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과 심상정 두 사람은 유명한 ‘국감 스타’였다.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법조인 출신이 아니면서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의 판·검사들을 가장 괴롭힌 의원이었다. 심상정 공동대표 역시 재정경제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거의 매년 국감 베스트 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국감 시기만 되면 재경위 소관 부처의 실무자들은 안면이 있는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심 의원 방에서 어떤 걸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봐줄 수 있느냐”며 아쉬운 소리를 하고 다녔다. 17대 국회에서는 그랬다.
18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 나흘째인 10월9일 오전 11시30분, 두 사람은 국감장 대신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으로 향했다. ‘부자감세 반대, 서민복지 확대’가 새겨진 어깨띠를 둘렀고 정부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안을 비판하는 펼침막을 들었다. 대다수 정치부 기자들과 국회의원들이 13개 상임위별 국감장에 가 있던 이날 오전, 진보신당의 노회찬·심상정 공동대표는 ‘부자감세 반대 캠페인’을 열었다. 진보신당만의 조촐한 ‘장외 국감’이었다.
“국회 의석이 없다 보니 국정감사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국감 이슈를 다루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현실적인 한계를 절감하고 있죠.” 캠페인을 마친 노회찬 공동대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외 국감’ 고난의 행군도 언론선 홀대
진보신당의 하루하루는 고난의 연속이다. 특히 진보신당의 두 간판인 노·심 공동대표가 매일처럼 살인적인 정치 일정을 소화하는데도 언론에서는 관련 기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10월9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감장에서 파행을 빚었다는 보도는 하루 종일 되풀이된 반면, 진보신당 지도부가 YTN 노조원들의 농성장을 지지방문하고, 종부세 규탄대회를 열고, 진보정치 10년 평가토론회를 개최한 소식은 외면당했다. 이것이 원외 정당인 진보신당이 당면한 ‘현실’이다.
현실적 한계는 당장 당원 증가 속도의 정체로도 나타났다. 2008년 2월3일 공식적으로 민주노동당과 분리되면서 4천 명 수준으로 시작된 진보신당의 진성당원 수는 4월9일 총선 직후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바람을 타고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총선에서 노회찬·심상정 두 공동대표를 낙선시킨 데 대한 미안함이 진보신당 당원 가입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원 수는 지난 여름 촛불집회 정국에서 또 한 차례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8월31일 1만4천 명을 기록한 이후, 진성당원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졌다(그래프 참조). 촛불과 지못미 열기가 잠잠해진 탓이었다. 여기서 진성당원이란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당원을 말한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가입한 회원과는 다르다. 진보신당이 최근 제2창당 추진을 본격적으로 선언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원외 정당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서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는 과정이 곧 제2창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바로 2010년 지방선거 성적표로 나타나게 된다. 진보신당은 일단 외연 확대와 정체성 확립을 제2창당의 1차적 목표로 잡고 있다. 진보신당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지만 제2창당이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신임 지도부 선출과 강령 및 노선 채택은 물론, 당의 이름까지도 재검토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의 외연 확대는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하나는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 노조, 전국빈민연합(전빈련) 등 대중조직은 물론 사회당, 노동자의 힘, 진보정치포럼 등 진보 정치세력과 연대를 모색하는 작업이다. 과거 민주노동당 이전의 진보 정당은 민주노총 같은 대중조직의 결합 없이 시작했다가 거의 실패했다. 진보신당은 이미 9월29일 전빈련 대표단과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몸집 키우기에 들어갔다. 진보신당은 이르면 10월 말 민주노총과도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노총·전빈련 등과 연대 모색
지역에서는 이와 별개로 2010위원회 등을 통해 지역 주민과 밀착하는 진보적 지역정치의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진보 정당의 최우선 과제는 국회의원을 한 명이라도 당선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경남 울산과 창원 등 ‘영남 벨트’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는 진보적 지역정치의 모범으로 평가받기 어려웠다.
