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통합입법 움직임, 정치권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
한국전쟁 발발 51주년을 앞둔 최근 한국전 전후에 군·경, 좌·우익단체, 미군 등에 의해 저질러진 100여만명의 민간인 대학살 문제를 국가차원에서 종합·해결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제주도, 경북 문경·예천,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 경남 산청군 지리산 외공리…. 사실상 전 국토를 무대로 펼쳐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통합특별법’제정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각개약진하던 17명의원 ‘한 목소리’
지난 6월2일. 민주당 배기운 의원은 같은 당 곽치영, 김경재, 정범구의원, 한나라당 신영국 의원 등 동료의원 16명과 함께 ‘6·25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15일부터 6·25전쟁이 종료된 53년 7월27일까지 군인·경찰·국제연합군 기타 대통령이 정하는 자의 작전 수행과정에서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실 소속의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두고 180일 안에 피해신고를 받아 3년 이내에 관련자료 수집 및 분석을 완료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희생자 위로를 위한 위령탑 건립 및 소공원 조성 등 위령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고, 계속 치료가 필요한 피해자에게 생활지원금도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제출된 법안은 적잖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작업은 ‘제주 4·3사건’, ‘거창학살사건’ 등 개별 사건 단위로 지역민원 해결 차원에서 추진됐다. 그러나 이 법은 사실상 국가가 나서 한국전을 전후해 국가권력 및 미군에 의해 자행된 모든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지원 및 위령사업을 진행하도록 규정한 첫 법안이다. 그동안 자기 지역구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외치며 각개약진했던 17명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통합입법 제정을 요구한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김원웅 한나라당 의원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김 의원은 지난해부터 피학살 유족회, 인권운동가, 진보 사학자 등이 망라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 인사들과 함께 ‘통합입법’ 공청회를 여는 등 공감대를 계속 넓혀왔다. 그리고 지난 6월8일부터 그동안 수렴된 유족 및 학계의 의견을 대폭 수용한 통합법안을 마련해 범국민위쪽과 최종 조율에 들어갔다. 김 의원도 조만간 국회에 별도의 통합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김 의원이 마련한 통합법안의 경우 조사기간, 조사방식 등 기본 골격은 배 의원이 제출한 법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의 위상과 조사권한을 훨씬 강화했고, 조사대상 학살사건을 좌우를 포괄해 좀더 넓게 설정했다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를 총리실이 아닌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할 것을 명시했다. 또 군·경 등 학살 관련기관이나 자치단체 등에서 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검찰에 고발하는 등 제재방법도 포함했다.
김원웅 의원 “조사협조 않으면 검찰 고발”
유족회가 요구한 실질적인 진상조사를 이뤄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을 법안에 담았다. 특히 진상규명 대상을 ‘한국전쟁 전후 이루어진 민간인 학살’로 통칭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둘러싸고 벌어진 좌우 갈등,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 토벌과정 등에서 발생한 좌우익의 모든 형태의 민간인 학살을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김원웅 의원은 “한국전쟁 전후에 자행된 모든 형태의 반인륜적 학살에 대한 교정이 없다면 남한사회 내부 통합은 물론 물론 남-북간의 통일도 없다”면서 “좌우를 떠나 인륜과 민족통합의 관점에서 민간인 학살 문제에 접근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민주당 전갑길 의원은 6월12일 대정부 질문을 통해 “전쟁을 전후로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된 100만명가량의 민간인에 대한 해원과 진상을 밝히는 역사청산을 시작해야 할 때”라면서 “통합특별법 제정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한 범정부기구를 통해 조속하고 확실한 진상조사를 벌이자”고 역설하고 나섰다.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통합입법 움직임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세를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의 이런 통합입법 움직임들은 지금까지 진행된 진상규명 활동에 대한 반성과 전환을 의미한다. 학계에서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국가권력에 의한 집단학살 피해자가 100만명을 넘어선다는 게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다. 지난 60년 4·19혁명 직후 한때 보도연맹사건 피학살자유족회 등을 중심으로 진상규명 욕구가 분출됐다. 당시 억울한 원한을 풀겠다며 결성된 ‘전국 피학살자 유족회’(유족회장 노현섭)는 모두 114만명이 학살됐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그해 12월31일 정부와 입법부 등을 상대로 △불법 인명살상자를 처단할 특별법제정 △피학살자 유족들에 대한 형사보상금 지급 △피학살자 호적부 정리 △유족에 대한 감시 중단 등 8개의 요구를 담은 호소 및 진정을 냈다.
