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권주자들 개혁논쟁 불붙어… 김근태의 정체성이냐, 이인제의 효율성이냐
정체성이냐, 효율성이냐.
민주당 대선주자들 사이에 때아닌 개혁논쟁이 한창이다. 논쟁의 주역은 이인제 최고위원과 김근태 최고위원. 포문은 이인제 최고위원이 먼저 열었다. 김근태 최고위원이 ‘민주세력결집론’을 매개로 개혁의 정체성 확보를 주장하고 나서자, 이 최고위원이 “개혁은 상징성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다”며 공식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세력결집론 거론 ‘신민주연합’ 촉구
김 최고위원이 민주세력결집론을 본격 거론한 것은 3월 초였다. 김 최고위원은 3월6일 부산을 방문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군사독재와 함께 싸웠던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협력관계가 회복된다면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DJ와 YS가 다시 힘을 합치는 ‘신민주연합’이 이뤄지길 적극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후 김 최고위원은 기회 있을 때마다 “YS와 DJ는 이 땅에 민주화를 가져온 분들이다. 두분이 힘을 합쳐야 한다”, “분열적, 맹목적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세력이 형성돼야 한다”고 역설하며 DJ-YS 연대를 통한 범민주세력의 연대를 주창해왔다. 실제 김 최고위원은 이런 논리에 따라 올 1월1일 상도동으로 YS를 찾은 데 이어, 4월25일 3개월 만에 YS를 다시 만나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개혁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민주세력이 분열됐기 때문 아니냐”며 “DJ와 함께 민주세력의 원로로서 병풍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인제 최고위원은 4월1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70∼80년대의) 상징성만 가지고 개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로만 한다고 개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개혁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개혁은 과학이고 전략”이라며 김 최고위원의 ‘민주세력결집론’을 공박하고 나섰다. 이 최고위원은 또 “개혁은 정밀한 설계도를 갖고 시대정신을 구현해가는 작업”이라며 현 시점의 시대정신으로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통합’, ‘효율성’을 들었다. 이 최고위원은 25일 세종대 세계경영대학원 특강에서도 “개혁이 필요하고 사회가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바꾸고 있지만, 젊다고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해서 개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인 분석과 전략이 동원되지 않으면 개혁은 실패한다”고 다시 한번 김 최고위원의 민주세력결집론을 겨냥했다. 이에 대해 김근태 최고위원은 4월27일 기자와 만나 “개혁에서 전략은 부차적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개혁추진세력에 대한 신뢰와 정체성”이라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어 “DJ와 YS가 분열하니까 수구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이다. 철학과 원칙을 함께하는 민주세력이 수구세력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힘을 합해 개혁을 이뤄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민주세력이 과거 민주화를 한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 정신을 이어받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최고위원이 근대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결합을 주창한다면 이 최고위원 자신은 근대화세력인지 민주화세력인지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반격했다. 이처럼 두 최고위원 사이에 개혁논쟁이 불거진 것은 우선 이 문제가 향후 대선정국 구도와 관련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사실 김 최고위원은 그동안 민주세력결집론을 내세워 여야 개혁세력을 두루 만나며 연대를 꾀해왔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김덕룡, 이부영 의원 등 한나라당 개혁성향의 비주류들이 대선정국을 앞두고 “여야를 초월한 개혁세력 연대” 등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상황과 맞물리며 정치권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민주당에서는 김근태 정대철 김원기 최고위원, 한나라당의 경우 김덕룡 의원과 이부영 부총재, 민국당에서는 김상현 최고위원 등이 참여한 ‘화해 전진포럼’(가칭) 창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 민주당 차기구도와 관련해서도 김근태 최고위원과 노무현 최고위원이 서로 ‘민주화세력의 분열상황이 오면 양보할 수 있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내비치며 세결집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인제 최고위원의 민주세력결집론에 대한 비판은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사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정통야당의 정체성 논란으로 확산될 경우 국민신당 출신인 이 최고위원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지금 세계는 과거 20세기와 달리 지식정보화의 새 시대이며 국경이 무너지는 글로벌 시대이다. 여기에 걸맞은 국가목표를 위해 다 함께 대동단결해 나아가야 할 시기인 것이다. 아직도 20세기의 낡은 이념인 민주 대 반민주에 얽매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밝혔다. 과학적 전략의 통합의 정신 내세워
