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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랑한다면 검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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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15 11:20 수정 : 2010-09-1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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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돼지 상품화 축진듀록 돼지/한국형 씨돼지 ‘축진듀록’

똥돼지가 수난이다.

평화롭게 똥만 먹다가 욕까지 먹게 됐다. 부모 덕을 세게 본 고위층 자녀들을 이르는 말이 된 까닭이다. 이거 영 억울하다. 제주도 및 남도의 똥돼지들, 지은 죄라곤 사람 똥 열심히 받아먹고 단백질 제공한 것밖에 없다. 화장실 말끔히 청소한 것은 기본이고, 짚더미를 뒹굴며 질 좋은 퇴비까지 내놓았다. 말하자면 ‘친환경 농법’의 첨병이다.

어미 돼지, 아비 돼지 배경으로 다른 돼지들보다 배불리 먹어본 적 없고, 다른 돼지 등친 적도 없다. 똥돼지가 무슨 죄냐. 그런데 공연히 요즘 손가락질이다. 못내 안타까워 전국 똥돼지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똥돼지야, 미안하다.

가자미·넙치는 고맙다.

추석을 앞두고 채소·과일 가격이 널을 뛴다. 한국은행 얘기를 들어보니, 농수산품 가격이 지난해보다 7.1%나 올랐다. 못 살겠다. 올 추석은 라면과 수제비만 먹을 참이다. 무 가격은 181%가 뛰었고, 마늘은 159%, 호박은 154%, 상추는 143% 올랐다. 수박도 133%나 올랐다. 두 배 이상 오르지 않은 채소·과일은 명함도 내밀기 힘들게 생겼다.

수산물 가격만 고맙다. 가자미 가격은 46%, 넙치는 43% 떨어졌다. 어민들은 괜찮으려나. 올 추석은 가자미·넙치 라면을 제사상에 올려야겠다. 고등어는 45% 올랐으니 조심할 일이다. 송송 썰어라면에 넣는 양파도 이번엔 못 넣는다. 45% 올랐다. 가자미·넙치만 고맙다.


검찰은 지나치게 친절했다.

최근 삼성증권의 증거인멸 의혹을 너그럽게 ‘무혐의’ 처리했다. 지난 2007년 11월14일, 삼성증권은 전 지점에 계좌가 개설된 지 10년이 지난 신청서를 모조리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하필 이건희 회장의 비자금 수사를 위해 검찰의 특별감찰수사본부가 구성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신청서는 검찰 수사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었다. 검찰로서는 친절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삼성증권의 자료 폐기는 ‘증권업감독규정’에도 어긋났다. 대기업에 천사 같은 금융감독원마저도 참지 못하고 삼성증권에 ‘기관경고’ 징계를 줬다.

하지만 우리 검찰은 달랐다. 선행은 소리소문 없이 하는 법. 경제개혁연대가 이런 사실을 알고 세상에 알리기 전까지 검찰의 친절함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검찰은 아마 왼손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을 게다. 무릇 친절함의 표상이 되겠다. 하지만 다른 곳 다 제쳐두고 유독 삼성에만 계속 훈훈하다. 우리 친절한 검찰씨에게 차마 사랑한다는 말은 못 전하겠다.

오래 살지는 못하겠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재엽 교수는 노인 3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매일 배우자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쓴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혈액 내 산화성 스트레스 지표가 50% 줄고, 항산화 지표는 30% 늘었다고 9월9일 밝혔다. 그러면 암도 적게 걸리고, 수명도 늘게 된다고 덧붙였다. ‘맛있는 뉴스’는 오래 살고 싶어 열심히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려고 시도해봤다. 오늘은 검찰만 안 도와줬다. 몸속 산화성 스트레스 지표랑 항산화 지표만 늘게 됐다. 검찰 탓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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