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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열혈의원, 그 분노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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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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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엇갈리는 추미애 의원의 취중 발언… 철저한 원칙·격정적 성격이 파문 낳아

사진/ 추미애 의원의 취중 발언을 비난하는 신문기사와 파문의 빌미가 된 작가 이문열씨 관련 기사.
세탁소집 딸로 판사가 됐고,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대학동기와 결혼해 ‘한국의 대처’라는 찬사를 받으며 지난 96년 4월 15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등장한 추미애 의원(서울 광진을·재선). 그는 못 말리는 꼴통인가, 철저한 원칙주의자인가.

언론사 세무조사와 탈세·비리 사주 고발로 온 나라가 들끓는 가운데 추 의원의 최근 행보를 놓고 이런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과연 꼴통인가, 원칙주의자인가


추 의원은 지난 7월2일 소설가 이문열씨가 <조선일보>에 ‘신문없는 정부 원하나’라는 글을 쓰자 이씨를 거세게 비판하면서 화제의 소용돌이를 낳았다. “지식인들이 유명세를 이용해서 애매하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인 것처럼 현혹시키는 글을 쏟아내서는 안 된다”면서 “곡학아세하지 말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뒤 그는 7월5일 밤 서울 종로구 신문로 한정식집 향원에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기자와 정면 충돌했다. 김중권 민주당 대표와 바른정치연구모임 소속 동료의원들의 저녁식사가 끝난 뒤 몇몇 기자들과 벌인 술자리에서였다. 그는 “이문열같이 가당치 않은 놈이 좆 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라는 말로 <조선일보>와 이씨를 비난했다. <동아일보> 윤종구 기자에게는 “김병관 사주의 지시로 글을 썼냐”고 따지며 “사주 같은 놈”, “비겁한 놈”이라는 욕설까지 퍼부었다. 이날 언쟁이 다음날 <조선일보>에 보도됐고 그는 궁지에 몰렸다. 민주당 안에서조차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는 결국 당 안팎의 비판여론을 의식해 6일 오후 “사석에서의 발언이긴 하나 특정언론사를 거론하고 거친 발언을 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 보도자료를 냈다.

도대체 그는 왜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내뱉었을까. 7월6일 밤 11시 광진구 구의동 그의 아파트로 찾아갔다. 그는 “철인이 아닌데 언론과 그렇게 싸우고 시달린데다, 집안일까지 돌보려니 정말 힘들다. 좀 봐달라”면서 만남을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전화로 자신의 심경 일부는 털어놨다.

그는 5일 취중 발언이 세무조사에 대한 몇몇 언론 왜곡보도와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 특히 <동아일보>가 자신의 발언을 잇따라 짜맞추기식으로 기사화한 데 대한 분노에서 촉발됐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윤종구 기자가 4일 전화를 해왔다. 취재인지 말하지도 않은 채 이문열을 비판한 이유를 따지듯 물었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나를 반박하는 이문열씨 기고문을 전재하고, 내 말 몇 마디를 옆에 붙였다. 마치 이씨와 논쟁하는 것처럼 내 사진까지 실었지만 제목은 ‘정치인 잣대로 문화인을 폄하말라’는 이씨의 항변이었다. 분했지만 참았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쉰 뒤 말을 이었다. “다음날 윤 기자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나더러 ‘이씨를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이라고 주장한 근거가 있냐’고 따졌다. 나는 ‘소설가 이름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이씨가 그 직책을 가졌다는 <일요신문> 보도가 있어 독자의 한 사람으로 해명하라고 한 게 뭐 잘못됐냐’고 말했다. 그런데 ‘정치인이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냐’고 말했다. 또 건수를 잡으려는구나 싶어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얼마 뒤 민주당 대변인실에서 동아일보가 이미 외부필진 11명의 글을 받아놓고 내 발언을 짜맞추기한다는 연락이 왔다. 급히 윤 기자에게 통화를 요구했지만 아주 오랫동안 통화를 거부했다. 부대변인 몇 사람을 통해 수차례 항의한 끝에 통화가 됐다. 나는 ‘코멘트만 짜깁기하려면 내 말을 아예 쓰지 말라. 내 생각을 원한다면 정식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윤 기자는 ‘아까 말도 쓰고 지금 말한 것도 쓰겠다’고 대꾸했다.”

감정이 잔뜩 상해 있던 그는 이날 저녁 윤 기자와 대면하면서 그 분노가 폭발했다고 주장했다. “집에 가려고 차에 올라탔는데, 정동영 최고위원이 기자들과 한잔 하자며 옷소매를 끌어내렸다. 정 최고는 이 과정에서 “윤종구 기자도 한잔 하지”라고 말했다. 전화로 다퉜지만 얼굴을 몰랐던 그와 이참에 토론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이 시간이면 집에서 가사를 돌봐야 하는 주부인데, 자리를 같이한 이유는 시국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기자로서) 뭘 얻어가려 하지 말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밝힌 뒤 자리에 참석했다.” 그는 이문열씨의 글과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를 욕한 뒤 윤 기자에게 항의를 시작했다. “왜 자꾸 나를 괴롭히냐고 따졌지만 그는 조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감정이 격해졌고, 험한 말이 오갔다.”

