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4일 ‘알아서’ 전격 사퇴한 황의돈 전 육군참모총장(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12월4일 이명박 대통령이 신임 김관진 국방부 장관(가운데 사진 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신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이명박 대통령의 고교 후배 김상기 전3군사령관(사진 사진공동취재단).(왼쪽부터)
황의돈 전 총장의 건물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 옆에 있고 근처에 대구탕 골목과 양·대창 구이집들이 몰려 있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 있다. 빌딩 구입은 8년 전 일이고, 그때부터 부동산 투기 의혹이 나왔다. 빌딩 구입 당시 준장이던 황 전 총장은 소장·중장·대장 진급 심사 때마다 이 문제가 제기돼 여러 사정기관에서 검증을 받았고, 그 결과 ‘클리어’(면책)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육군총장 임명 때도 청와대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져 육군총장에 임명됐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황의돈 빌딩’이 8년 전 일로 너무 ‘구문’인데다 황 전 총장이 이전 보직에 기용될 때 그런대로 검증된 사안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조선일보> 보도 뒤에도 ‘황의돈 빌딩’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조선일보> 보도 닷새 뒤인 12월14일 황 전 총장이 ‘알아서’ 전격 사퇴했다. 형식은 자진 사퇴였지만 청와대가 ‘자른’ 것이다. 사퇴 소식이 전해지자, 군 내부에선 ‘부동산 투기 의혹 말고 진짜 사퇴 이유가 뭐냐’ ‘올 한 해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등 사고는 해군이 쳤는데, 엉뚱하게 육군총장이 왜 옷을 벗고 나가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국방부 출입기자들과 군 관계자들이 품었던 황 전 총장 전격 사퇴에 대한 의문은 바로 풀렸다. 사퇴 다음날인 12월15일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경북 포항 동지상고 후배인 김상기 대장이 후임자로 내정됐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 형제의 고교 후배를 총장으로 만들고자 모든 일이 벌어진 셈이다. 국방장관 영이 설까 <조선일보> 보도(12월9일) 일주일 만에 김상기 육군총장 체제가 출범한 것을 두고 군 안팎에선 ‘보이지 않는 손’이 치밀하게 기획한 ‘일주일 전격전’이란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장급 인사는 없다”고 공언한 김관진 국방장관은 권력 핵심의 분위기를 모르는 바보가 됐다. 군 내부에 장관 영이 설지 의문이다. 청와대는 왜 이런 식으로 무리하게 김상기 육군총장 체제를 출범시켰을까? 요약하면,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고 믿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강도 높은 군 개혁을 공언해왔다. 대통령 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는 지난 12월6일 71개 국방개혁 과제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청와대는 최대한 빨리 국방개혁 과제를 선별해 정책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71개 과제를 이명박 정권의 남은 임기 2년 안에 완수 하기엔 너무 버겁고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다. 군 관계자는 “청와대가 주도하려는 국방개혁과 관련해 할 일이 많은데 김상기 총장이 애초 예상처럼 내년에 육군총장을 맡게 되면 이명박 정부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게 돼 재임 기간이 너무 짧게 된다”며 “신임 육군총장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국방장관과 한국군 선임장교(군 현역 중 최고 서열)인 합참의장을 제쳐두고, 김상기 육군총장 체제 출범에 ‘다걸기’한 것은 청와대가 보기에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믿고 맡길 만한 자기 식구’가 아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전북 전주 출신이고, 한민구 합참의장은 충북 청원 출신이다. 이명박 대통령 처지에선 국방개혁의 파트너로 믿을 수 있는 고향 후배인 김상기 육군총장을 택한 셈이다. 한국군 가운데 육군이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을 감안하면, 육군 개혁 없이 군 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 이 때문에 영남 출신이 육해공군 총장을 독식했다는 비판을 감수하고 김상기 육군총장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1993년 이후 영남 출신 총장 싹쓸이 처음 이로써 김상기 육군총장(경북 포항), 김성찬 해군총장(경남 진해), 박종헌 공군총장(포항) 등 육해공군 수장을 모두 경상도 출신이 차지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권은 군 수뇌부를 구성할 때 김영삼·노무현 정권 때는 경남 출신이 많고 김대중 정권 때는 호남 출신이 느는 등 지역색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지역 안배를 해왔다. 역대 정권은 육해공군 총장 가운데 2명이 영남 등 특정 지역 출신에 쏠리면, 나머지 1곳은 의식적으로 다른 지역 출신을 임명해왔다. 군 내부의 화합과 단결이 전투력 발휘의 바탕이 되므로 군 수뇌부를 구성할 때 지역 안배에 신경을 쓴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지역 안배’란 군 수뇌부의 관행을 무시했다. 이명박 정권의 인사 행태인 ‘오기 인사’ ‘회전문 인사’가 재현된 것이다.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는 비판에는 아예 귀를 틀어막고 ‘아는 사람’ ‘제 식구’를 중용하는 ‘이명박식 인사’가 12월9~16일 ‘황의돈 퇴출 일주일 전격전’으로 나타난 것이다. 권혁철 기자 한겨레 정치부문 nur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