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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땐 개혁이고 지금은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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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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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언론사 세무조사에 관여한 인사들이 이제는 한나라당 ‘언론자유’의 선봉장이라니…

사진/ 과거와 180도 달라진 사람들. 당직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관용(오른쪽) 비상대책위 위원장.
언론사 세무조사와 탈세사주 고발을 ‘언론 죽이기 음모’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답방 정지작업용’으로 몰아가는 한나라당 논리를 뒷받침하는 인사들은 과연 누구일까. 전면에 드러난 인물은 박관용·박종웅 두 의원이다. 박관용 의원은 세무조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항 논리 및 전술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상대책위) 위원장이다. 비상대책위 위원인 박종웅 의원은 〈MBC 100분 토론〉, 〈SBS 토론 공방〉 등 방송사 토론회에 단골 논객으로 출현해 한나라당 논리를 대중에게 퍼뜨리는 선전대 역할을 하고 있다.

박관용 의원, 94년 세무조사 사실상 총괄

이들 외에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으로 이 총재의 공보특보인 고흥길 의원은 5공 시절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던 최병렬 부총재와 함께 이 총재의 언론정책 기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인물로 알려졌다. 양정규·하순봉 부총재, 김무성 총재비서실장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몇몇은 김영삼 정권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를 강력히 주창하거나, 94년 실시된 언론사 세무조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인물이다.

비상대책위원장인 박관용 의원. 그는 94년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사실상 총괄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지난 96년 6월30일 정치학회 토론회와 7월2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개혁과제로 추진한 세무조사가 언론사의 저항에 가로막혀 좌절됐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때 “언론을 포함한 기득권층은 많은 자금, 정보,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노회한 사람들로 이들의 저항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했다. 국민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언론 등 기득권 세력의 비판에 휩쓸렸다”고 말했었다. 그런 그가 세무조사 방침이 확정된 지난 2월부터 반대론을 주도하며 과거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던 족벌언론을 두둔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세청의 비리 언론사주 고발 직후인 6월29일 오후에는 “민주주의의 조종을 들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까지 목청을 높였다. 그는 이런 변화에 대해 뚜렷한 해명을 않고 있다. 다만 2월 초 몇몇 언론과 인터뷰에서는 “(94년) 당시에는 집권 초기의 언론개혁 프로그램 차원에서 세무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최근 세무조사는 집권 후반기라는 시기상 문제를 볼 때 94년과 달리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장악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역력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거나 “구체적으로 비교할 자료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을 뿐이다.

박종웅 의원도 과거와 180도 달라졌다. 그는 김영삼 정권 시절 누구보다 강력하게 언론사 세무조사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역설했다. 93년 10월14일 국회 문화체육공보위원회에서 “언론의 개혁과 자정을 위해, 언론에 대한 특혜를 없애고 언론의 공익성을 높이기 위해 언론사 기업공개와 세무조사 실시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이후 사실상 ‘언론개혁의 전도사’ 역할을 도맡았다. 96년 7월22일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이미 덮어버린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세청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시작하자 말을 바꿨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불신 심화, 국론 분열, 정권에 대한 불만과 의혹이 야기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세무조사, 공정위조사 등 대 언론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탈세사주 고발 이후 “김대중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성토하는 그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때만 국세청이 순수했다?

이 총재의 최측근인 김무성 비서실장은 94년 당시 청와대 사정담당 비서관이었다. 때문에 당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사실상 배후에서 지휘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김 의원은 “당시 세무조사는 국세청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행한 것이며, 국세청이 모든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 국세청이 독자적인 세무조사를 행했다는 것이지, 지금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94년에는 국세청이 독자적이고 순수했는데, 지금은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김영삼 대통령이 94년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언론사와 뒷거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최근 드러난 것 같은 더욱 큰 부조리가 잉태됐다는 시민·사회단체와 한나라당 내 몇몇 개혁성향 의원들의 비판에는 애써 귀막고 있다. 이들 눈에는 그저 현재 세무조사가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로 보일 뿐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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