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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도전인터뷰/ “창조적 정치의 밀알이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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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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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전진 포럼’ 결성 이끌며 제2의 투신 나선 함세웅 신부

서울 상도동성당 주임신부 함세웅. 그는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는 동지 관계였다. 지난 97년에는 수평적 정권교체를 위해 나름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현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런 그가 요즘 국민적 환멸과 분노의 대상인 현실정치 한복판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오는 5월17일 공식 출범할 ‘화해 전진 포럼’의 사실상 대표역할을 자청하며, 여야 개혁성향 중진과 과거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재야인사를 규합하고 있는 것이다.

5월4일 오후 상도동 성당 사제관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국회의원들이 너무 무력하다. (포럼 결성 과정에서) 참가자들에게 먼저 정치적 반성을 요구했다. 그들은 ‘우리가 뭐 한 게 있어야 반성을 할 것 아니냐. 국회의원은 인격이 없다’고 말하더라.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정치를 격려해 희망을 만드는 노력, 정치를 구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요즘 행동을 “70, 80년대 민주화를 위해 뛰었던 그 마음과 내용으로 조직폭력배 같은 우리 정치구조 속에 희망의 싹을 틔우는 제2단계(민주화운동) 투신”이라고 밝혔다.

70, 80년대 민주화의 열정을 묶어

사진/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여야중진과 재야인사가 ‘화해 전진포럼’준비모임에 참석했다.(이용호 기자)


-지금 현실정치 한복판으로 나선 이유는 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 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정권이 바뀌어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과거에 좀 뛰었고. 그런데 기대가 자꾸 무너진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많은 분들이 동시에 우리를 재판했다. 후배 신부들도 비슷한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들은 “70년, 80년대 그렇게 뛰었으니 당신들도 도의적 책임이 있지 않냐. 정치가 이렇게 가게 놔두는 것은 시민으로, 사제로 직무유기가 아니냐”고 물었다. 이런 얘기를 듣고 많은 고민을 했다. 대답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힘도 없고…. 정말 안타까웠다. 그런 고민 속에서 나온 결정이다.

-포럼이 그 고민의 결과물인가.

=사실 이런 시대에 사제가 정치일선에 나선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데…. 하지만 후배 사제의 지적에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정치권에서 70, 80년대에 고생하며 뛴 분들을 한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게 넓은 의미에서 사목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고 최종길 교수에 관한 책 출판기념회에서 많은 여야 정치인을 만났다. 정치인들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모두들 “정치인 스스로는 부담도 된다”며 “바깥 어른들이 자리를 마련해 주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나는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신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인, 교수 몇몇에게 연락했다. 그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함께 고민을 나눴다고 공감대도 형성했다. 그 결실을 포럼으로 엮은 것이다.

-어떤 공감대인가.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셨다는 두분이 잇따라 대통령이 됐는데 모두 실패하고 있다. 이것이 두 대통령 개인의 실패를 넘어 동시대를 함께 뛰었던 우리 모두에 대한 질책과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분들의 자기비하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좌절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야겠다, 이런 자각운동이 내부에서 있었다.

-현재 포럼에 참여한 인사들의 처지와 정치적 목표가 모두 다른데.

=그래서 처음은 아주 초보적 내용을 설정했다. 한나라당·민주당·재야정치인 모두 부담없이 공감할 수 있는 기본 정치윤리부터 시작하자. 지역주의 타파와 민생현안에 대한 관심, 특히 50년 만에 다가온 민족화해에 대한 초당적 대응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모임을 놓고 야당분열책이다, 제3세력이 태동한다는 등 온갖 억측이 많다.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를 생산적이고 희망적으로 만들자, 영점에서부터 실천해보자는 게 우리 내부의 합의다. 포럼에 참여한 정치인들에게도 간곡히 주문했다. 70, 80년대에 고문당하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애쓰던 그때의 일치성·동료애·동질성, 그 순수한 첫 마음을 잃지 말자고. 대통령이 되는 데 목적을 두지 말라고 했다.

-너무 이상적이라서 실현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실현했다. (크게 웃음)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까.

-포럼이 ‘제3세력’으로 갈 것인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폭발력을 가지면 너무 일이 급변하니까, 그저 등산하는 마음으로 초보에서부터 은은하게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목적은 창조적 정치문화 실현이란 큰 그릇이다. 일단 외연을 넓히고, 공론화의 장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이것을 고민하고 있다.

-외연이 넓어진다면 제3세력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참여정치인은 탄압받을 수 있다. 그런 표현을 피해줬으면 한다.

-손학규 의원은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면서 “과거 민주화 경력에 따라붙었던 훈장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외친다.

=우리가 바로 그 문제를 반성했다. 포럼은 과거 70,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위해 뛴 사람에 국한하는 게 아니다. 희망의 정치를 일구려는 분들은 누구나 포용하겠다. 물론 (민주화에) 반대했던 이들까지 포함한다는 말은 아니다.