그러나 다음해인 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진상규명 열기는 철저히 억눌렸다. 군사정권은 유족회를 용공단체로 몰아 간부들을 군사법정에 세웠다. 그리고 사형·무기징역 등 중형을 언도했다. 유족들이 애써 수집한 각종 조사자료도 모두 압수·폐기했다. 한홍구 교수(성공회대·한국현대사)는 “사실상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군사정권이 조직적으로 진상규명 활동을 탄압했다”고 당시 상황을 평가했다.
이들이 기나긴 침묵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까지는 그로부터 무려 30여년이 걸렸다. 90년대 초반, 특히 문민정부 등장과 함께 거창학살 유족회, 제주 4·3 유족회 등 몇몇 유족단체들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96년 거창사건특별법, 2000년 제주 4·3사건특별법 등 모두 2건의 법안이 제정됐다. 현재 이 법에 따라 명예회복에 관한 실무위원회가 총리실 산하에 설치돼 활동중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활동은 명백한 한계를 누적시켰다. 법안의 실효성 문제다. 이들 2개 법안은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권이 전혀 없다. 때문에 50년 이상의 세월을 거슬러 학살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법안은 개별 유족회의 각개약진에 따른 결과물로 한국전쟁 전후로 자행된 수많은 민간인 학살에 대한 광범한 진상규명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지금까지 각 지역구 의원들을 통해 입법 청원돼 국회에 계류중인 개별 학살 관련 법안만도 함평, 여순사건, 문경, 고양 금정굴, 강화, 나주 동창 등 모두 7건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 이들 개별 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해당 지역별로 경쟁적인 각개약진을 시도하면서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이 하나로 결집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쏟아져나오는 유골을 그냥 덮다?
이들 법안이 모두 통과된다 해도 여전히 수많은 학살사건들이 미완의 과제로 남는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와 행자부에 접수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요구 청원만도 모두 138건(국방부 73건 + 행자부 65건)에 이른다. 결국 현재와 같은 개별입법 방식은 유사입법이 거듭돼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 유족회의 목소리가 작거나 유족회 활동이 없는 지역에서 발생한 학살사건은 진상규명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몇몇 유족 및 시민단체가 유골발굴 등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쏟아져나오는 유골에 대한 처리문제와 장비, 인력, 비용 부족, 지역 우익단체의 반발 등으로 유골을 다시 덮는 사례가 지금도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양 금정굴은 그 대표적 사례다. 금정굴의 경우 유족과 민간단체가 1350만원의 기금을 모아 95년부터 유해발굴을 시작해 모두 1500여점의 유골을 발굴했다. 그러나 급격히 늘어나는 발굴 비용, 고양태극단 등 지역 우익단체의 반대에 부닥쳐 더이상 발굴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범국민위 한성훈씨는 “현재 경남 산청군 외공리, 경남 김해 신어산 골짜기, 대전시 산내동 낭월동 일대, 대구시 가창굴 골짜기 등 곳곳에서 피학살자의 유골이 계속 쏟아져나오지만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접근에는 한계가 있어 그냥 덮고 있는 실정”이라며 “더이상 억울한 주검을 그냥 딛고 살 수는 없는 만큼 이제 통합입법을 통해 국가차원의 발굴 및 진상규명, 위령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여년간 각개약진했던 각 유족회나 단체, 그리고 해당 지역 의원들이 그동안 활동의 한계를 인정하고 최근 통합입법에 나서고 있는 것은 그나마 희망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지난 6월2일 최초로 통합법안을 낸 배기운 의원쪽도 “개별 의원들이 지역 현안을 담아 법안을 제출했지만 별 효과가 없자 공동발의에 나서게 됐다”면서 “통합입법을 통해 실질적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통합입법안의 성공을 예견하기는 이르다. 먼저 정부쪽 태도가 문제다. 정부는 예산소요 및 우익단체의 반발 등을 이유로 통합입법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의원들의 소극적·보수적인 태도도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정치권에서 최근 통합입법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아직 법안에 찬성하는 의원은 소수다. 그나마 대부분 자기 지역구에서 학살사건이 발생했던 의원들에 그치고 있다. 