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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따로 또 같이, 시민 정치 합창

정책개발부터 정당통합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2012년 진보개혁 정권교체 나선 지식인·시민사회 연대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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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04 10:13 수정 : 2011-05-0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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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2012년 ‘선거의 해’를 앞두고 불어닥친 ‘정치 바람’이다. 들썩이고 흔들리는 건 지식인과 시민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촛불 정국 이후 수세 국면에서 힘겹게 각개전투를 벌여온 개인과 소그룹들의 연대 움직임이 뚜렷하다. 과거 선거를 앞두고 횡행했던 지식인·명망가들의 ‘줄서기’와는 결도 방향도 다르다.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내가 직접 뛰어보겠다’는 입신의 욕망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가깝다.

복지국가 지향하는 지식인 네트워크

절박한 위기의식은 5월 출범하는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싱크탱크 네트워크’(이하 싱크탱크 네트워크)의 설립 취지문에서도 확인된다. “우리 사회는 복합적인 ‘4중 위기’에 직면해 있다. 양극화 심화에 따른 ‘경제의 위기’, 민주주의 후퇴에 따른 ‘정치의 위기’, 군사적 긴장 고조에 따른 ‘평화의 위기’, 국민 다수가 불안의식으로 표류하는 ‘시민사회의 위기’다.”

목표는 물론 ‘진보적 정권 교체’다. ‘복지’라는 가치와 ‘야권 연대’라는 방법에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렇다고 1980년대 ‘전선(戰線)운동’ 같은 단일대오 방식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개인과 세력들이 세대·영역·정치 성향에 따라 분화하며 독자적 결집이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5월3일 창립기념 심포지엄을 갖고 공식 출범하는 싱크탱크 네트워크는 진보·개혁 성향의 40~50대 연구자들과 정책연구집단(싱크탱크)이 중심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등 복지 관련 연구·실행조직과 생활정치연구소·풀뿌리지역연구소 등 지방자치 정책집단을 중심으로, 코리아연구원(남북·외교안보), 젠더사회연구소(여성)와 친노 성향의 미래발전연구원, 진보 정당과 가까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결합했다. 이들은 2009년부터 연합 심포지엄을 진행하며 손발을 맞춰왔다.

지난 3월29일 열린 ‘시민정치행동 내가 꿈꾸는 나라’ 창립준비위원회 발족식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 유정배 강원살림 대표, 여성학자 오한숙희씨, 대학생 김성환씨(왼쪽부터)가 각자가 꿈꾸는 국가의 미래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동대표를 맡은 정해구 생활정치연구소장(성공회대 교수)은 “각자 연구소를 차려놓고 개별적으로 움직이던 정책 연구 단위들이, 정치권의 야권 연대 움직임을 주시하며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연구 활동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 참여정부의 실패를 거울 삼아, 정치적 가치(담론)와 정책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도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다.

공동대표단에는 정 소장 외에 김용익(미래발전연구원)·이태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홍종학(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27)이 이름을 올렸고, 집행기구인 운영위원회에는 김호기(위원장·의제27)·김수현(미래연)·손혁재(풀뿌리지역연)·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이 참여하고 있다. 운영위 산하에는 국가비전팀, 정치개혁팀, 국제관계팀, 경제정책1·2·3팀, 사회정책1·2·3·4팀을 두고 구체적인 정책 개발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이들은 5월3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계승과 발전’을 주제로 한 창립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한반도 평화’(6월), ‘국가 비전’(7월), ‘연합정치’(8월), ‘보편적 복지’(9월) 등을 주제로 연속 심포지엄을 열고 순회 강연, 시민교육 프로그램, 정책 책자 발간을 병행한다는 구상이다.