여야를 뛰어넘는 새로운 모색 절실

-지난 4월30일 준비모임에서 “87년의 실패와 좌절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심정으로 포럼을 결성한다”고 말했다. 이회창 총재나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상황을 불행으로 보는 것처럼 들리는데.

=(크게 웃으며) 솔직히 그것까지는 생각 안 했는데….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후퇴라고 생각한다. 그분(이 총재)의 인생 역정과 한나라당 정책, 대부분 (한나라당) 사람이 박정희 군사독재 세력의 연장선에 있다. 때문에 그것은 후퇴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의 후계자가 나와도 그것은 후퇴다. 우리는 지금 김대중 대통령의 한계를 봤다. 현재 민주당 운영방식을 봤을 때 김 대통령의 뜻에 의해 지명된 후계자도 실패다. 그 둘을 뛰어넘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

-김 대통령과는 정신적 동지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

-97년 대선 개표상황을 보며 “희망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가슴이 아프다. 심한 회의, 때때로 환멸이랄까 배신이랄까….

-동지였던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어떻게 평가하나.

=그분은 임기 초부터 경제적 논리에 너무 의존했다. 그것을 넘어서 인간적, 신앙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했는데…. 경제논리로만 접근했다. 그분이 함정에 빠진 이유다. 경제만 회복되면 모든 게 다 된다고 말했는데, 그런 게 아니거든.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하나.

=그 전에 가치가 먼저 설정됐어야 했다. 당시 모든 분들은 잘못된 기존의 정치세력 등을 한번 청산했으면 하는 염원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도 청산이 안 됐다. 지역주의 타파도 정공법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영남권에도 훌륭한 분들 많다. 20%는 70, 80년대 그 지역에서 정말 더 어렵게 뛰었거든. 이분들을 평가하면서 이분들과 손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영남권과 대화한다면서 기존세력에서 같이했던 분들과 손을 잡았다. 호남도 그렇다. 물론 핍박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군사정권 아래서 요직에 올라갔던 사람들은 오히려 같은 호남 사람을 짓밟았던, 오히려 권력인 영남세력보다 더 나쁜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요직에 앉혔다. 이것은 박해받았던 호남 사람에 대한 모욕이다.(함 신부는 이 대목에서 상당히 분노한 듯 목청을 높였다.) 박해받은 호남인들과 정말 어려울 때 영남에서 민주화를 위해 뛰었던 분들, 이 분들이 한짝이 돼서 정치를 이끌었어야 했다.

-소수정권 한계가 있지 않나.

=부분적으로 자민련의 도움을 받았으면, 도움받은 만큼의 영역은 배려할 수 있겠지. 그러나 완전히 주객이 전도됐다. 정말 어불성설이다.

-임기도 얼마 안 남은 지금 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뭐냐.

=지금…. (그는 한동안 아주 골똘히 생각했다.) 글쎄…. 솔직히 좀 늦은 것 같다. 혹시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기존의 잘못된 가치를 먼저 청산해야지. 이런 말도 하고 싶다. 70, 80년대를 살아오면서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기를 그렇게 염원했던 많은 이들의 애정이 살아나야 하는데, 그분들이 아파하고 마음도 떠났다. 왜 그런지 그것을 먼저 읽어야 한다. 진실한 접근이 미흡하고 너무 형식적이었다.

정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회창 총재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이 총재를 어떻게 보는가.

=평가를 안 하는 게 낫다. (허허허)

-포럼을 대권전략에 유리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신부님을 이용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 나는 그렇다. 솔직히 우리가 이용당해서 이 정치가 잘되면 얼마나 좋겠냐. 그런 것은 두렵지 않다. 두려워하지 말자고 그랬다. 그게 십자가의 원리 아니겠냐.

-일부에서 함 신부가 현실정치와 본격적으로 손잡는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생각은 없다. 이제 각자 자기 물에서 뛰어야지. 다만 정치를 고무해주는 것은 우리 의무다. 모두 정치를 욕하는데, 정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의 지금 행동은 과거에 뛰었던 그런 식으로…. 어떤 의미에서 제2단계의 (민주화운동) 투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현실정치에 대한 환멸과 과거 동지였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느끼는 배신감, 특히 청와대에서 만나 고언할 때 그 고언을 받아들이는 김 대통령의 태도에서 느낀 좌절감을 장시간 이야기했다. 그는 “노벨상을 받고도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면 뭘 하겠냐. 김 대통령이 사형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가졌던 그 마음으로 정책결정에 임하라”고 거듭 당부하면서 “어쨌든 나는 정치에 희망의 새싹을 틔우는 일에 나서겠다”고 말을 끝맺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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