모든 국가들이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철부지 발언을 할 정도다. 실로 한-미 FTA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중국에 대한 경계를 한껏 높일 것이다. 현재 같은 남북관계라면 한반도의 양쪽이 각각 중-미 대립의 앞잡이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만 비준하지 않으면 한-미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한-미 FTA가 발효된 뒤, 건강보험이 없어지거나 시골 철도가 끊어지고 전체적으로 경제가 심각한 불황을 겪는 등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한-미 FTA를 폐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과연 한-미 관계는 어떻게 될까? 최악의 경우 단교 상태까지 이른다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너무나 커지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한-미 관계를 위해서도, 그리고 평화와 번영의 동아시아 공동체를 원한다면 덜컥 한-미 FTA를 비준해서는 안 된다. 동아시아의 냉엄한 국제관계는 우리에게 최대의 신중을 요구하고 있다. 한-EU FTA 결과 본 뒤 판단해도 그런데도 우리는 정부를 믿고 그저 국회 비준을 바라만 봐야 할까? 한-미 FTA가 빚어낼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내린 선택의 결과다. 결코 타조나 꿩처럼 머리를 박고 정부나 재벌에 판단을 맡겨서는 안 된다. 천보 만보 양보해서 앞으로 1년간 미국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이미 발효된 한-유럽연합(EU) FTA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본 뒤 판단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