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왼쪽)가 10월14일 국회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와 관련한 원내대표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 토론 결과가 어떻게 되든, 10월14일 열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앞으로 국회에서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를 보여주는 예고편이었다. 지경위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미 FTA 관련 법안을 상정해 심사하자고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정부의 피해대책 마련이 먼저라며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야당은 그동안 미국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우리도) 상정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도 관련 법안을 논의할 때가 됐다”(김재경 의원), “한-미 FTA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추진했다”(김정훈 의원)는 등의 논리로 일제히 민주당을 공격했다. 이에 민주당 소속 김영환 지경위원장은 “상임위 차원에서 피해 산업 대책을 충분히 논의한 뒤 상정해도 늦지 않다. 여야 간사 간 협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산회를 선포했다. FTA 반대, 야권 연대의 핵심 축 이날 회의는 한나라당으로선 비준안 처리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민주당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는 일종의 ‘치고 빠지기’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은 이렇게 민주당에 비준안 처리를 강조하는 한편, 정부에도 피해대책 관련 예산 수립 등 민주당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비준안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무조건 일방적으로 처리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인내’는 ‘2012년 1월1일 발효’라는 시한이 정해져 있다. 또한 민주당이 물리력을 동원하려 한다면, 당장이라도 비준안을 처리하겠다는 태도다. 한나라당 소속인 남경필 외통위원장은 “민주당이 정부·여당이 보여주는 성의와 인내에 상응해 몸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며 “하지만 무조건 드러눕겠다고 하면 10·26 재보선 전에라도 처리해야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더구나 선거 전에 민주당이 몸으로 막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의 자세에 따라 처리 속도를 정하겠지만, 내년 1월1일에 협정을 발효시키는 타임스케줄(시간표)은 맞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칼날을 쥔 셈인 민주당으로선 선택지가 많지 않다. 민주당 외통위 간사인 김동철 의원은 “우리 요구에 정부가 얼마나 성의를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지만, 지금 상태로라면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비준안을 강하게 반대하는 정동영 최고위원과 지역구가 농촌인 유선호·김영록 의원을 지난 10월13일 외통위에 긴급 투입했다. 비준안 처리를 강행하면 물리력으로라도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게다가 한-미 FTA는 내년 총선·대선을 가름할 야권 연대의 핵심 축이다. 민주당이 비준안 처리에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미 FTA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시민사회 등과의 야권 연대가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 ‘한-미 FTA 강행 처리 반대 야당-시민사회 공동결의대회’는 10월12일 “불평등 한-미 FTA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직권상정과 날치기로 점철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국회 협박”이라며 “야당과 시민사회는 결코 정부·여당의 위협에 무릎 꿇지 않고 강행 처리를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서둘러 비준하는 것은 ‘주권 포기’ 민주당은 한-미 FTA가 국익에 해를 끼치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며 여론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용섭 대변인은 10월14일 “미국에서 비준했다고 우리나라마저 국익을 팽개친 채 서둘러 비준에 나서는 것은 ‘주권 포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10월13일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대한민국 국익을 대표하는 게 맞는지, 미국의 파견관인지, 옷만 입은 이완용인지 모르겠다. 역사가 단죄할 것”이라며 한-미 FTA 재협상을 주도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인의 영혼이 없다. 미국과 한통속”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김 본부장이 “말씀이 지나치다”고 항의했지만, 정 최고위원은 “미국의 식민지 마인드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통탄스럽다. 식민지 관료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걸 갖고 와서 국회에 (비준을) 해달라고 하느냐”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반드시 기억하라”고 몰아세웠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