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서민’을 강조하고 있다. 하반기 경제 운용의 초점을 서민 생활 안정에 맞추겠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주장이다. 민주당 등 여당에서는 청와대의 친서민 행보에 진정성이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6월25일 서울 이문동 재래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여권과 야당의 행보가 ‘민생’과 ‘투쟁’으로 엇갈리기 시작한 시점의 정당지지도 여론조사는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보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6월22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은 민주당에 뒤졌던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렸다. 정당지지도에서 한나라당은 23.3%를 기록했고, 민주당은 20.%에 머물었다. 5월 조사에 비해 한나라당은 1.8%포인트 올랐고, 민주당은 0.1%포인트 하락했다. 6월24일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의 휴대전화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민주당은 18.1%를 기록해 한나라당(22.8%)보다 낮았다. 한나라당은 전주 대비 1.1%포인트가 내려갔고, 민주당은 9.8%포인트 떨어졌다. 5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짧은 기간에 정당 지지율을 끌어올린 민주당으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다. 한나라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민생을 다시 강조하는 동시에, 재빨리 여론조사 결과를 민주당의 강경 투쟁과 엮었다. 진수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은 6월26일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국회를 막는 반민주주의적 행태가 여론조사 지지율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며 “민주당의 지지율이 다시 빠지는 것은 국회 본회의장을 봉쇄하는 행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중·동의 ‘띄워주기’로 어려운 싸움 물론 진 소장의 발언은 편의적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 역시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한나라당의 단독 국회에 반대하는 의견이 63%로 다수를 차지했다. 찬성한다는 의견은 37%에 머물었다. 국회 파행의 원인에 대해서도 ‘야당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한나라당 책임이 크다’는 의견이 40.9%로, ‘수용하기 어려운 등원 조건을 내건 야당 책임’(24.5%)이라는 의견보다 많았다. 하지만 여권이 한편으로는 중도와 서민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 언론 관련법 처리 문제를 놓고 야당 압박을 계속한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어려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조·중·동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이 정부·여당의 ‘변신’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이 현실이다. 일례로 6월26일치 <조선일보>는 아예 시장에서 어묵을 먹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을 1면으로 뽑았다. 이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친서민 정책이 과연 서민의 삶을 실제로 나아지게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반론이 제기된다. 정부가 내놓은 친서민 정책 가운데 서민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일자리 확충 정책만 보더라도 정부는 취업이 어려운 주부와 청년, 고령자를 위해 단기간 근로를 활성화 하기로 했다. 고용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처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의 행보를 ‘민생쇼’라고 비판하는 민주당의 목소리가 자리잡기는 만만치 않았다. 민주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정부·여당이 서민 이슈를 선점한 반면, 민주당은 강경 투쟁 일변도로 나간다면 자칫 정부·여당 의도대로 ‘반대만 일삼는 야당’ 이미지에 갇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언론 관련법 등에 대해 정부·여당의 요구를 들어주기란 더더욱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언론 관련법 저지에 주력 오히려 민주당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언론 관련법의 강행 처리 방침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의원직 전원 사퇴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종걸·장세환·최문순 의원 등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종걸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반사효과로 얻은 민주당 지지율은 100%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기에 일정 정도 조정이 예상됐다”며 “정부·여당이 말하는 친서민 정책의 허구성을 명백히 밝히는 동시에 언론 악법 저지 등 야당으로서의 선명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회의원 생활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재선 의원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언론 관련법 처리를 강행할 경우 이는 야당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6월 국회 등원 조건으로 내걸었던 ‘5대 선결조건’에 대해 정부·여당이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는 사실도 민주당으로서는 부담이다. 5대 선결조건이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 사과 △책임자 처벌 △특별검사제 도입 △국정조사 △검찰개혁특위 설치 등이다. 언론 관련법 등 민주당이 막아야 할 과제는 여전한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친서민을 표방하고 나서자, 민주당은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정부·여당의 친서민 행보가 진정성 없는 ‘정치쇼’에 불과하다며 공세를 펼쳤다. 정 대표는 6월2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사과와 국정쇄신, 국정철학·기조 변화 대신 정치쇼에 몰두하면서 중도와 서민이라는 말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실제 친서민 정책이 연이어 제시된다면 어떻게 대응해나갈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아직 없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MB 악법은 악법대로 막아야 하고, 정부·여당의 친서민 행보는 그 나름대로 대응을 펼쳐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서민’을 거론하지 않았을 때가 차라리 야당 하기가 편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