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대연합은 국민의 희망 메시지”


‘희망과 대안’ 결성을 주도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안 될 것이라는 체념은 덜 다급한 사람의 사치”

796
등록 : 2010-01-28 11:40 수정 : 2010-01-28 18:03

크게 작게

2010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6월 지방선거에서의 정치 연합을 향한 야 5당과 시민사회의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토론과 논의가 구체화될수록 각 정당의 입장 차이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1월19일 ‘희망과 대안’ 등이 주최한 ‘2010 연합정치 토론회’에 참석한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민주대연합’ 방식의 연합론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정치 연합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를 향해서도 “여기에 참여한 시민사회 원로들의 면면을 보면 과거 민주당 선거에 참여했던 분들”이라고 비판했다. 진보신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노동시장 유연화 반대 등 9대 정치 강령에 합의하는 정책 연합을 주장하고 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희망과 대안’ 결성을 주도하는 등 야 5당의 정치 연합을 강조해온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1월20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신당이 한-미 FTA에 관한 원칙적 반대를 약속해야 한다는 태도를 끝까지 고집한다면 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본격적 협상이 시작되기 전 각 당이 자기 포지션을 내놓는 단계”이기 때문에 “(선거 연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맞지만, 안 될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희망과 대안’은 2009년 10월 백 명예교수가 김상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과 함께 시민운동의 정치 참여를 위해 만든 단체다.

-이명박 정권을 설명할 때 ‘도적정치’(kleptocracy)라는 개념을 쓴 적이 있다. 도적정치 비유는 아직 유효한가.

=이명박 정권 자체를 도적정치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면서 10년 전이 아니라 1987년 이전, 어떤 면에서는 자유당 시절의 난장판으로 되돌아간 면도 있다. 자유당 정권을 설명할 때 정치학자들이 독재정치보다는 아프리카 일부 신생국에서 횡행하는 ‘도적정치’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명박 정권은 그런 면모도 뒤섞여 있다는 뜻이었다.


-어떤 부분이 ‘자유당 시절의 난장판’을 연상케 하나.

=한국 사회가 그동안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이룬 성과는 적지 않다. 정부가 아무리 퇴행적으로 나와도 그런 성과를 완전히 허물지 못하니, 독재정권 때보다는 나은 면이 많다. 그러나 제대로 된 독재도 아니면서 몰염치한 사익 추구 측면에서는 오히려 군인들보다 더 심한, 그야말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시민사회와 야권은 연합 및 연대를 통해 무엇을 말할 수 있나.

=우리 사회의 위기를 국민도 느끼고 있다. 다만 ‘대안은 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시점에서 선거 연합은 우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정권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가진 세력이 힘을 모아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정치연합이 성사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승리이다. 각 당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효과적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내부 요소를 그만큼 줄이는 데 성공한다는 뜻이 되니까.

-시민은 이명박 정부와 다른, 구체적 대안을 요구할 수도 있는데.

=여러 내부적 의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야권이 연합을 이뤄낸다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거라고 본다. 다들 ‘이명박 정권이 싫지만 야권이 저래서 뭐가 되겠느냐’ 하고 있을 때, 우선 연합을 이루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다.

-연합만 성사된다면 승리도 따라올 것이라고 보나.

=지방선거 승리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에 달렸다. 가령 2006년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이 전국을 휩쓸었던 것처럼 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 그러나 몇몇 주요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이기고 전체적 의석수가 눈에 띄게 늘어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민이 이명박 정권의 일방 독주를 묵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 승리가 되는 것이다.

-선거 연합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아직 높지 않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시민의 성찰과 자기쇄신’을 강조한 이유도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지방선거 전까지 시민의 성찰과 자기쇄신이 가능하리라 보나.