진보·개혁 시민이 정당을 압박하자

싱크탱크 네트워크가 정책 생산 활동을 통해 진보개혁 진영의 집권을 뒷받침하려는 정치적 목적에 충실한 지식인(그룹)들의 연대 기구라면, 5월 출범을 앞둔 복지국가행동(가칭)은 시민 교육과 캠페인 활동을 통해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이를 토대로 정치사회의 복지 개혁을 아래로부터 추동하려는 시민정치 운동체의 성격이 짙다.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민주당·진보 정당과 지향점을 공유하지만, 이들과 정치적으로 연대하거나 정당정치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지난해 참여연대 내부에 만들어진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중핵으로 민주노총과 여성단체연합,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 주거권운동네트워크 등 교육·주거복지 운동단체들이 결합했다. 신진욱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중앙대 교수)은 “단기적으로는 캠페인과 교육 활동에 주력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노동과 주거, 교육, 의료 등 핵심 분야의 의제와 정책들을 공론화하며 치열한 정책 논쟁을 통해 보수 진영의 복지론이 갖는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들은 5월부터 지역을 순회하며 전문가 강연과 간담회를 겸한 타운미팅 형식의 시민 모임을 연쇄적으로 마련하는 한편, 복지국가 시스템과 정책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보수 진영의 포퓰리즘 공세에 맞서 대항 프레임을 제시하는 소책자를 발간할 계획이다.

지식인.시민사회의 주요 정치운동 현황

이들처럼 비정당적 시민정치운동을 표방하는 단체로는 지난 3월 말 창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한 ‘내가 꿈꾸는 나라’가 있다. 김기식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과 조국 서울대 교수, 남윤인순 전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공동준비위원장이다. 비정당 운동을 내걸고 있으면서도 연대와 통합을 통한 2012년 진보개혁 세력의 집권과 2014년 지방자치의 혁신을 목표로 내건 게 특징이다. 정당에 몸을 담지 않은 시민들의 정치운동이란 점에서 ‘비정당적’이지만, 정당정치에는 적극 개입한다는 점에서 ‘정당적’ 운동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한 관계자는 “시민정치운동이 무엇인지를 두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당)정치운동’으로 규정하는 흐름과 ‘정당운동과 구분되는 시민정치 활동’으로 이해하는 흐름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배우 문성근이 주도하고 영화감독 여균동,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이 참여하는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은 내가 꿈꾸는 나라에 비해 한결 구체화된 정치적 목표를 가졌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 5당이 단일 정당을 만든 뒤,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출해 2012년 대선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정권을 되찾아오자는 것이다. 민주당의 정동영·천정배·박주선 최고위원 등 기성 정당에 소속된 유력 정치인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는 점에서 정당운동과의 경계선이 모호하다.

진보 진영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 정당 창당을 촉구하는 정치운동도 있다. 지난 4월20일 출범한 ‘진보의 합창’이다. 벽에 부딪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위로부터의 통합’ 논의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양당 간 통합을 넘어서는 새로운 진보 정당 창당을 요구하며 노동계·시민사회가 아래로부터의 압박에 나선 것이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우희종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장 등 4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수십만 명 규모의 ‘합창단’을 만들어 9월까지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에 집중하고, 이후엔 진보정치의 승리를 위한 유권자 정치운동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확산적 연대’로 바뀐 조직 방식

앞서 지난해 12월 출범한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는 광범위한 시민사회 세력이 참여하는 통합 진보 정당 창당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진보의 합창과 공유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 단체의 핵심인 이학영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 손석춘 새사연 이사장 등은 두 조직에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런 지식인·시민사회의 움직임은 지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나타난 ‘총선시민연대’ 방식의 거대 단일전선 운동과 여러 면에서 차별성을 띤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은 공통적이지만, 구체적 비전과 활동 방식에선 각 조직들 사이에 다른 부분들이 관찰된다”며 “시민정치운동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과거의 운동이 중앙집중적이고 단일전선 지향적이었다면, 최근의 운동은 분산적이고 유연하면서도 생활정치를 지향하는 ‘확산적 연대’로 조직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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