그렇지만 이번 개혁논쟁이 정치권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대선정국의 구도 선점을 위한 전초전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밑바탕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한 평가, 우리 사회의 가치지향점 등과 관련된 상반된 전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아가 대선정국이 가까워지면서 예비주자들 사이에 이념적 지향점의 차이가 좀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실 이인제 최고위원이 근대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결합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역사관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이 최고위원은 우리 근·현대사를 ‘성공한 역사’로 보고 있다. “우리 근현대사는 성공한 역사다. 경제적으로도 건국초기 그 어렵던 시절을 극복하고 성과를 냈으며, 민주주의도 아직 더 발전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암울했던 독재시기를 극복하고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근현대사의 과정에서 그때마다 국가목표를 성취해온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국가목표 성취를 위해 힘을 쏟아온 모든 세력들이 힘을 합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쪽 관계자는 “공과를 구분해서 공은 공대로 계승발전시키고 과는 개선해 나간다는 이른바 ‘창조적 역사계승론’이 이 최고위원의 생각이다. 이 최고위원이 1월1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차례로 참배하고 방명록에 ‘건국의 부(父)’, ‘근대화의 부’라고 쓴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반면 김근태 최고위원은 70∼80년대 지형을 민주 대 반민주, 민주 대 독재의 구도로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도는 현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현 지형은 민주화의 진전 등으로 이제 더이상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는 아니다. 그러나 수구 대 반수구, 평화공존세력 대 냉전세력의 구도가 대신하고 있다.” 민주화세력, 평화공존세력이 힘을 결집하고 중심축에 서서 개혁에 저항하는 수구 냉전세력을 극복해야 한다는 논리다. 따라서 87년 DJ와 YS의 결별로 찢긴 민주화세력을 다시 하나로 묶어세우는 작업, 정체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8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DJ와 YS가 분열한 것은 우리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부담이다. 이후 맹목적인 지역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정체성에도 혼란이 왔다”는 진단이다. 그렇다고 DJ와 YS가 손을 잡는 것이 3김정치의 부활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지난날 실패했던 정치역사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복원하면 그들의 정치적 역할은 그것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차이는 현 정부의 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투영된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현 정부의 개혁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과학적 분석과 철저한 준비, 전략의 부족을 꼽고 있다. 이 최고위원은 25일 세종대 강연에서 의약분업을 사례로 들며 “6년 전 합의됐으나 철저한 준비가 부족하고 치밀한 전략이 없어 지금 시련에 봉착했다”고 설명했다. 또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해서도 “1조원 이상 돈을 쏟아부었지만 2년간이나 방치돼 있다. 정부는 전광석화 같은 국가경영이 필요한 데도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당과 국회에 싱크탱크를 건설하자고 주장해온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게 이 최고위원의 설명이다.
기선제압 효과, 정치철학 키워낼 건가
반면 김 최고위원은 개혁추진세력에 대한 신뢰와 정체성에 화살을 돌렸다. “의약분업의 경우 시뮬레이션이 잘못됐다, 준비가 부족했다는 차원의 기술적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우자동차 문제 같은 구조적인 문제로 눈을 돌리면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게 분명해진다. 개혁추진세력이 신뢰받지 못하는 개혁에 대해 누가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겠느냐. 큰 틀에서 보면 YS의 문민정부나 DJ의 국민의 정부 모두 민주세력의 분열이 개혁 실패의 배경이다.” 87년 민주화 세력의 분열을 원죄로 보는 것이다.
대선정국을 앞둔 기선제압의 성격도 띠고 있는 이번 개혁논쟁이 과연 대선 예비주자들 사이에 서로 정치철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 DJ와 YS가 다시 힘을 합치는 ‘신민주연합’을 촉구하는 김근태 최고위원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났다.
