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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MB ‘떡볶이’ 행보에 배고픈 민주당

“민생쇼” 비판하면서도 지지율 재역전에 대응 전략 고심… 일부선 ‘의원직 사퇴’ 카드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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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30 18:18 수정 : 2009-07-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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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서민’을 강조하고 있다. 하반기 경제 운용의 초점을 서민 생활 안정에 맞추겠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주장이다. 민주당 등 여당에서는 청와대의 친서민 행보에 진정성이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6월25일 서울 이문동 재래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시장을 찾았다. 넥타이와 양복 대신 티셔츠와 하늘색 점퍼 차림이었다. 2009년 6월25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재래시장을 찾은 그는 빵집과 과일가게를 돌고 떡볶이집에서 어묵을 덥석 베어물었다.

이 대통령의 ‘떡볶이 정치’는 최근 청와대가 강조하는 ‘친서민’ 행보의 일환이다. 이 대통령은 6월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와 23일 국무회의에서 잇달아 이른바 ‘중도강화론’을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중도강화론이란 “사회·경제 분야에서 힘없는 서민에게 좀더 다가가겠다는 뜻”이라는 것이 청와대 설명이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연구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중도층의 이탈에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며 “친서민 행보 등 국정운영의 다변화를 통해 이탈하는 중도가 적어도 진보 친화적으로 돌아서는 것만큼은 막아보자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중도강화론과 친서민 카드 맞물려

한나라당도 이 대통령 행보를 적극적으로 거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찾은 6월25일 한나라당의 강명순 의원과 고승덕 의원 등 초선 의원 71명은 ‘빈곤 없는 나라를 만드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특위는 2011년까지 소액 서민금융과 청년실업, 빈곤 아동 문제에 대한 대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같은 날 오후, 민주당 의원 18명은 국회 본회의장 입구인 로텐더홀 앞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었다. 당내 개혁그룹 ‘다시 민주주의’와 ‘국민과 함께하는 국회의원 모임’(이하 국민모임) 소속 의원이 중심이었다. 이들은 농성에 돌입하며 “한나라당 단독 국회가 열린다면 그것은 신독재시대의 개막을 뜻하는 것”이라며 △한나라당 단독 국회 즉각 철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 사과 △정부·여당의 MB 악법 강행 처리 기도 즉각 중단 등을 요구했다. 장세환 의원은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최후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가 당연히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 챙기기에 나선 정부·여당과, 대여 강경 투쟁에 돌입한 야당의 극명한 대조다. 야당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돗자리를 깔고 대여 규탄대회를 할 때,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중도’와 ‘서민’이라는 키워드로 민심을 파고드는 여론전을 택했다.


여권과 야당의 행보가 ‘민생’과 ‘투쟁’으로 엇갈리기 시작한 시점의 정당지지도 여론조사는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보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6월22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은 민주당에 뒤졌던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렸다. 정당지지도에서 한나라당은 23.3%를 기록했고, 민주당은 20.%에 머물었다. 5월 조사에 비해 한나라당은 1.8%포인트 올랐고, 민주당은 0.1%포인트 하락했다.

6월24일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의 휴대전화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민주당은 18.1%를 기록해 한나라당(22.8%)보다 낮았다. 한나라당은 전주 대비 1.1%포인트가 내려갔고, 민주당은 9.8%포인트 떨어졌다. 5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짧은 기간에 정당 지지율을 끌어올린 민주당으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다.

한나라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민생을 다시 강조하는 동시에, 재빨리 여론조사 결과를 민주당의 강경 투쟁과 엮었다. 진수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은 6월26일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국회를 막는 반민주주의적 행태가 여론조사 지지율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며 “민주당의 지지율이 다시 빠지는 것은 국회 본회의장을 봉쇄하는 행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중·동의 ‘띄워주기’로 어려운 싸움

물론 진 소장의 발언은 편의적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 역시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한나라당의 단독 국회에 반대하는 의견이 63%로 다수를 차지했다. 찬성한다는 의견은 37%에 머물었다. 국회 파행의 원인에 대해서도 ‘야당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한나라당 책임이 크다’는 의견이 40.9%로, ‘수용하기 어려운 등원 조건을 내건 야당 책임’(24.5%)이라는 의견보다 많았다.

하지만 여권이 한편으로는 중도와 서민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 언론 관련법 처리 문제를 놓고 야당 압박을 계속한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어려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조·중·동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이 정부·여당의 ‘변신’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이 현실이다. 일례로 6월26일치 <조선일보>는 아예 시장에서 어묵을 먹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을 1면으로 뽑았다. 이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친서민 정책이 과연 서민의 삶을 실제로 나아지게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반론이 제기된다. 정부가 내놓은 친서민 정책 가운데 서민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일자리 확충 정책만 보더라도 정부는 취업이 어려운 주부와 청년, 고령자를 위해 단기간 근로를 활성화 하기로 했다. 고용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처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의 행보를 ‘민생쇼’라고 비판하는 민주당의 목소리가 자리잡기는 만만치 않았다.

민주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정부·여당이 서민 이슈를 선점한 반면, 민주당은 강경 투쟁 일변도로 나간다면 자칫 정부·여당 의도대로 ‘반대만 일삼는 야당’ 이미지에 갇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언론 관련법 등에 대해 정부·여당의 요구를 들어주기란 더더욱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언론 관련법 저지에 주력

오히려 민주당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언론 관련법의 강행 처리 방침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의원직 전원 사퇴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종걸·장세환·최문순 의원 등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종걸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반사효과로 얻은 민주당 지지율은 100%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기에 일정 정도 조정이 예상됐다”며 “정부·여당이 말하는 친서민 정책의 허구성을 명백히 밝히는 동시에 언론 악법 저지 등 야당으로서의 선명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회의원 생활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재선 의원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언론 관련법 처리를 강행할 경우 이는 야당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6월 국회 등원 조건으로 내걸었던 ‘5대 선결조건’에 대해 정부·여당이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는 사실도 민주당으로서는 부담이다. 5대 선결조건이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 사과 △책임자 처벌 △특별검사제 도입 △국정조사 △검찰개혁특위 설치 등이다.

언론 관련법 등 민주당이 막아야 할 과제는 여전한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친서민을 표방하고 나서자, 민주당은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정부·여당의 친서민 행보가 진정성 없는 ‘정치쇼’에 불과하다며 공세를 펼쳤다. 정 대표는 6월2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사과와 국정쇄신, 국정철학·기조 변화 대신 정치쇼에 몰두하면서 중도와 서민이라는 말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실제 친서민 정책이 연이어 제시된다면 어떻게 대응해나갈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아직 없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MB 악법은 악법대로 막아야 하고, 정부·여당의 친서민 행보는 그 나름대로 대응을 펼쳐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서민’을 거론하지 않았을 때가 차라리 야당 하기가 편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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