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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색깔론 흘리고 오리발 내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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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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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세무조사 둘러싼 정치인 발언 백태… 홍사덕 의원, 답방 관련설 강력 부인

사진/ “당이 결심하면 따르리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하며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이종근 기자)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여야간 대치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여야 정치인들의 행태도 유형별로 다양해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신념(?)에 가득 찬 원색적 감정과 속내를 드러내다가 설화를 겪는 일이 많아진 점이다. 또 언론사 세무조사의 미묘한 성격 때문에 관망과 눈치보기, 기회주의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부에서는 당론과 맞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소신형도 나오고 있다.

관망·눈치보기… 의미있는 소신파들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은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홍 의원은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를 처음으로 색깔론과 연결시켜 발언했다. 홍 의원은 6월30일 한국방송(KBS) 길종섭의 <생방송 심야토론>에 참석해 ‘언론사 세무조사는 김정일 서울답방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의도’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홍 의원은 7월5일 ‘언론사 세무조사가 김정일 위원장 서울답방의 정지작업을 위한 의도’라고 보는 근거를 묻는 기자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다시 한번 봐라. 오해가 있다. 언론들이 좀 정확하게 파악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방송내용을 다시 확인한 결과 홍 의원은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 이것(언론사 세무조사)은 아마 대통령선거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인가보다 생각을 했는데, 저는 그 이상이라는 예단을 가지고 있다. 그보다 훨씬 더…. 김정일 위원장이 답방할 때 전 언론사를 완전히 재갈을 물리지 않으면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무슨 합의를 계획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이야기는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 귓속말로 퍼지고 있고, 몇몇 언론인들 사이에 논의되기 시작했다. 왜 그런 의심을 가지는지 근거랄까, 심증 같은 것은 차차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홍 의원이 그럼에도 자신의 발언내용을 부인한 것은 당 안팎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를 색깔론으로 연결짓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 김덕룡·손학규 한나라당 의원 등은 관망형으로 분류된다. 이 최고위원은 “조세정의 차원에서 진행된 국가 공권력 집행에 대해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자칫 정쟁으로 왜곡된다”는 이유로 말을 아끼는 편이다. 비주류로서 이회창 총재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김덕룡 의원도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손학규 의원도 한 토론회에서 3일 “정부가 언론을 이용하기 위해 개혁대상에서 제외시켰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세무조사를 동원한 것”이라고 한마디한 뒤로는 “정쟁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며 몸조심하고 있다.

소신형으로 한나라당은 이부영 부총재를 비롯해 김원웅, 안영근, 서상섭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이 ‘언론사 세무조사는 언론장악 음모’라는 당론과 달리 언론개혁을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에서는 노무현 상임고문이 언론사 세무조사 시행 이전부터 언론개혁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한편 기자들에게 의식적이든 아니든 속마음을 드러냈다가 파문이 일자 뒤늦게 해명하는 사태도 잇따르고 있다.

속마음 피력했다가 해명하는 촌극도

한나라당의 김무성 총재비서실장은 7월4일 당사 사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언론사 사주가 구속되더라도 비판 논객이 편집국에 있어 비판논조가 유지된다면 우리(한나라당)가 (대선에서) 이긴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정대철 민주당 최고위원은 7월2일 기자들과 만나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나도 그렇고 여권 내 언론사 사주를 불구속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당론과 다른 발언을 해 당내에서 파문이 일자 “언론이 내 발언을 오해했다”며 언론중재위 제소방침까지 밝혔다.

이경재 한나라당 홍보위원장은 7월4일 ‘김대중 정권의 언론탄압 규탄대회’에서 “주인없는 신문은 현 정권에 아무하고 권력의 주구가 되어 있다”고 비난했다가 말썽이 일자 사과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처럼 유례없이 이른바 ‘설화’가 잇따르는 것은 이번 사태가 향후 정국운영 주도권의 향배뿐 아니라 내년 대선국면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한 여야가 그만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고 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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