진보신당이 지역 사회에 다양한 공동체를 건설하고 이들 사이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은 이같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자 진보 정당이 ‘지역의 연인’이 되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진보신당 이지안 부대변인은 “최근 서울 마포에 문을 지역공동체 ‘민중의 집’이나 경기 고양시에서 시작한 ‘마을학교’ 운동이 진보적 지역정치의 일부”라며 “앞으로도 지역의 요구와 현실에 맞는 다양한 지역 공동체를 조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는 9월25일 시작된 6차례의 ‘진보정치 10년 평가토론회’를 통해 평등·생태·평화·연대 등 네 가지 가치를 좀더 구체화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특히 그동안 진보 진영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왔던 북한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는 부분이 민주노동당 시절과 달라진 점이다.
민주노동당과는 ‘평화적 경쟁’ 관계로
한 가지 살펴봐야 할 부분은 진보신당이 내년 2월 제2창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를 통해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민주노동당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선 진보 정당이 기댈 수 있는 최대의 노동자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의 지지를 누가 더 많이 끌어오느냐 하는 것이 관심사다. 현재 민주노총 본부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유지하고 있지만 각 산별연맹이나 지역본부의 입장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민주노총 충북 및 경북 지역 본부는 상대적으로 진보신당과 가깝고, 산별연맹 가운데서도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올 초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철회 안건을 대의원대회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 4월9일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별다른 잡음 없이 손잡고 선거를 치렀지만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에서도 이런 기조가 계속 유지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두 당은 이미 지난 6월4일 창원 도의원 보궐선거에서 한 차례 맞붙었다. 당시 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손석형 후보가 진보신당의 이승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노회찬 공동대표는 “선거 때 두 당의 주도권 경쟁이 현실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민노당과의 경쟁보다는 진보 정당의 지평을 좀더 확대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정체성과 정책 기조가 다르기 때문에 (진보신당이) 민노당과 땅따먹기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표는 동시에 민주노동당과의 관계를 ‘공존’이라고 표현했다. 풀이하자면 ‘평화적 경쟁’을 하겠다는 뜻이다. 언뜻 형용모순으로 들리는 말이지만 진보신당이 내년 2월 제2창당과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뿌리를 내리기 위해 풀어야 할 명제이기도 하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10월9일 진보신당의 노회찬·심상정 공동대표(오른쪽 세 번째부터)가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부자감세 반대 캠페인’을 열었다. 진보신당은 10월 초부터 본격적인 제2창당 작업에 돌입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현실적 한계는 당장 당원 증가 속도의 정체로도 나타났다. 2008년 2월3일 공식적으로 민주노동당과 분리되면서 4천 명 수준으로 시작된 진보신당의 진성당원 수는 4월9일 총선 직후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바람을 타고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총선에서 노회찬·심상정 두 공동대표를 낙선시킨 데 대한 미안함이 진보신당 당원 가입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원 수는 지난 여름 촛불집회 정국에서 또 한 차례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8월31일 1만4천 명을 기록한 이후, 진성당원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졌다(그래프 참조). 촛불과 지못미 열기가 잠잠해진 탓이었다. 여기서 진성당원이란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당원을 말한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가입한 회원과는 다르다. 진보신당이 최근 제2창당 추진을 본격적으로 선언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원외 정당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서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는 과정이 곧 제2창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바로 2010년 지방선거 성적표로 나타나게 된다. 진보신당은 일단 외연 확대와 정체성 확립을 제2창당의 1차적 목표로 잡고 있다. 진보신당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지만 제2창당이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신임 지도부 선출과 강령 및 노선 채택은 물론, 당의 이름까지도 재검토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의 외연 확대는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하나는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 노조, 전국빈민연합(전빈련) 등 대중조직은 물론 사회당, 노동자의 힘, 진보정치포럼 등 진보 정치세력과 연대를 모색하는 작업이다. 과거 민주노동당 이전의 진보 정당은 민주노총 같은 대중조직의 결합 없이 시작했다가 거의 실패했다. 진보신당은 이미 9월29일 전빈련 대표단과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몸집 키우기에 들어갔다. 진보신당은 이르면 10월 말 민주노총과도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진보신당 진성당원 수 증가 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