=그 이야기는 우리가 정치권만 탓할 게 아니라 국민들 자신의 책임과 타성도 되새겨보자는 취지였다. 가령 정치권에 대해 필요 이상의 불신을 갖고서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으로 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권의 일방독주를 방치하는 자세도 반성해야 한다. 사실 우리 국민의 시민적 활력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울 게 없다. 흔히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했다고 하는데, 4ㆍ19를 계기로 국민이 이를 가능케 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에도 시민이 촛불을 들지 않았다면 ‘강부자·고소영 정권’은 어디까지 갔을지 모른다. 잠재돼 있는 동력은 2010년 선거의 해를 맞아 연합정치의 희망을 보여주는 순간 엄청나게 활성화 될 것이다.

-선거 연합 논의 과정에서 지방 연립정부에 관한 제안도 있었다.

=2013년 어떤 정권이 등장하든 연립정치 없이 국정을 제대로 수습할 수 없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실감했지만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의 벽이 워낙 두터운데다 그때쯤 우리 사회가 더 심하게 망가져 있을 가능성도 크다. 의견과 정책이 조금씩 다른 정당과 세력이 연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2010년 당장의 선거전략뿐 아니라 2013년 이후를 대비한 훈련으로서도 지방 연립정부 제안은 괜찮은 생각이라 본다.

-진보신당 등에서는 냉담한 반응인데.

=구체적 논의를 해봐야 한다. 이 문제 역시 여러 당이, 필요하다면 시민사회까지 배석한 가운데 솔직히 토론해서 어느 정도 합의할 수 있다고 본다. 가령 노동이나 복지, 환경에 관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가운데 일부를 별도로 구성되는 위원회에 덜어주는 방식도 가능하다.

-위원회의 구성과 위상이 관건일 텐데.

=공동정부 구성 약속의 일환으로 힘있는 위원회를 만들고, 단체장 마음대로 위원회를 없애거나 무력화할 수 없는 협약을 미리 만드는 등 길은 있을 것이다.

-노동과 복지에 관한 각 정당의 입장은 다르다.

=차이를 냉철하게 인정하는 자세는 필요하지만 ‘안 될 것’이라고 너무 쉽게 체념하는 것도 아직 덜 다급한 사람의 사치다. 이게 안 됐을 때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이며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런 것을 뼈저리게 생각해봤다면 된다는 말도 쉽게 나올 수 없지만 안 될 것이라는 말을 그리 쉽게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한다. 그런 겸허하면서도 치열한 자세로 접근하면 국민의 호응도 점점 커지고 명분 없이 이탈하는 세력에 대한 견제력도 강해질 것이다.

-명분을 만들어 이탈할 수도 있다.

=공동의 가치가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하다. ‘희망과 대안’에서도 진보·개혁적인 정책 연합을 3대 원칙의 하나로 내세웠다. 다만 이는 현실적 수준에서 책정해야지 그 이상을 고집한다면 안 하기 위한 명분을 찾는 꼴이 되기 쉽다. 지금 야 5당과 시민사회 일부가 정치 연합을 논의하고 있는데, 원내 정당만 해도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두 당이 더 있지 않나. 그런데도 일단 5당만으로 출발했다는 건 이미 일정한 가치의 공유를 전제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출발점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4대강 사업과 미디어 장악에 대한 대응, 서민경제 대해 특권층 위주의 정책과는 다른 접근 등 쉽게 합의가 가능한 정책을 중심으로 정당끼리 모여서 좀더 가다듬는다면 정책 연합이 안 돼서 깬다는 이야기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핵심은 진보신당과 다른 정당이 한-미 FTA 철회와 노동유연화 정책 폐기 부분에서 합의를 해낼 수 있느냐다.

=진보신당이 한-미 FTA에 관한 원칙적 반대를 합의해야 한다고 끝까지 고집한다면 연대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각 당이 각기 ‘값을 부르는’ 단계라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한-미 FTA 문제도 전면적 반대에 합의하지 않더라도 강행 처리 반대 등은 쉽게 합의가 가능하리라 본다. 노동유연화 역시 ‘복지의 뒷받침 없는 유연화는 반대한다’는 수준이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이 잘못됐다는 건 민주당 포함해서 모두가 동의하고 있으니까.

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