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향해, 오직 대선을 향해… 여론 무시하고 족벌언론을 위해 온몸 던지다
정당이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그럼 질문 하나, 집권을 본질적 목표로 한다는 정당이 국민 다수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당론으로 삼는다면 정상이라고 해야 할까.
여론조사는 조작이다?
논리적으로는 당연히 ‘비정상적이다’가 맞는 대답일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지지를 얻지 않고는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1년 오늘 한국사회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국민 대다수가 “옳다”고 하는 데 수권정당을 자임하는 원내 제1당이 “아니다”라고 태연히 부정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된 일일까.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문순)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6월23∼24일 이틀 동안 전국의 성인남녀 1천여명을 대상으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 오차 ±3.1%)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87.8%가 ‘탈세 언론사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추징금을 조속히 납부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5.2%만 ‘언론탄압이 명백하므로 추징금을 납부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또 이번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59.8%가 ‘공평과세 차원’이라고 답했으며, ‘언론탄압’ 주장에 공감하는 국민은 25.5%에 그쳤다. 그러나 1조3594억원의 탈루소득(5056억원 추징)이 드러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식 입장은 이런 국민들의 생각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한나라당의 입장은 이회창 총재의 발언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 총재는 6월26일 총재단회의에서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사에 행하고 있는 것은 법을 빌린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폭력과 같다.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당력을 모아 언론수호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정부 여당의 언론장악 음모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한나라당이 발표한 각종 성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나라당은 공식성명을 통해 언론사 세무조사를 “조세권을 악용해 특정언론을 탄압하고 회유하려는 술수”(6월20일 대변인 성명), “언론 길들이기 차원을 넘어 비판언론에 대한 말살정책”(6월20일 언론장악저지특위 성명), “개혁으로 위장한 언론 압살행위”(6·26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특위 성명), “표적세무사찰”(6월30일 부대변인 성명)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정부 여당의 언론장악 음모에 맞서 자유언론수호를 위한 투쟁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6월24일 국회의 국정조사권 발동을 강력히 주장하는 한편 6월26일 기존의 언론장악저지특위를 24명의 의원이 참여하는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특위로 확대개편했다. 또 7월1일에는 이회창 총재 주재로 ‘언론말살음모저지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원내외 위원장 연석회의, 결의문 채택, 당보 호외 발간 및 거리배포 등 적극적으로 대정부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과거 발언까지 번복해가며…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언론사 세무조사를 찬성하는 국민여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한나라당의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특위는 26일 성명을 통해 “여론조사를 하면서 ‘언론사가 고의적으로 탈세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을 형사처벌해야 하느냐’는 등의 편향적 설문으로 여론조작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작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6월26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하다가 갑자기 ‘군수뇌부 골프파문’으로 조사항목을 바꾼 해프닝은 사정이 꼭 그렇지만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은 언론사 세무조사 관련 여론조사에서 “최근 국세청과 공정위의 언론조사가 현 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문항에 이날 오전 9시14분까지 모두 423명 가운데 263명(62.2%)이 “아니다”라고 답한 반면,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154명(36.4%)에 불과하자, 16시간 만에 관련 조사를 중단했다. 한나라당은 “직원이 보고도 하지 않고 설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바꾼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조사결과가 불리하니까 바꾼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나라당은 또 여의도연구소를 통해 정식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조사결과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과 이 총재가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말살음모라는 섬뜩한 용어까지 써가며 강변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한나라당과 이 총재가 주장하는 언론관, 언론자유의 실체부터 살펴보자. 이 총재의 입장은 언론사 세무조사는 언론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언론사의 부정비리나 사주를 비호할 생각은 없지만 부정비리 조사란 이름으로 언론자유를 위축시키고 언론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것은 특정 언론사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언론의 문제다.”(6월27일 총재단회의) “언론의 본질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가 위축돼선 안 된다. 특정언론의 문제가 아닌 전 언론의 문제다. 탈세조사라는 명분을 내세워 언론자율을 제압하려 한다면 묵과할 수 없다. 그러나 부정비리를 저지른 언론사나 사주를 비호할 생각은 없다.”(6월28일 기자간담회)
