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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들의 ‘회전문’은 왜 닫히지 않나

억대 연봉 로펌으로 출근하는 어제의 고위공무원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사퇴에 비친 그들의 부적절한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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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18 15:28 수정 : 2011-01-2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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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지난 1월12일 결국 사퇴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그는 청와대와 정부를 감시해야 하는 감사원의 수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자질 논란보다는 고위공직자들의 고질적인 ‘전관예우’ 문제가 사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정보 수집 창구 등으로 활용 의혹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지난 1월12일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는 퇴직 이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7개월간 7억원의 급여를 받아 지나친 전관예우라는 비판을 받았다.한겨레 김명진

정 전 후보자는 2007년 11월 대검찰청 차장을 그만둔 지 사흘 만에 법무법인 바른에 들어가 7개월간 7억원을 받았다. 특히 그가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에 들어간 이후 월 4600만원이던 급여가 1억1천만원으로 2배 이상 올랐다. 이처럼 고위공직자가 퇴직 뒤 1억원이 넘는 월급을 받은 것이 국민 정서상 납득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월급이 1억원이 넘는 것은 정치적 영향력 등 ‘특별한 값’이 들어간 것”이라며 “인수위에 합류하면서 월급이 크게 오른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최근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로 내정된 박한철 전 서울동부지검장도 마찬가지다. 박 후보자는 지난해 7월 퇴임한 뒤 9월부터 올해 1월6일까지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이 기간 에 재산이 4억4천만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억원은 퇴직금이고, 승용차는 로펌에서 업무용으로 받은 것으로 반납했다”고 밝혔다. 결국 2억원 이상이 5개월간 일한 대가라는 말로, 이 또한 상당한 보수인 셈이다.

이처럼 고위공직자들이 공직을 나온 뒤 대형 로펌에 들어갔다가 다시 공직에 오르면서 ‘회전문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이 공직에서 얻은 지식을 이용해 대형 로펌에 기여하고, 다시 공직에 오른 뒤에는 대형 로펌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 때문이다.

최근에는 경제 분야의 사정을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의 공직자들이 로펌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만큼 공직자들이 로펌의 로비나 정보 수집의 창구로 활용된다는 의혹도 커진다.


2009년 5월 공정거래위 황아무개 과장은 사표를 내고 김앤장에 입사했다. 그는 당시 한국유리공업과 KCC의 판유리 가격 담합 사실을 조사 중이었다. 이미 공정위는 담합 혐의를 포착하고 현장조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는 1, 2위 업체의 담합으로 판유리 값은 kg당 2006년 360원에서 2009년 1분기 498원까지 올랐다. 해당 기업들은 공정위의 현장조사 뒤 자진 신고를 했지만 자칫 매출액의 10%인 수백억원의 과징금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담당 과장이 김앤장으로 옮겨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김앤장은 한국유리공업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애초 2009년 말께 공정위의 결론이 날 것으로 알려졌지만,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영국·독일 등은 업무 연관 땐 취업 제한

2006년 공정위 상임위원인 서아무개씨도 퇴직 뒤 김앤장의 고문으로 취업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공정위에서 MS의 끼워팔기 사건 주심을 맡아 324억9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김앤장은 이에 맞서 과징금 취소 소송을 낸 MS의 법률대리인이었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0년 8월까지 공정위 4급 이상 퇴직자 26명 가운데 절반이 로펌에 취업했다. 이 가운데 김앤장이 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도 금융감독원, 국세청 출신들이 로펌에 고문이나 전문위원 등으로 입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 전광수 소비자서비스국장과 정범진 금융투자서비스국 총괄팀장이 김앤장으로 옮겼고, 같은 달 박관수 자본시장조사국 조사1팀장은 법무법인 광장으로 가기 위해 사표를 냈다. 이에 앞서 4월과 6월 자본시장조사국 소속 국장과 팀장이 각각 퇴직한 뒤 법무법인 세종과 태평양으로 이동했다. 금융감독원 현직 간부는 “전직 출신이라고 해서 드러나게 로비를 하는 경우는 없다”면서도 “안면 있는 선배가 전화를 하는 상황에서 사건의 진행 현황 등을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로펌으로 옮길 경우 연봉이 4~5배가 뛰어 약 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로펌의 고위공직자 출신 고문 현황

공직에서 물러난 뒤 로펌을 거쳐 다시 고위공직에 오르고 이후 다시 로펌에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김앤장에 근무하다 국무총리가 된 한승수 전 총리는 2009년 9월 사퇴한 뒤 한 달 만에 다시 김앤장 고문으로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사퇴한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당시 김앤장 고문으로 4억9천만원을 받으며 15개월간 일하는 동안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의 LPG 담합에 대한 공정위 과징금(6689억원) 취소 소송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그는 현재 다시 김앤장 고문으로 일한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고위공직자들의 로펌행을 막을 수 없다. 현행 공직자윤리법과 그 시행령은 퇴직 전 3년간 소속한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기업체 취업을 2년 동안 제한하지만, 그 대상은 자본금 50억원 이상, 외형거래액(매출액) 150억원 이상의 사기업이다. 대형 로펌은 대부분 매출액이 150억원을 훌쩍 넘지만, 자본금이 적어 취업 제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반면 외국은 구체적인 조항을 만들어 이같은 논란을 줄이고 있다. 영국은 고위공직자에 대해 기업뿐만 아니라 비영리조직이라도 유급으로 일할 경우 업무와 관련이 있으면 2년 동안 취업을 제한한다. 이 기간 안에 입사하려면 중앙정부 취업자문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독일은 연방공무원법을 제정해 정년 이전에 퇴직한 사람은 5년간, 정년 퇴직자는 3년간 담당한 업무와 연관된 기업이나 기관에 취업하는 것을 제한한다. 자문 역할만 하는 고문직 등도 과거 업무와 연관될 경우에는 취업이 허용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정교한 고위공직자의 취업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행정안전부는 2008년 8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퇴직 전 5년간 맡았던 업무와 연관된 기업에 2년 동안 취업을 막고, 자본금 50억원 미만 혹은 외형거래액 150억원 미만인 기업에서 일정액 이상을 받을 경우에도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확인이나 승인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몇 달 뒤인 11월에 재입법예고를 하면서 이같은 규정은 사라졌다. 행정안전부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공직사회 내부 반발이 너무 컸다”고 해명했다.

공직자윤리법 개정 움직임에 반발 극렬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도 잠을 자고 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2008년 법무법인·법률사무소·회계법인 등을 취업 제한 기업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같은 당 김동철 의원은 취업 제한 대상을 자본금 50억원 이상 또는 외형거래액 150억원 이상인 영리사업을 하는 회사·법인·단체 등으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도 고위공직자들의 무차별적인 로펌행을 막는 개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다. 조영택 의원은 “공정위와 금감원 등에서 체득한 조사 회피 노하우까지 로펌 등을 통해 전수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혹이 있다”며 “전직이라도 영향력 있는 고위간부가 사건에 참여할 경우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관련 법안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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