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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언론개혁 외치는 ‘해당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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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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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일부 개혁적 소장파들과 이부영 등 중진의원들의 ‘소신발언’

사진/ 김원웅 의원(왼쪽)은 홈페이지에 당 지도부와 족벌언론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의 소신발언은 한나라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이용호 기자)
한나라당 안에서 세무조사에 대해 당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회창 총재를 비롯한 지도부는 물론 중하위 당직자들까지 이번 사건을 “비판언론을 길들인 뒤,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을 죽이려는 김대중 정권의 음모”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딴소리를 했다가는 총재 눈 밖에 나는 것은 물론, 당원들로부터 해당행위자로 손가락질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험한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최근 족벌·탈세 언론을 감싸는 당론을 비판하는 해당행위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탈세비호에 우리 당이 너무 빠져들면 안 돼”

조정무 의원(경기 남양주). 그는 한나라당 안에서 세무조사에 대한 성토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던 지난 6월21일 소속 의원들 가운데 처음으로 지도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당 논평은 세무조사 결과를 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말살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라고 비난했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당이 특정언론을 편들며 언론개혁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은 발칵 뒤집혔다. 지도부의 눈총과 압력도 거세졌다. 그러나 조 의원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발언 수위를 더욱 높였다. “언론사도 법 위에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세금을 내지 않았다면 추징금을 물어야 하고, 사주가 비리를 저질렀다면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 일부 언론사가 재벌과 유사한 비리를 저질러왔다면 이번 일을 자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6월29일 탈세 언론사 및 사주에 대한 국세청의 고발 이후에도 당 지도부는 계속 ‘강경대응’쪽으로만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조 의원은 당의 이런 태도가 끝내 못마땅하다. “다시 말하지만, 언론이 법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탈세비리사건에 우리 당이 너무 깊이 빠져들면 안 된다. 법에 처리를 맡겨야지 한나라당이 여권과 대리전을 치르며 전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나라당 내 ‘소장개혁 3인방’으로 불려온 김원웅(대전 대덕), 서상섭(인천 중·동·옹진), 안영근(인천 남구을) 의원도 최근 당 노선에 반발하고 나섰다. 서상섭 의원이 먼저 총대를 멨다. 6월28일 오후. 서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총회장을 썰렁하게 만들며 소신발언을 시작했다. “비판의 자유는 보호돼야 하지만 언론기관의 자유는 무한하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2차대전 뒤 나치에 부역했던 신문사의 80∼90%가 문을 닫았다.(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삭제사건 때 책임을 물어 직원을 내쫓아놓고 (항일의 영광은) 그 신문사가 차지하고 있다. 또 전두환 정권 시절 ‘단군 이래 최대 지도자’라고 한 게 지금의 언론들이다.” 이어 이회창 총재에게 화살을 돌렸다. “야당이 적을 1대1로 단순화할 필요는 있다지만, 부패언론을 옹호한다는 국민적 의혹이 있는 만큼 방법론적으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언론기관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가야 한다.” 순간 이회창 총재 등 당 지도부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러나 몇몇 소장 의원들은 박수로 지지를 표시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이회창 총재는 이날 의총장에서 “언론사주와 언론을 구별해 대응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6월29일 몇몇 언론사주의 파렴치한 탈세 행각이 밝혀진 뒤에도 당 지도부는 강경기조를 고수했다.

서 의원은 지도부의 태도에 분개했다. 그는 29일 오후 기자에게 “어제 의총에서 못다 한 말이 있다”면서 이렇게 털어놨다. “솔직히 언론자유는 취재, 편집, 비판의 자유이지 언론기관의 자유는 아니다. 정권이 언론의 이런 자유를 침해한다면 야당은 당연히 맞서야 한다. 그러나 언론사의 사적 소유형태, 경영이 편집에 간섭하는 현실, 사주비리까지 옹호하는 쪽으로 가서는 절대 안 된다.” 서 의원은 특히 당 지도부를 향해 족벌언론의 기회주의 속성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 언론들이 앞으로 꼭 한나라당을 도울 것이라는 확신할 수 있냐. 없다. 친일, 유신정권 이후의 곡필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카멜레온 같은 연명욕에 사로잡힌 언론은 물밑에서 현 정권과 사주 구명운동을 벌이며 딜(뒷거래)을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타협할 것이다. 때문에 당이 지금처럼 비리사주를 두둔하며 정부·여당과 무작정 각을 세우는 쪽으로 몰고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당 지도부가 정말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 음모를 이겨내려면 먼저 편집권의 독립, 언론사 소유경영의 분리 등 언론개혁을 위한 대안을 제기하고 싸워야 한다. 그게 올바른 방법이다.”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한 김원웅 의원

