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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문제제기 기회조차 봉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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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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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재정안정 대책과 관련 당직 사임한 김성순 의원이 속내를 털어놓다

최근 권력핵심부의 국정운영 및 인사 시스템에 대한 소장파의원들의 문제제기로 여권이 내홍을 겪고 있다. 그 여진이 채 가시기도 전인 6월4일 이번에는 민주당의 복지·교육·환경 정책 등을 총괄하는 제3정조위원장을 맡아온 김성수 의원이 당직을 사임했다. 건강보험 재정안정 대책과 관련한 집권당 내부의 정책결정 시스템을 문제삼은 것이다. 소속 의원들의 잇따른 문제제기, 도대체 집권당 내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김 의원쪽은 애초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이미 당직을 떠난 마당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당과 대통령에 누를 끼친다는 것이었다. 김 의원은 6월8일 약속도 잡지 않고 무작정 의원회관 사무실로 찾아간 기자를 만나고서도 좀체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두 마디 말문을 열기 시작하더니 종내에는 자신이 당직을 사퇴하게 된 배경 등을 비교적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당직을 사퇴한 배경은.

=연초 건강보험 재정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 당대표에게 보고한 뒤 대책마련을 위해 건강보험재정건전화기획단을 꾸렸다. 3월 보고서를 만들어 보건복지부에도 대책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번 종합대책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대책의 문제점을 당 차원에서 지적하려 했으나 기회조차 봉쇄됐다. 그렇다면 더이상 당직을 맡을 이유가 없어진 것 아니냐.


-당에서는 “김 의원이 해외출장 기간중에 당-정간 협의해 확정한 안을 당정협의의 초기 수준에서 다시 문제삼았다”고 하는데.

=당시 해외출장은 5월25∼29일 김중권 대표의 중국방문 수행으로 공무였다. 가기 전에 이해찬 정책의장에게 대책안을 만들어 서면으로 제출했다. 그리고 이미 기획단에서 만든 안도 보고돼 이 의장이 내용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핵심적인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5월30일 최고위원회에서 정부대책의 문제점을 제기하려 했다. 그런데 이 의장이 “그 문제는 우리끼리 이야기하자”며 제지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자는 게 아니지만, 정책책임자인 제3정조위원장이 아무 말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정부대책의 문제점은.

=국민부담을 늘려 건강보험 재정을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정부가 의사들에게 너무 밀리기만 했다. 수가인하 등 의료계의 양보를 요구해야 한다.

-집권당의 정책결정 시스템에는 무슨 문제가 있나.

=야당처럼 해서는 안 된다. 야당은 우수한 머리와 유창한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당은 훨씬 책임이 무겁다. 어떤 정책을 세울 때는 늘 현실적 영향력을 철저히 예측하고 검증한 뒤 추진해야 한다. 적어도 1년 이후 나타날 문제점까지는 검토해야 한다.

-시스템문제는 계속 제기됐던 것인데.

=민주주의 사회의 정책결정 과정은 이해집단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이다. 창조가 아니다. 이해관계자들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특히 이번 경우는 국민의 입장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국민에 부담을 더 지워서 해결하려는 것은 문제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사람의 퍼스낼리티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하다. 그것을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 정책은 예술에 가깝게 섬세해야 한다. 아주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한 사람이 할 수 없다. 한 사람이 뭉뚱그려 회의에 회부해서는 안 된다.

-정조위원장 사퇴가 당 기강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도 있다.

=(잘못된 의사결정 구조에) 경종을 울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공직은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나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일 위주로 일이 된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적당히 타협할 수는 없다. 본질을 왜곡하는 타협은 안 된다. 국민부담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

-그래도 최근 소장파 성명 등으로 당이 어려운 상황인데.

=당이 강해지는 과정이다. 민주정당으로 가는 과정이다. 앞으로 당이 정책결정할 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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