이 총재는 이런 논리를 옹호하기 위해 대법관 출신답게 법이론까지 들고나온다. “형평에 어긋난 공권력은 정의가 아니다”(7월1일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위), “세무조사가 아무리 합법적인 것이더라도 정당하지 않은 목적, 즉 언론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될 때는 그 정당성이 부인되는 것이 법치주의의 원칙”(2월6일 국회 대표연설), “정의로운 법만이 법이며 정의롭지 않은 법은 이미 법이 아니다”(2월12일 총재단 회의). ‘악법도 법’이라는 형식적 법치주의보다 ‘법의 내용과 집행이 법 정신에 비춰 정의로워야 한다’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총재의 이런 발언은 스스로 과거 자신이 했던 말과 배치된다. 이 총재는 정치입문 이전 ‘대쪽 총리’로 국민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던 95년 6월 월간 <말>과의 인터뷰에서 “정상적인 입법절차에 의해 개폐되든가 법원의 판단에 의해 법이 정의로운 방향으로 해석되든가 하기 전에는 일단 성립된 법은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고 했다. 또 “제한된 범위의 시민불복종이 인정된다 해도 그 법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법에 의한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정법 준수의 중요성을 피력한 것이다. 지난해 2월 연두기자회견에서도 당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관련해 “시민단체의 활동이 법을 무시한 방법으로 행해진다면 아무리 그 목적이 순수하다고 해도 사회전반에 준법의식과 관행을 파괴하는 매우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악법도 법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악법은 법이 아니라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 총재가 세무조사를 반대하는 의도의 순수성이 의심받을 만한 대목인 것이다.
구태의연한 ‘색깔 덧씌우기’ 작업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한나라당과 이 총재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언론자유와 언론사주의 자유, 기업으로서의 언론사의 자유를 뒤섞어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사주 개인을 비호하고 불법을 감싸기 위함이 아니며 그것은 법대로 처리하라”(6월30일 의원총회)면서도 사실상 언론자유 침해를 이유로 탈세 등 불법비리를 저지른 언론사 사주에 대한 법집행을 반대하는 행동을 보이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실제 한나라당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특위는 6월26일 성명에서 “언론사주 구속은 비판 언론인 제거작업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며, 이는 현 정권이 의도하는 언론장악과 재편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임이 확인된 이상 우리 당은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탈세혐의가 있는 언론사주들을 노골적으로 비호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언론의 자유가 기업으로서의 언론사나 언론사 사주의 자유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96년 결정문에서 “우리 헌법이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언론출판의 자유의 내재적 본질인 표현의 방법과 내용을 보장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언론출판 기업의 추체인 기업인으로서의 활동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과 이 총재는 언론자유의 본질적 토대인 편집권 독립이 정부보다는 사주에 의해 더 침해되고 있다는 점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언론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는 사주들의 편집권 침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99년 언론재단의 여론조사를 보면 기자들의 71%가 편집권이 사주로부터 독립돼 있지 못하다고 응답하고 있다(‘별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54.6%, ‘전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16.6%). 또 97년 한국기자협회 조사에서도 기자들은 ‘언론보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집단’으로 정부(13.8%)보다 언론사주(51.3%)를 압도적으로 꼽고 있다.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대목은 정부 여당이 뒷거래 등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언론비리와 탈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조세정의를 실현하면서 언론자유를 지키는 방법은 달리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세무조사에 대응하는 야당의 역할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언론학자들과 시민단체의 공통된 시각이다. 세무조사 결과의 투명한 공개와 엄정한 법집행, 그리고 소유지배구조의 개선, 편집권의 독립 등 언론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제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의 모색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과 이 총재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갈수록 본질에서 벗어난 지역감정 조장과 색깔론 공세를 펼치는 등 흠집내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불리한 여론을 의식한 한나라당은 26일 “언론개혁 빙자한 비판 언론인 제거작업은 모든 언론을 ‘민중언론화’시키겠다는 의도”(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특위 성명)라고 공격하더니, 7월1일에는 “이번 세무조사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에 앞서 언론 내부의 비판적 시각을 잠재우려는 정지작업의 의미도 포함돼 있다”(김기배 사무총장)고 구태의연한 ‘색깔 덧씌우기’에 본격 나섰다. 또 한나라당은 색깔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듯 ‘언론압살극 계통도’라며 청와대·국세청·공정거래위·검찰의 간부 명단을 제시하고 “핵심관련 인물 20명 중 16명이 호남 출신”이라고 망국적 지역감정까지 부추기고 있다.
