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촛불집회 이후 ‘국민 상식’이 돼버린 대한민국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헌법은 전문과 총강(1장)에 이어 국민의 권리와 의무(2장), 국회(3장), 정부(4장), 법원(5장) 순으로 서술돼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는 대부분 이 순서를 따른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66조1항)하지만, 국민과 국회의 뒷자리를 차지한다.
조국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주권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밝힌 뒤 그 주권을 대변하는 기관을 대통령 앞에 세우는 것이 당연하며, 대통령중심제 국가라고 할지라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를 앞에 둠으로써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견제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 국회에서 또 사달이 났다. 집권세력인 한나라당은 지난 12월8일 3년째 예산을 날치기 처리한 것도 모자라 친수구역법, 서울대 법인화법, 아랍에미리트 파병결의안 등 24개 의안을 같이 처리했다. 야당은 “군사독재 정권 때도 보기 힘들던 의회 폭거, 의회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쪽수’와 ‘근육’에서 나온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날 주역들의 ‘공적’을 기록한다.
박희태 국회의장
박 의장은 문제의 날치기 현장에 없었다. 국회의장의 권한인 직권상정으로 ‘살짝’ 날치기의 길을 열어줬을 뿐이다. 의사봉을 두드리는 악역은 같은 한나라당 출신인 정의화 부의장에게 넘겼다. 국회에는 의안의 성격에 따라 해당 상임위를 두고 있으며, 상임위를 거친 의안들이 본회의에 상정된다. 직권상정이란 이런 절차를 건너뛰고 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의안을 상정하는 것을 말한다.
한때 정치사에 남을 ‘명대변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박 의장은, 2008년 총선에서는 낡은 인물로 찍혀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2009년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지역구를 경남 남해에서 양산으로 옮겨 재기에 성공했다.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될 당시 친이명박계 중진들 사이에 “정치적 미래가 없어 통제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반대 기류가 강했으나 기우였음이 이번에 확인됐다.
그의 활약상이 소극적으로 비치지만 실제로는 적잖았음은 김형오 전 의장과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난다. 김 전 의장 역시 ‘역대 최다 직권상정상’을 받을 만하고, 특히 2007년 ‘언론악법’을 직권상정한 전과가 있지만 최소한 그는 격식에 신경을 썼다. 여야 원내대표와의 중재 제스처,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압박을 버티는 모양새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의장은 너무 순순하게 문을 열어줘 ‘바지 의장’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그의 블로그 문패는 ‘화합과 소통의 정치인’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연평도에서 불탄 보온병을 포탄으로 오인해 전 국민을 즐겁게 하면서 존재감을 부각시켰던 안 대표는, 예산안 날치기 처리를 주도해놓고도 자신의 공약마저 반영되지 않은 예산안에 뒤늦게 분통을 터뜨렸다.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게 목적이었지, 그 예산안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뒤늦게 실토한 셈이다. 지난 9월 “다른 예산을 깎더라도 양육수당만은 꼭 늘리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대국민 사기극이 돼버렸다. 안 대표는 날치기 다음날 열린 회의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안을… 우리 당과 기획재정부는 뭘 어떻게 한 것이냐”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대표가 모르는 것을 그 누가 알까.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때는 상도동계(김영삼계)였다. 이후에 이회창계·친박근혜계의 좌장에서 친이명박계로 ‘전향’한 김 원내대표는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뚝심을 보여줬다. 원내대표 당선 이후 “다른 것은 양보해도 예산안은 꼭 제 날짜에 처리한다”고 공언해왔다. 날치기 현장에서는 소극적인 의원들을 독려하며 몸싸움 현장으로 내밀었다. 예산안 날치기에 야당과의 충돌이 불가피한 의안들을 끼워넣음으로써, 그동안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노련함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한 방에 잠재웠다. 차기 대표를 노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친박계가 걸림돌이다. 그의 지나온 길로 미뤄볼 때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에 다시 전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재오 특임장관
이명박 대통령의 ‘특임’을 무난히 수행했으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몸싸움 끝에 본회의장에 진격할 때 선두에 섰다. 이런 탁월한 위치선정 감각은 다년간의 국회 경험과 김대중 정부 이후 길러진 ‘야성’ 덕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08년 총선에서 낙선했다가 지난 7월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뒤 특임장관이 됐다. 장관 앞에 붙은 ‘특임’이라는 두 글자에 대해 그동안 해석이 분분했는데, 4대강 사업 등 정부 중점사업 관련 법안과 새해 예산안을 정기국회 안에 통과시키라는 특임을 받았다는 것이 이 장관 쪽의 말이다. 특임은 특별하게 주어진 임무인 셈인데, 특별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고 이 대통령이 그때그때 임무를 부여하는 모양이다.
이 장관은 재보선에서 재기에 성공한 이후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꾀했는데, 날치기 전후 몇 컷의 이미지 때문에 말짱 도루묵이 돼버렸다. 뒤늦게 트위터를 통해 “박(지원) 원내대표님, 그날(8일) 화가 몹시 나셨지요? 자리에서 지켜보는 저도 사실은 불편했습니다. 그날 대표님이 화풀이하러 왔을 때 제가 여유 있게 웃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제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제 수양의 한계입니다. 화난 마음을 풀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사과했다. 특임을 마친 뒤 다시 90도 인사 모드로 돌아갔다.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이 이번 날치기 정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와 명령을 내렸는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날치기 통과 전에는 여야의 대화와 타협보다는 예산안의 회기 내 통과를 여러 차례 강조했고, 날치기 이후에는 “정기국회 회기 내에 통과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형님인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 예산이 자신의 임기 3년 동안 1조원에 달하는 점을 더 다행스럽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는 “서민들에게 복지혜택을 확대하고 국가안보와 민생안정은 물론 지속적인 성장기반 확충에 새해 예산이 소중히 쓰이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날치기 처리한 예산안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이상 ‘2010년 날치기 공적서’의 순서는 공적의 크기와는 무관하다. 이들 외에도 한때는 한나라당의 소장개혁파로 꼽혔던 원희룡 사무총장의 부적절한 ‘자축 세리머니’와, 한나라당에 ‘근육’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김성회 의원도 이 공적서의 끝자락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김보협 기자bhkim@hani.co.kr
지난 12월8일 새해 예산안과 24개 의안 날치기 직전 장면. 버티는 이와 끌어내는 이들의 모습이 처연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쪽수’와 ‘근육’에서 나온다.한겨레 탁기형
박희태 국회의장
그의 활약상이 소극적으로 비치지만 실제로는 적잖았음은 김형오 전 의장과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난다. 김 전 의장 역시 ‘역대 최다 직권상정상’을 받을 만하고, 특히 2007년 ‘언론악법’을 직권상정한 전과가 있지만 최소한 그는 격식에 신경을 썼다. 여야 원내대표와의 중재 제스처,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압박을 버티는 모양새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의장은 너무 순순하게 문을 열어줘 ‘바지 의장’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그의 블로그 문패는 ‘화합과 소통의 정치인’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재오 특임장관
이명박 대통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