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지방선거 조직적 참여 천명… 진보세력 연대로 새바람 일으킬 것인가
지난해 4·13 총선 때 낙천·낙선 운동을 통해 정치판에 ‘바꿔 열풍’을 몰고왔던 시민·사회단체가 이번에는 정치의 실질주체로 서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디데이는 민선 3기 지방자치선거가 치러질 2002년 6월13일. 목표는 지난 10년간 기성 보수정치세력과 지방의 토호 및 그 주변 세력들이 장악해온 자치단체장과 자치의회 물갈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를 위해 지역사회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지난 수십년간 주민들과 동고동락해온 시민운동가들 가운데 정치개혁 의지와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발굴, 단체장 및 기초·광역의원 후보로 출마시킬 계획이다. 총선연대가 출마 후보에 대한 비판적 심판관에 머물렀다면, 이번에는 한 단계 뛰어넘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직접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호랑이굴로 뛰어들려는 시민·사회단체는 나름의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지방자치의 전면개혁을 내건 곳은 물론 환경, 여성 등 나름대로 특화된 가치를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부터 구현하려는 단체도 있다. 이들 단체들이 출마시킬 예정인 활동가만도 1천명선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70여명의 지역운동가 자치연대로 결집
현재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지방자치개혁연대(준)다. 개혁연대는 지난 4월17일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초한 총체적 사회개혁을 지향한다’는 목표에 동의한 지역운동가들과 자치단체 정치인들이 공동 발기한 전국단위의 인적 네트워크다. 주축은 지역에 뿌리내린 시민·사회 운동가들이다. 김수규 서울YMCA 회장, 김상근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 문태룡 전남동부지역사회문제연구소 부소장, 최정한 도시연대 사무총장, 이동환 부산경실련 사무처장 등 전국 40여개 단체 270여명의 활동가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여기에 김두관 남해군수, 이재용 대구남구청장 등 27명의 개혁성향 전·현직 단체장 및 자치의회 의원들이 가세했다. 지역운동과 지방자치 운동의 결합체인 셈이다.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인척청산’과 ‘참여와 분권을 통한 지방자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수준의 당선자를 내는 것이다. 자치연대는 지난 7월21, 22일 이틀 동안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양사 관광호텔에서 전국지역활동가 대회를 열고 이런 목표를 공식화했다. 문태룡 자치연대창립기획단장은 이날 “서울·광주·대구·경남 등 4곳의 광역 단체장을 비롯해 ‘무소속 연대’ 형태로 수백명의 기초·광역의원 및 기초·광역 자치단체장을 출마시켜 풀뿌리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며 선거참여를 정식 선언했다. 남은 과제는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하느냐는 점이다. 자치연대는 지역활동가와 개혁성향의 전·현직 지방정치인 700∼800명 정도를 발굴해 출마시킨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이 가운데 50여명은 자치단체장에 출마한다. 특히 광주·대구·경남 등 3곳의 광역단체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현재 대구시장 후보로 이재용 대구남구청장, 경남도지사 후보로 김두관 남해군수가 거론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시민 1만명이 참여하는 예비경선을 통해 광역단체장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투지까지 내보이고 있다. 기성 정당의 하향식·밀실공천과는 180도 다른 주민축제 형태의 공천을 선보여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시민후보’라는 공동브랜드를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나름의 승부를 던질 계획이다. ‘무소속 연대’ 형태로 출마하되 선거전에서는 모두 △중앙정부권한의 지방정부 이양, 지방공무원 인사제도 개혁 등 분권의 확대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제 도입 등 지방자치 활성화 △지방자치체의 인적구조 개혁을 전면에 내걸게 된다. 환경련은 ‘녹색후보’ 공개모집 나서
중앙의 몇몇 시민단체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6월25일 대의원대회 결의를 통해 ‘녹색자치위원회’(위원장 윤준하)를 출범시켰다. 내년 지방선거 전술을 총괄할 기구를 발족시킨 것이다. 녹색자치회는 최근 지역환경운동연합 의장단, 집행위원, 일반회원 또는 이들이 추천·지명하는 인물을 대상으로 친환경 후보를 발굴하고 있다. 환경련은 자치연대와 달리 환경문제에 천착한다. 또 단체장 출마는 포기하고 기초의회 의원을 당선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박진섭 녹색자치위원회 사무국장은 “녹색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은 세계사적 흐름이다. 그런데 보수성향의 단체장과 지역 토호들이 장악한 지방의회가 한통속이 돼 개발위주의 반환경정책을 무분별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체장 한 사람을 교체하기보다는 기초의회를 바꿔 견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자치의회에 친환경 인사를 대거 진출시켜 사전에 환경파괴를 차단하고 친환경적 정책을 펼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환경련은 현재 전국 기초의원 정수(3560명)의 10%선인 400명 정도를 ‘녹색후보’로 출마시킬 계획이다. ‘녹색후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전략도 구상중이다. 조만간 신문광고 등을 통해 녹색후보를 공개모집하고, 20대 후반과 30∼40대를 주축으로 후보를 선발하되 여성후보가 40%를 넘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환경련은 오는 9월 말까지 출마후보 선정작업을 마친 뒤 올 10월 녹색자치아카데미를 개설해 후보자 교육에 들어간다. 2개월 동안 녹색자치 철학, 선거공간에서 전략·전술, 당선 뒤 중점을 둬야 할 의정활동을 학습·토론시키는 것이다. 환경련은 상당한 성과를 자신하고 있다. 지난 98년 지방선거 때 이미 33명의 후보를 내 기초단체장 2명, 광역의원 6명 등 모두 22명의 친환경적 후보를 당선시킨 나름의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는 것이다.
