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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거의 정신과적 질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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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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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두언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저자·한나라당 서대문을 지구당위원장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를 쓴 동기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답답한 점이 참 많았다. 술집에서는 “진짜 웃겨”, “말도 안 돼”라고 분개하지만 직장에서는 그러려니 묻혀 산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공직사회의 모순된 현실을 공개적인 논의의 장으로 끄집어내려 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바뀔 테니까.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책방향을 바로잡지 않고 문서서식에만 집착한다고 썼는데,

=그것은 정신과 의사에게 물어야 한다. 일종의 편집증, 강박증이다. 거의 정신과적 질환이다. 자기가 볼 때 말이 좀 안 된다 싶으면 그 다음은 생각도 않는다. 말단 때 본 상관이나 선임자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아무 생각없이 그저 따라간다.

-그런 사람들이 총리로 왔을 때, 공무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나.


=우리는 늘 세상이 다 그런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저렇게 재주 좋은 사람이니 총리가 됐나 보다’라고.

-최고권력자에게 굴종하는 총리들을 묘사했는데, 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나.

=왕정시대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을 왕이라고 본다. 자신을 판서로 발탁해준 임금님에 대해 너무너무 주체할 수 없는 충성심, 고마움이 솟아나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교육부 장관이 됐다면 교육정책을 어떻게 할까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장관이 됐다는 것 자체로 이미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처신한다. 이들은 자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가.

=대부분이 그렇다. 그러니까 대다수 총리들이 그렇게 별볼일 없이 총리하다가 나오는 것 아니냐.

-책상배치나 문안인사말고 다른 형태로 충성심을 표출하는 경우는.

=꼭 그런 행태만이 문제가 아니다. 자기 할말, 할 일 못하는 게 필요 이상의 충성이다. 총리 정도 되면 자기의 스텐스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알아서 긴다. 예를 들어 각료 임명제청권이 있으면 개각 때 이런 사람 해달라고 해야 한다. 그저 청와대서 만들어 보여주면 그냥 침묵한다. 그것도 과잉충성이다.

-수장이 과잉충성을 할 경우 업무에 어떤 영향이 오나.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아예 제 기능을 못한다. 특히 총리실은 심하다. 권력에 아부하는 총리가 오면 부처에서는 자료 협조를 요청해도 자료를 안 준다. 말도 안 듣는다. 총리실에 오지도 않고 곧바로 청와대로 간다. 누구 영양가 없는 총리한테 일일이 보고하겠냐. 법에 규정된 기능을 못하면 없애지 뭐하러 사람들 월급주면서 예산만 낭비하냐.

-총리실 정서는.

=직원들이 패배감과 무력감에 젖어 있다.

-황인성씨를 최악의 총리로 설정한 것 같은데.

=진짜 말도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장관, 지사, 회장 다 했잖아. 참 기가 막힌다.

-왜 이렇게 수준 이하의 사람들이 각료나 총리에 임명된다고 보는지.

=정실인사, 연줄인사가 뭐냐. 최고권력자와 인연을 활용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자. 한자리 하겠다면…. 봉사활동, 박사논문 어마어마하게 쓴다고 할 수 있겠냐. 평소 누구 찾아가서 선을 대는 것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 다 선대서 되는 것이다. 그런 것에 탁월한 재주있는 분이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닌데.

=충성이 뭐냐. 자기 할일, 임무 열심히 잘하는 것이다. 그것말고 뭐가 있겠냐. 이런 충성은 당연하다. 그런데 과잉충성이나 빗나간 충성이 문제다.

-총리 부인들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고 썼는데.

=꼴불견이 간혹 있다. 형태만 본다면 과일이 썩어나갈지언정 직원들에게는 안 준다든가, 인사에 온통 개입해온 직원들이 총리 안주인 눈치만 슬슬 보게 만든다든가…. 뭐 이런 것들이다.

-어떻게 이런 모순을 해결할 수 있겠나.

=많은 것을 오픈하면 될 것 같다. 하고 있는 일이 유리병 속의 내용물 보이듯 보인다면 수준 낮은 사람들이 장수할 수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그런 사람 발탁 못할 것 아니냐. 국민들이 실상을 정확히 보고 평가할 테니.

-현 정권 들어 자민련 인사들이 총리나 장관직을 거저먹는 경우가 많은데.

=공무원들은 냉소주의에 빠진다. 장관을 지나가는 과객이라 본다. 얼마나 영이 서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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