윤종구 기자는 추 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외부필진들 대다수가 추 의원이 이씨 비난의 근거를 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근거가 있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주간신문에 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무책임하다고 판단했다.” 윤 기자는 특히 추 의원이 언론의 기본 메커니즘도 모르면서 자신을 비판했다고 분개했다. “내가 기사를 쓰지만 어느 정도 크기로 나갈지 나도 모른다. 10매짜리 기사를 써도 확 잘려서 작게 취급될 수 있다. 어떤 제목이 달릴지는 신문이 나와 봐야 안다. 또 의원이 기자와 전화통화를 시작했으면 말을 안 해도 전화기를 놓는 순간까지 기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기본도 모르면서 어떻게 매일 언론개혁을 주창하냐. 또 내 취재방식과 기사가 맘에 안 든다고 ‘사주 같은 놈’이란 막말을 해도 되는가. 말도 안된다.”

자기논리 집착하고 저돌적 추진력

사진/ 추미애 의원은 특유의 원칙과 저돌성으로 개혁적인 법인을 관철하기도 했다.(이용호 기자)
추 의원을 잘 아는 인사들은 원칙주의와 직설적인 말투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고 해석한다. 그는 정치권 안팎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저돌적으로 관철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 과정에서 특히 직설화법을 자주 동원한다. 때문에 “원칙주의자”라는 찬사와 함께 “너무 설친다”는 비판이 따라 붙는다. 민주당 개혁성향 한 의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격정적이고 순수하며 자기에게 철저한 바른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 자기논리에 집착한다. 때문에 큰 틀에서 상황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를 피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성향은 당 안팎의 반대를 넘어 개혁입법을 관철하거나 인권을 옹호하는 그만의 추진력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왔던 전자주민카드 도입방안 폐기와 제주 4·3 특별법 제정이 대표적이다. 추 의원은 야당 시절부터 유선호·이기문 의원 등과 전자주민카드 철회를 주창했다. 당도 이 주장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여권은 몇몇 문제점을 개선해 예정대로 시행하는 쪽으로 방침을 선회했다. 이때부터 그는 당 지도부와 선배·동료의원들을 면전에 놓고 쓴소리를 마구 내뱉었다. “선배들처럼 말을 바꾸니까, 국민들이 우리더러 정권 잡더니 변했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아니냐.” 행자위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거나 반대토론을 통해 본회의를 유회시키는 다소 극단적인 방법으로 저항했다. 결국 98년 말 당 지도부는 굴복했고, 현재 사용하는 플라스틱 주민카드가 대신 도입됐다.

오랫동안 부진하던 4·3 특별법도 그의 단순성에 힘입었다. “4·3 특별법 제정에 진전이 없자 유족들은 특위 부위원장인 추 의원에게 집중적인 민원을 했다. 어느날 나에게 ‘4·3이 어떤 사건이냐. 자료를 좀 챙겨와라’고 지시했다. 자료를 읽은 추 의원은 ‘현대사에 이런 일이 있었냐’면서 법 제정을 위해 발벗고 뛰었고, 결국 법제화됐다.” 옆에서 오래 보좌했던 한 인사의 말이다.

96년 10월 진압경찰들이 한총련 소속 여학생들을 성추행한 사건은 추 의원의 직설법에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다. 국회 내무위에서 추 의원은 피해 여학생들의 증언을 여과없이 내뱉었다. “사수대들에게 만날 몸대주지 않냐.” “이 창녀만도 못한 년아, 몇놈하고 잤느냐”….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물론 몇몇 언론까지 추 의원이 한총련을 편든다는 색깔론과 함께 자질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고, 관련자들은 법정에 섰다.

그는 저돌적 태도와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참모진은 물론 선후배의원들로부터도 지적을 받았다. 전자주민카드로 지도부와 충돌하던 98년 노무현 현 상임고문은 사석에서 “나를 봐라. 초선 때 너무 싸움꾼 이미지가 굳으면 나중에 더 큰일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른 한 인사를 “정계입문 초반부터 이런 지적을 의식해 스스로 많이 톤다운 시켜가고 있지만, 여전히 원칙과 충돌할 때는 타협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성향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인사는 “추 의원은 ‘너무 튄다’는 비판을 받을 때면 자주 ‘개혁을 외치며 수구·부패 정치인과도 잘 지내는 그런 정치인으로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소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그의 이런 성향은 이번 발언 파문에 대처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6일 오후 사과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나 이날 밤 기자에게 “내 발언의 부적절함과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내 비판은 별개의 문제다. 언론개혁의 소신도 변함이 없다. 나에게 유불리를 떠나 언론개혁은 국가의 중대한 개혁과제다. 납세는 헌법상 의무고, 탈세는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중대한 범죄다. 그들 언론은 일반 기업 계열사가 탈세했을 때 그렇게 호되게 비판해놓고 지금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교수를 동원해 여론을 호도한다. 거기에 아세하는 문인이나 지식인도 그냥 두고볼 수는 없다.”

이번 발언 파문이 그에게 어떤 정치적 영향을 미칠지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찬사와 비난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문은 언론개혁 논쟁에 새 불씨를 댕겼다. 그러나 그 자신은 발언 파문이 확대되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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