여성단체들도 뛰고 있다. 특히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대표 조현옥)가 적극적이다. 여성연대는 최근 40명의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를 발굴해 실무 교육에 들어갔다. 김영옥 사무국장은 “6월 중순부터 선거운동에 필요한 전략·전술과 각종 지침을 교육하는 한편, 출마가능 지역을 선정해 기초조사를 벌이고 있다”면서 “내년 선거에서 지방자치 개혁과 여성의 권익 신장을 동시에 이뤄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YMCA는 지방선거 참여문제를 놓고 열띤 내부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김수규 서울YMCA 회장과 고광성 홍성YMCA 이사장이 지방자치개혁연대 공동준비위원장을 맡고,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윤경태 부산YMCA 시민사업부장 등이 실행위원에 선임되는 등 다수 인사가 이미 자치연대 활동에 동참했다. 지방선거 참여가 기정 사실화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쟁력 후보가 관건… 선거참여 이견도
시민·사회단체의 이런 선거참여 전술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시민단체는 그동안 정치자금법·선거법·정당법 개정 운동,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배제·주민투표제 도입 등 지방자치법 개정 운동, 의정감시활동 등 주로 간접적 접근을 통해 정치개혁을 이루려했다. 그러나 기성 정치권의 완고한 태도에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낙천·낙선 운동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지만 단지 누구를 ‘반대’한다는 네거티브 전술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최근 선거참여 움직임은 시민·사회단체가 이제 불만스런 정치현실에 뛰어들어 직접 그 구조를 바꿔내려는 조직적인 시도다. 더욱이 자치연대처럼 지역에 뿌리내린 채 수십년 동안 주민의 이해를 대변해온 활동가들이 해당 지역에서 정치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지역에서 나름의 신망과 ‘내공’을 쌓은 만큼 뜻밖에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다. 몇몇 활동가들은 “시민단체들이 제대로 연대할 경우 진정한 ‘시민권력’을 등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앞날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야심찬 ‘장밋빛’ 계획을 현실화하기까지는 걸림돌이 많다. 먼저 지역사회에서 능력과 도덕성을 모두 인정받는 양질의 경쟁력 있는 후보를 얼마나 발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각 단체가 출마시키려는 인원은 모두 1천여명선. 그러나 한 시민운동가는 “전국 시민·사회단체의 국장급 이상 간부 모두가 지방선거에 출마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선거참여 전술이 시민·사회단체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다.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등 이른바 중앙의 메이저 시민단체들은 “시민운동이 정치세력화의 전초기지가 돼서는 안 된다”며 부정적 시각을 표출하고 있다. “이론상 지방자치가 준생활정치의 영역인 만큼 주민생활정치의 확장이라는 명분을 걸고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당장 유권자 및 언론으로부터 시민운동을 정치적 입신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 지역운동단체나 우리 엔지오의 인재풀 등 현실역량을 고려할 때 핵심 활동가들이 대거 선거에 출마할 경우 지역운동 자체가 좌초될 수도 있다.”(경실련 한 국장급 간부) 결국 총선연대 활동에 대한 반성적 대안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총결집했던 낙천·낙선 운동 때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물론 참여론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은 “이미 때지난 순수성 논란에 얽매이지 말자”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환경련은 이미 98년 지방선거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시민참여는 대세다. 정치개혁을 주창하면서 제도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인적청산은 왜 계속 뒤로 미루는가. 기성 정치권 출신들이 개과천선하기만 기다리자는 것인가. 순수성 훼손론은 ‘왜 시민운동가가 우리 영역인 정치에 끼어들려 하느냐’는 기성 정치권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참여 전술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자치연대, 환경련, 여성연대 등의 선거 참여는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끈질기게 시도해온 민주노동당과 상당부분 겹친다. 민주노동당은 대선 전초전 성격인 내년 지방선거에서 ‘전국적 지역정당’의 이미지로 승부를 본다는 전략 아래 서울·광주·대구 등에 후보를 출마시킬 방침이다. 이들 지역은 지방자치개혁연대의 전략지역이기도 하다. 결국 양쪽의 출마 후보가 서로의 표를 분산시킬 우려가 높다. 김윤창 광주자치연대(준) 실무위장은 “시민단체가 범개혁세력으로 결집해 연대하는 등 돌파구는 있다”고 말했다. 자치연대는 개혁세력들이 대연대를 통해 ‘범시민후보’ 또는 ‘범자치후보’라는 공동의 브랜드로 지방선거에 나서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자치연대가 선거참여를 공식 결의한 지난 7월21, 22일 전국지역활동가 대회에서 민주노동당, 환경련 등과 연대폭을 넓히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다.
