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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치로 돌아간 ‘시민’

예정된 친노신당 합류 일정 앞당겨… 내년 서울시장 출마설 등 관측 분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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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9 11:23 수정 : 2009-10-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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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돌아왔다. ‘돌아온 유시민’의 선택은 결국 신당이었다. 유 전 장관은 10월19일 문화방송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친노신당(가칭 국민참여정당)에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 전 장관은 이날 “지금까지 같이 안 해왔지만 신당을 추진하는 분들이 요청하는데, 입당할 생각을 하고 있다”며 “언제 입당하면 좋을지는 그분들(신당 지도부)이 판단해서 이야기해주면 입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막 피우다 석 달 만에 속내 드러내

유시민 전 장관 등 친노 인사들이 주축이 된 ‘시민주권’ 모임이 10월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정식 출범했다. 사진 연합 성연재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좋은 정당’ 건설은 유시민 전 장관이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목표였다. 이를테면 2008년 초 총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면서도 그는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달리 사랑을 줄 정당을 찾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을 위해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신당 추진 움직임이 언론에 처음 소개됐던 지난 7월 초까지만 해도 유 전 장관 쪽은 신당과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신당 창당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추진 방식이나 시점에 대한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유 전 장관의 측근은 “신당을 만들겠다는 분들과 논의한 적은 있지만, 현재 추진되는 신당 창당 작업은 유 전 장관과 관계없이 이뤄지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유 전 장관이 2010년 초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사업과 집필 작업이 예정돼 있어 정치권에 복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유 전 장관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9월19일이었다. 이날 자신의 팬카페인 ‘시민광장’ 워크숍에 참석한 유 전 장관은 신당에 대한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언젠가는 (국민참여정당과) 같이할 것”이라며 “제 마음은 거기 가 있지만 몸이 거기 가기가 굉장히 어려운 여건이라, 크게 무리 없이 선택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리자, 그런 뜻에서 그냥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뒤 문화방송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유 전 장관의 신당 합류 선언이 나왔다. 그동안 유 전 장관이 신당에 대해 취해온 태도를 되짚어보면 합류 일정이 조금 앞당겨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유 전 장관의 측근은 “보기에 따라서는 빨라 보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개인의 정치 행보에 연연하기보다 신당의 필요와 요구에 더 크게 좌우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신당의 ‘필요와 요구’는 2010년 지방선거에 맞닿아 있다. 신당은 창당과 동시에 전국 단위 선거, 즉 지방선거를 치러내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형편없는 결과를 얻으면 신생 정당으로서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의 존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바람을 일으키려면 유 전 장관처럼 스타성을 지닌 정치인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신당 사정에 밝은 정치권 인사는 “신당이 창당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준비하면서 유 전 장관처럼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스타’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유 전 장관도 자신의 핵심 지지세력인 이들이 지방선거에서 추풍낙엽처럼 낙선하는 결과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당에 참여한 핵심 인사의 상당수(혹은 대다수)는 과거 유 전 장관과 개혁당 활동을 함께했던 이들이다.

한명숙 전 총리와 대결할까

관건은 유 전 장관의 기여 방식이다. 유 전 장관이 신당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2010년 지방선거에 직접 후보로 나서는 것이다. 신당 안팎에서 유 전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친노 그룹 핵심 인사는 “유 전 장관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가장 주목을 끌 수 있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바람을 일으켜준다면 다른 지역 선거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당 지도부의 계산”이라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다면 민주당으로서는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그동안 서울시장 후보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카드를 검토해왔다. 그런데 유 전 장관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적 치킨게임’을 시작한다면 한 전 총리 쪽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다. 친노 핵심 인사는 “한 전 총리의 스타일상 참여정부에서 함께 몸담았던 유 전 장관과의 경쟁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경쟁 자체를 피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유 전 장관은 아직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다. 10월1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그는 “전에 정치를 시작한 거나 국회의원 출마한 거 이런 것들이 다 제가 원하고 계획해서 된 것은 아니다”라며 “서울시장도 그렇게 될 수는 있겠지만 현재로서 거기에 출마할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출마할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에 무게를 둘 수도 있고, 반대로 ‘현재로서’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신당 쪽에서도 아직 유 전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 여부가 확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상황에 따라 경기지사 선거에 나서거나 아예 직접 출마 대신 선대위원장 등의 형식으로 선거 전체를 총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만약 서울시장에 출마하게 되더라도 한 전 총리와 충돌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유 전 장관 쪽의 말이다. 유 전 장관의 측근은 “내년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항해 모든 진보개혁 진영이 힘을 모아 치러야 하기에 선거연합은 필연적”이라며 “한 전 총리와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부딪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연합 내세우며 영향력 확대 전략

문제는 선거연합이 이뤄진다 해도 그 결과가 신당과 민주당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는 데 있다. ‘정치적 치킨게임’이란 어느 한쪽이 양보하거나 양쪽 모두 파국을 맞아야 끝나는 게임이다. 참고로 ‘정치적 치킨게임’은 2008년 12월11일 유 전 장관이 썼던 표현이다.

그는 당시 경북대 강연에서 자신이 구상하는 신당의 미래와 관련해 “(신당 창당) 시도가 어느 정도라도 성공한다면 일종의 ‘정치적 치킨게임’을 할 수는 있다”며 “민주당·진보신당·민주노동당,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회자유주의 정당의 각개약진이 명백하게 자유주의·진보 세력의 선거 참패를 초래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면, 그때는 보수 자유주의 정당과 사회자유주의 정당, 진보 정당들의 선거연합이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이 말한 보수 자유주의 정당이란 민주당을, 사회자유주의 정당이란 유 전 장관이 말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좋은 정당, 곧 신당을 가리킨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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