사진/ 지난 6월26일 오전 총재단회의에 앞서 이회창총재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이부영부총재. 그는 검찰조사가 끝난 뒤 국정조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김원웅 의원도 이런 비판에 최근 가세했다. 7월2일. 김 의원은 홈페이지에 당 지도부와 족벌언론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 의원은 이 글에서 “야당이 할 일은 언론의 비리를 밝혀낸 정부를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제대로 비리를 밝혔는지 따지고, 비리사주와 뒷거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엄정한 법집행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 지도부를 향해 “DJ에 대한 맹목적 반대가 표가 된다는 편협함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면서 “권력에 의한 언론 길들이기가 우려된다면, 당이 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편집권 독립을 법제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일갈했다. 김 의원은 일부 언론사와 기자들에게도 고언을 했다. “지나치게 자신의 지면을 할애해 스스로를 변명하는 것은 독자의 눈살을 찡그리게 한다. 꼭 알릴 내용이 있다면 광고로 말해야 한다. 언론이 사주의 이익에 봉사함으로써 권력으로 군림하던 시대는 끝나야 한다.”

김 의원의 이 글은 한나라당 지도부를 아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불리하게 돌아가는 여론을 의식한 한나라당은 일요일인 7월1일 이 총재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이번 세무조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비판언론을 죽여, 김 위원장 답방을 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치르고 개헌에 나서려는 속셈”이라며 색깔론을 덧씌웠다. 그런데 김 의원이 곧바로 이 주장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의원은 단호하다. “당 일각에 언론사의 논조나 기능약화를 이유로 사주 구속을 반대하고 있는데, 도대체 비리사주 처벌과 논조가 무슨 관계가 있냐. 지도부는 또 하나의 권력인 언론사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략적 태도를 극복해야 한다. 이 총재가 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몇몇 언론의 환심을 사 집권한다면 계속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언론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검찰조사 뒤 국정조사하자”

안영근 의원도 이들 의원과 유사한 주장을 했다. 안 의원은 “세무조사 시기가 김대중 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여론이 드높은 때 이뤄져 음모라는 의심을 받을 이유가 있지만 ‘한나라당 타격론’으로 몰아가는 것은 견강부회”라면서 “우리 당이 탈세 언론사를 끝까지 보호할 수는 없는 만큼 이 총재는 이제라도 빠져나와야 한다”고 충고했다. 안 의원은 특히 “정부가 김영삼 정부처럼 비리 언론사와 적당히 타협한다면 언론 길들이기 차원에서 세무조사를 벌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칼을 뽑아든 이상 타협하지 말고 탈세·비리 사주를 철저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진의원들 가운데는 이부영·박근혜 두 부총재가 당론과 달리 법과 원칙에 따라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부영 부총재는 7월1일 홈페이지에 언론개혁을 위한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우리 앞에 놓인 언론개혁문제는 나라의 전반적 개혁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문제인 만큼 어떤 정략적·정파적 의도도 배제돼야 한다. 이번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회에서 번번이 무산됐던 ‘정기간행물등록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자. 이를 통해 동일인의 지분소유 한도를 제한하고 편집권 독립과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자.” 이 부총재는 또 여야간 논란이 된 국정조사는 “검찰 수사가 종료된 이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여당은 정치적 음모론을 해명할 기회와 함께 언론통제 유혹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고, 야당은 수사가 진행중인 사건을 정치 쟁점화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박근혜 부총재도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지만, 언론사건 기업이건 똑같이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엄정한 법집행쪽에 무게를 뒀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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