민주노동당, 무소속 연대 방식에 회의적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런 연대방식에 회의적이다. 김종철 부대변인은 “개혁연대나 시민단체가 우리 당과 단일한 구호·강령을 마련한다면 모를까, 당을 버리고 무소속 출마할 이유가 있겠냐”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특히 헌법재판소의 ‘1인1표 위헌판결’로 정당 공천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주장한다. 현행 지방선거법상 광역의회 의원의 10%를 전국구 의원 배분방식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하도록 돼 있다. 무소속 연대로 선거에 임할 경우 이를 포기해야 한다. 민노당, 자치연대, 환경련의 몇몇 실무자들은 최근 연대방안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국 시민·사회단체들이 선거참여를 위한 첫걸음은 뗐지만 그 결과를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를의 선거참여 전술이 그저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지, 아니면 낙천·낙선 운동의 정치적 성과를 온전히 계승한 채 자치단체와 의회가 진정한 의미의 ‘시민권력’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할지 좀더 지켜볼 일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지방선거에서 시민단체 열풍이 몰아칠 것인가. 여성단체 회원들이 부패정치 심판을 주장하고 있다.(한겨레21)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인척청산’과 ‘참여와 분권을 통한 지방자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수준의 당선자를 내는 것이다. 자치연대는 지난 7월21, 22일 이틀 동안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양사 관광호텔에서 전국지역활동가 대회를 열고 이런 목표를 공식화했다. 문태룡 자치연대창립기획단장은 이날 “서울·광주·대구·경남 등 4곳의 광역 단체장을 비롯해 ‘무소속 연대’ 형태로 수백명의 기초·광역의원 및 기초·광역 자치단체장을 출마시켜 풀뿌리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며 선거참여를 정식 선언했다. 남은 과제는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하느냐는 점이다. 자치연대는 지역활동가와 개혁성향의 전·현직 지방정치인 700∼800명 정도를 발굴해 출마시킨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이 가운데 50여명은 자치단체장에 출마한다. 특히 광주·대구·경남 등 3곳의 광역단체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현재 대구시장 후보로 이재용 대구남구청장, 경남도지사 후보로 김두관 남해군수가 거론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시민 1만명이 참여하는 예비경선을 통해 광역단체장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투지까지 내보이고 있다. 기성 정당의 하향식·밀실공천과는 180도 다른 주민축제 형태의 공천을 선보여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시민후보’라는 공동브랜드를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나름의 승부를 던질 계획이다. ‘무소속 연대’ 형태로 출마하되 선거전에서는 모두 △중앙정부권한의 지방정부 이양, 지방공무원 인사제도 개혁 등 분권의 확대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제 도입 등 지방자치 활성화 △지방자치체의 인적구조 개혁을 전면에 내걸게 된다. 환경련은 ‘녹색후보’ 공개모집 나서

사진/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가들이 시민권력을 향해 뛰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지역운동가들은 주민들과 함께 러브호텔 반대운동을 벌였다.(한겨레)

사진/ 자치연대는 전국단위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지방선거에 나설 계획이다. 지역운동가들과 자치단체 정치인들이 지난 7월 21일 전국 지역활동가대회를 열었다.(지방자치개혁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