김 최고위원이 민주세력결집론을 본격 거론한 것은 3월 초였다. 김 최고위원은 3월6일 부산을 방문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군사독재와 함께 싸웠던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협력관계가 회복된다면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DJ와 YS가 다시 힘을 합치는 ‘신민주연합’이 이뤄지길 적극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후 김 최고위원은 기회 있을 때마다 “YS와 DJ는 이 땅에 민주화를 가져온 분들이다. 두분이 힘을 합쳐야 한다”, “분열적, 맹목적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세력이 형성돼야 한다”고 역설하며 DJ-YS 연대를 통한 범민주세력의 연대를 주창해왔다. 실제 김 최고위원은 이런 논리에 따라 올 1월1일 상도동으로 YS를 찾은 데 이어, 4월25일 3개월 만에 YS를 다시 만나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개혁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민주세력이 분열됐기 때문 아니냐”며 “DJ와 함께 민주세력의 원로로서 병풍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인제 최고위원은 4월1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70∼80년대의) 상징성만 가지고 개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로만 한다고 개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개혁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개혁은 과학이고 전략”이라며 김 최고위원의 ‘민주세력결집론’을 공박하고 나섰다. 이 최고위원은 또 “개혁은 정밀한 설계도를 갖고 시대정신을 구현해가는 작업”이라며 현 시점의 시대정신으로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통합’, ‘효율성’을 들었다. 이 최고위원은 25일 세종대 세계경영대학원 특강에서도 “개혁이 필요하고 사회가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바꾸고 있지만, 젊다고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해서 개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인 분석과 전략이 동원되지 않으면 개혁은 실패한다”고 다시 한번 김 최고위원의 민주세력결집론을 겨냥했다. 이에 대해 김근태 최고위원은 4월27일 기자와 만나 “개혁에서 전략은 부차적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개혁추진세력에 대한 신뢰와 정체성”이라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어 “DJ와 YS가 분열하니까 수구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이다. 철학과 원칙을 함께하는 민주세력이 수구세력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힘을 합해 개혁을 이뤄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민주세력이 과거 민주화를 한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 정신을 이어받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최고위원이 근대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결합을 주창한다면 이 최고위원 자신은 근대화세력인지 민주화세력인지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반격했다. 이처럼 두 최고위원 사이에 개혁논쟁이 불거진 것은 우선 이 문제가 향후 대선정국 구도와 관련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사실 김 최고위원은 그동안 민주세력결집론을 내세워 여야 개혁세력을 두루 만나며 연대를 꾀해왔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김덕룡, 이부영 의원 등 한나라당 개혁성향의 비주류들이 대선정국을 앞두고 “여야를 초월한 개혁세력 연대” 등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상황과 맞물리며 정치권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민주당에서는 김근태 정대철 김원기 최고위원, 한나라당의 경우 김덕룡 의원과 이부영 부총재, 민국당에서는 김상현 최고위원 등이 참여한 ‘화해 전진포럼’(가칭) 창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 민주당 차기구도와 관련해서도 김근태 최고위원과 노무현 최고위원이 서로 ‘민주화세력의 분열상황이 오면 양보할 수 있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내비치며 세결집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인제 최고위원의 민주세력결집론에 대한 비판은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사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정통야당의 정체성 논란으로 확산될 경우 국민신당 출신인 이 최고위원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지금 세계는 과거 20세기와 달리 지식정보화의 새 시대이며 국경이 무너지는 글로벌 시대이다. 여기에 걸맞은 국가목표를 위해 다 함께 대동단결해 나아가야 할 시기인 것이다. 아직도 20세기의 낡은 이념인 민주 대 반민주에 얽매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밝혔다. 과학적 전략의 통합의 정신 내세워

사진/과학적인 분석과 전략이 있는 개혁을 위해 세대간 통합을 주장하는 이인제 최고위원이 후원회장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