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4월9일 무죄가 선고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6월2일 서울시장 선거에 나설 예정인 한 전 총리의 정치 행보가 한결 가벼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참패도 이런 참패가 없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겨냥해 5개월 넘게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핵심 인력을 집중 투입한 검찰이 4월9일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802호 표지이야기 ‘지방선거 태풍의 눈! 한명숙’ 참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형두)는 이날 한 전 총리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한 전 총리를 무죄라고 판단한 핵심적인 이유는 검찰의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검찰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지만, 검찰의 ‘무리한 수사 관행’에 대한 지적은 이미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우선 심야 조사의 문제가 드러난 것은 3월11일이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곽 전 사장은 검찰 수사를 받을 때 조사가 끝난 뒤에도 새벽 늦게까지 남아 검사와 ‘면담’을 했다고 밝혔다. 면담에서는 변호사 입회 없이 주로 정치인과 관련된 혐의를 진술했으며, 구치소에 돌아가면 2시간밖에 잠을 잘 수 없어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증언했다. 곽 전 사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의 명백한 강압수사였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심야 조사는 없었으며 오해를 풀기 위해 구치소 출정기록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는 실제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곽 전 사장의 구치소 출정기록 제출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했다. 이후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곽 전 사장이 주장하는 심야 조사가 ‘면담’일 뿐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믿지 않은 셈이다. 2006년 9월 <한겨레>에 ‘수사 제대로 받는 법’ 기고를 실은 ‘죄’로 결국 서울중앙지검에서 옷을 벗은 금태섭 변호사는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횡령 혐의로 구속돼 있던 곽 전 사장은 명목이야 어떻든 검찰이 심야 조사를 하겠다고 나오면 거절하기 어려운 처지였다”며 “검찰이 단순히 형식적 동의 절차를 밟았다고 해도 한밤중에 상대적 약자인 피의자를 조사하는 수사 관행의 문제가 지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곽 전 사장이 공판 과정에서 수차례 말을 바꾼 것도 검찰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특히 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5만달러’의 행방과 관련해 그는 공판이 시작되자마자 “한 전 총리에게 직접 건넨 것이 아니라 총리실 오찬장 의자에 놓고 나왔다”고 말해 검찰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인사 청탁에 대해서도 “한 전 총리에게 청탁한 사실이 없다”고 말해 법정을 술렁이게 했다.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의 오락가락하는 진술 등을 근거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는지 여부 및 액수에 관해 진술이 계속 바뀌고 일관되지 못해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판단했다. 곽 전 사장이 공판 시작과 함께 말을 바꾸기 시작하자 초조해진 검찰은 ‘골프채 선물’과 ‘제주 골프빌리지 공짜 숙박’ 등 혐의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실까지 흘리며 한 전 총리 압박에 나섰다. 한 전 총리 쪽에서는 진술거부권으로 맞섰다. 검찰이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는 골프 의혹 등으로 한 전 총리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국 4월1일 공판은 검찰이 한 전 총리를 향해 마치 독백을 하듯 골프 의혹과 아들의 미국 유학비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같은 의혹도 4월9일 재판부가 “판단할 이유가 없다”며 아예 무시함으로써 말 그대로 검찰의 메아리 없는 독백으로 남게 됐다. 서울시장 선거에 ‘탄력’ 전망 한 전 총리가 ‘5만달러’ 수수 혐의를 깨끗하게 씻어냄으로써 6월2일 서울시장 선거를 향한 한 전 총리와 민주당의 발걸음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한 전 총리는 그동안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선두 오세훈 시장을 추격하는 흐름을 보였다. ‘5만달러’ 무죄 선고는 한 전 총리와 야권의 선거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이번 지방선거를 ‘MB정권 심판’이라는 구호로 치러야 하는 야권에게 정권 심판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실제 사례라는 점에서 한 전 총리 무죄 판결이 일정한 효과가 가질 수 있다”면서도 “다만 천안함 침몰 사고와 월드컵 변수와 맞물릴 때, 한 전 총리 무죄 카드가 어느 정도의 추동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고집도 변수다. ‘5만달러’ 사건이 완벽한 패배로 일단락됐지만, 한 전 총리를 향한 검찰의 수사 의지는 식지 않고 있다. 검찰은 선고 하루 전인 4월8일 한 전 총리가 연루된 또 다른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전례가 없는 선고 직전 별건 수사 착수에 대해 ‘표적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검찰은 비판은 비판대로 듣되 수사는 수사대로 하겠다는 태도다. 권력욕과 오기로 가득 찬 권력집단의 횡포와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불타는 사명감, 과연 한 전 총리를 향한 검찰의 집념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