김원웅 의원은 “올 정기국회에서 통합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50년 전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동료의원을 설득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통합입법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도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다. 배기운 의원과 김원웅 의원이 마련한 법안의 차이가 상징하듯 현재 진상규명 위원회 위상과 성격, 조사대상 학살사건의 범위 등 모든 것이 논쟁의 대상이다. 물론 김원웅 의원은 ‘원칙론’을 강조했고, 배 의원은 “책임자 처벌, 보상 등을 정색하고 요구하면 현실에서 보수세력의 반발로 법제화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며 ‘현실론’을 담고 있다. 그런 만큼 양쪽 모두 절충이 가능하다는 태도다. 더 큰 문제는 범국민위나 유족회, 그리고 정부가 법안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받아들일 것이냐는 점이다. 유족회 사이에는 “결국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의 핵심 열쇠”라며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좀더 철저한 내용의 통합입법 추진”을 요구하는 쪽이 있다. 이들의 경우 배상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쪽이다. 그러나 정부나 보수적인 의원들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쪽이다. 반면 “50년을 기다렸는데, 더 기다릴 수는 없다”며 “나중에 수정·보완하더라도 일단 통합입법을 제정하자”는 견해도 적지 않다.
정부·정치권 소극적 자세가 걸림돌
범국민위와 유족회 등은 통합입법 쟁취를 위해 6월부터 다양한 압박전술을 진행할 계획이다. 일단 김원웅 의원과 오는 6월16일께 통합입법안에 대한 조율을 끝낼 예정이다. 오는 6월27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민간인 학살 실태조사 현황보고대회’를 연다. 현재까지 각 지역 유족회와 학계, 몇몇 자치단체 차원에서 진행된 진상조사 상황을 공개함으로써 학살실태와 억울한 주검을 방치하고 있는 반인륜적 현실을 고발하고, 통합입법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켜 보려는 것이다. 범국민위는 특히 오는 7월부터는 정기국회 때 통합입법 쟁취를 목표로 국회 앞 천막농성 등 다양한 형태의 투쟁을 벌여나갈 방침이다.
지난 50여년간 “빨갱이 가족”이라는 천형을 뒤집어쓴 채 통한의 세월을 살아온 유족의 설움과 구천을 떠도는 100만여명의 원혼을 달랠 길이 과연 열릴 것인가. 이제 우리는 그 출발선에 섰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지속된 인권법 제정 논란에서 보여지듯 통합입법 또한 얼마나 긴 세월 동안 논쟁을 거듭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모두 1500여점의 유골이 발굴된 금정굴. 그러나 발굴 비용, 지역 우익단체 반대 등의 문제 때문에 더이상 발굴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이혜정 기자)
이 법안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15일부터 6·25전쟁이 종료된 53년 7월27일까지 군인·경찰·국제연합군 기타 대통령이 정하는 자의 작전 수행과정에서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실 소속의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두고 180일 안에 피해신고를 받아 3년 이내에 관련자료 수집 및 분석을 완료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희생자 위로를 위한 위령탑 건립 및 소공원 조성 등 위령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고, 계속 치료가 필요한 피해자에게 생활지원금도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제출된 법안은 적잖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작업은 ‘제주 4·3사건’, ‘거창학살사건’ 등 개별 사건 단위로 지역민원 해결 차원에서 추진됐다. 그러나 이 법은 사실상 국가가 나서 한국전을 전후해 국가권력 및 미군에 의해 자행된 모든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지원 및 위령사업을 진행하도록 규정한 첫 법안이다. 그동안 자기 지역구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외치며 각개약진했던 17명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통합입법 제정을 요구한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진/ 지난 5월22일 열린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통합특별법 공청회’. 김원웅 한나라당 의원은 조만간 국회에 별도의 통합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박승화 기자)

사진/ 금정굴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인시위. 정치권을 중심으로 통합특별법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