“싸워서 손해날 건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언론사 세무조사에 반대하는 한나라당과 이 총재의 속셈은 도대체 무엇일까. 국민 대다수의 여론도 무시하고 본질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언론사 세무조사를 반대하는 그들만의 셈법은 어떤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상황과 연관해 해석하고 있다.
이 총재쪽 관계자들도 이 점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다. 이 총재쪽의 한 관계자는 “이 총재에게는 이런 선택밖에 없다. 사회 전반이 우경화, 보수화되고 있다. 북한 상선의 NLL 침범사건 때부터 이 총재도 분명히 보수쪽을 택했다. 솔직히 이 총재가 올 봄 이런저런 당내 의견을 듣고 진보적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등 균형을 맞췄다. 국보법 대화 가능성, 김정일 답방촉구 등도 다 이런 맥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쪽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답답한 노릇이다. 이 총재의 기반이 정말 완전히 변했다. 초기만 해도 YS의 미완의 개혁을 더 철저히 할 수 있는 인물로 비쳤는데 지금은 보수 기득권층의 보루로 각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의 다른 측근은 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잘못하면 야당을 두둔해주는 언론 하나 없이 대선을 치러야 한다. 우리라고 그렇게 해야 하나. 아니다. 지금 방송의 모습을 보면 대선 때 상황이 뻔하다. 우리는 지지세력 하나 없이 대선에 갈 수는 없다. 이 총재의 행동은 현실적 선택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이 총재에 우호적인 언론이 세무조사로 타격을 입을 경우 이 총재도 대선정국에서 어려운 행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 여당의 세무조사 공세를 차단하고 이 총재의 우군으로 남아 있도록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측근은 또 “정치경험이 많은 당내 인사들은 오랜 정치감각으로 싸워서 손해볼 게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식한다. 국민들은 이 총재에 대해 비판도 하지만, 이 정권의 세무조사 의도에 대해서도 순수하지 못하고 정략적이라는 생각도 한다. 국민들은 반반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지는 게임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 “이회창 총재의 기반은 보수 기득권층으로 완전히 변했다.” 이총재는 연일 강성발언을 쏟아놓는다.(강재훈 기자)
어떻게 된 일일까.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문순)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6월23∼24일 이틀 동안 전국의 성인남녀 1천여명을 대상으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 오차 ±3.1%)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87.8%가 ‘탈세 언론사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추징금을 조속히 납부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5.2%만 ‘언론탄압이 명백하므로 추징금을 납부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또 이번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59.8%가 ‘공평과세 차원’이라고 답했으며, ‘언론탄압’ 주장에 공감하는 국민은 25.5%에 그쳤다. 그러나 1조3594억원의 탈루소득(5056억원 추징)이 드러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식 입장은 이런 국민들의 생각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한나라당의 입장은 이회창 총재의 발언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 총재는 6월26일 총재단회의에서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사에 행하고 있는 것은 법을 빌린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폭력과 같다.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당력을 모아 언론수호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정부 여당의 언론장악 음모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한나라당이 발표한 각종 성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나라당은 공식성명을 통해 언론사 세무조사를 “조세권을 악용해 특정언론을 탄압하고 회유하려는 술수”(6월20일 대변인 성명), “언론 길들이기 차원을 넘어 비판언론에 대한 말살정책”(6월20일 언론장악저지특위 성명), “개혁으로 위장한 언론 압살행위”(6·26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특위 성명), “표적세무사찰”(6월30일 부대변인 성명)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정부 여당의 언론장악 음모에 맞서 자유언론수호를 위한 투쟁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6월24일 국회의 국정조사권 발동을 강력히 주장하는 한편 6월26일 기존의 언론장악저지특위를 24명의 의원이 참여하는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특위로 확대개편했다. 또 7월1일에는 이회창 총재 주재로 ‘언론말살음모저지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원내외 위원장 연석회의, 결의문 채택, 당보 호외 발간 및 거리배포 등 적극적으로 대정부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과거 발언까지 번복해가며…

사진/ 한나라당 박희태(가운데) 부총재가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 당 대책 등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지역감정 조장에 색깔론까지. 한나라당은 세무조사 흠집내기에 골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