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던 여야 3당 부랴부랴 법안 개정 추진… 활동 시한 연장해도 합의 도출은 미지수
지난 1월4일 공식 출범한 뒤 개점휴업 상태였던 국회 정치개혁특위(위원장 강재섭 한나라당 의원)가 뒤늦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국회 정개특위는 “정치 대혁신을 위한 공동 노력”을 명분으로 거창하게 발족했으나 출범 당일 위원장과 여야 간사를 선출하고, 2월8일 2차 회의서 국회·선거·정당관계법 등 3개 소위를 구성한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정개특위 활동 마감시한 4월30일을 보름여 앞둔 지난 4월12일 3당 간사회의를 열어 23일과 25일 소위와 전체회의를 열기로 합의하는 등 “뭔가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저마다 이해관계 맞물려
그동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한나라당이 특히 적극적이다. 정창화 총무는 4월17일 “국회 정개특위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당법, 정치자금법, 선거법은 물론 국회법에 대해서도 공청회를 열 수 있다”고 전격 선언했다. 다음날인 18일에는 당내 정개특위(위원장 강재섭 의원)의 논의를 거쳐 확정한 ‘정치개혁관련법안’ 내용을 공개하는 등 공세를 취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런 태도는 기존 방침에서 180도 돌아선 것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2월 자민련이 현행 20석인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14석 완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자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꺼리며 국회 정개특위 활동에 소극적이었다.
한나라당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곤경에 빠진 쪽은 민주당과 자민련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당 지도부가 “정치개혁”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정작 한나라당 정도의 준비조차 갖추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국회 정개특위가 출범한 지 두달 뒤인 지난 3월7일에야 당 정개특위(위원장 박상천 의원)를 늑장 구성했다. 그나마 3월13일 첫 회의를 연 뒤 지금까지 4차례 전체회의를 거쳐 지방자치제도개선방안과 농축임삼협 등 조합장 선거개선 방안을 논의했을 뿐이다. 자민련은 더 한심한 수준이다. 현재 국회·선거·정당 관계법 등 국회 정개특위 3개 소위 가운데 국회관계법 소위에 김학원 의원 1명을 인선했을 뿐 당내 관련 기구조차 갖춰놓지 않고 있다. 그나마 자민련의 관심은 그동안 줄기차게 주창해온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내용으로 한 국회법 개정쪽에 맞춰져 있다. 그것도 5월 안에 마무리지어야 나머지 법안들에 대한 논의를 더 진행할 수 있다는 태도다. “한나라당이 공청회를 제안한 만큼 정개특위를 5월 한달 더 연장해 타당성을 논의하겠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안 된다. 5월 안에 정개특위서 처리가 안 되면 운영위로 넘겨야 한다.”(김학원 자민련 의원) 자민련이 이렇게 배수진을 치고 나온 데는 다급한 속사정이 있다. 최근 자민련 소속인 원철희 의원이 농협중앙회장 재직 때 비자금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서 원 의원은 형이 최종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고, 이 경우 민주당 의원 4명을 임대받아 겨우 교섭단체의 소원(?)을 이룬 자민련은 다시 비교섭단체의 설움과 수모를 겪어야 할 처지인 것이다. 결국 각 정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너나없이 “정치개혁”을 소리높여 외치며 활동마감 시한이 며칠 남지 않은 국회 정개특위를 열겠다고 뒤늦게 부산을 떨고 활동시한 연장에 잠정합의한 것이다. 최근 태도를 180도 바꾼 한나라당도 공식적으로는 “정치개혁특위의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속에는 아주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괜한 버티기로 교섭단체 요건 완화 문제가 정쟁화돼 3당연합을 통해 다수 의석을 확보한 여권이 실력 처리할 빌미를 주기보다는 여야 동수인 국회정개특위 안에서 이 문제를 포함한 정치관계법을 논의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내년 대선을 생각할 때 자민련을 일방적으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내부 논의도 있었다.”(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 이 인사는 “상황에 따라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위한 국회법 처리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뜻밖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어쨌든 여야 3당의 정치적 이해가 맞물려 뒤늦게 기지개를 켠 국회 정개특위는 최대 쟁점인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둘러싼 국회법뿐 아니라 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3대 정치관계법 개정에도 뭔가 해답을 내놓아야 할 처지다. 지난해 총선 때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했던 200여개 시민단체가 2월27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를 구성한 데 이어 지난 4월13일부터 3대 정치관계법 개정운동을 시작하는 등 정치권에 대한 본격적인 압박에 나선 때문이다. 연대회의는 5월 말까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공직후보 선출 과정 민주화 및 비민주적 공천에 대한 처벌조항 신설, 정치자금 수입 내역 신고 및 공개 의무화, 30만원 이상 정치자금 수표사용 의무화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3대 정치관계법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법안을 마련해 제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어느 하나 수월한 것 없어
결국 여야 3당은 일단 4월30일로 끝나는 국회 정개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한 뒤 정치관계법 전반을 놓고 첨예한 논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민주당과 자민련이 정치관계법에 대한 구체적인 당론을 정하지 못한 탓에 민주당과 한나라당 모두 어느 정도 내부 논의를 끝낸 지방자치제도개선안에 논의가 모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뭐 하나 수월한 대목은 없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일선 자치단체장들까지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자치단체장 임명직 전환 및 부단체장의 국가직 전환 여부부터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현행 직선방식을 유지하기로 당론을 모았고, 민주당도 임명제 전환에는 반대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서는 여전히 구청장 임명제 전환 문제를 별도로 검토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더욱이 자민련이 “생활권이 같은 광역시의 경우 구를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광역 구청장부터 임명제로 전환하자”고 버티고 있다. 기초부단체장의 경우 민주당이 국가직 전환을 통해 시장·군수·구청장의 제청으로 시·도지사와 행정자치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지방자치를 훼손하려 한다는 정치권 안팎의 논란이 거세질 수 있다.
지방선거일도 격돌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월드컵 개최일정 등을 고려해 내년 5월9일로 앞당겨 지방선거를 치르자는 반면, 민주당과 자민련은 행정공백 등을 이유로 법 규정대로 6월13일 치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다만 지방의원 유급화의 경우 의원정수 축소를 전제로 추진하는 데 여야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정치개혁의 핵심인 정당법, 정치자금법, 선거법은 더 많은 암초가 존재한다. 선거법의 경우 한나라당은 장기체류 외국인에 대한 투표권 부여 전향적 검토, 연합공천 금지, 선거사범에 대한 특검제 도입, 현수막 부활, 의원직 상실 요건 강화(현행 벌금 100만원 이상 판결 때 의원직 상실) 등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내용 가운데 상당수가 여권의 이해와 얽혀 있어 지난 15대 국회에서도 논란만 거듭했던 사안이라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민주당 정개특위 한 핵심 관계자는 “오히려 연합공천 허용을 법에 명문화할지, 지금처럼 관례대로 놔둘지를 놓고 내부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특검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우리당 정서”라고 전했다.
“시민사회단체와 국민이 나설 때”
정치자금법 논의도 만만찮다. 한나라당은 “공평성과 투명성 확보가 최우선”이라며 1억원 이상 법인세를 내는 기업은 법인세의 1%를 선관위에 의무 기탁하고, 이를 총선 당시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자는 안을 15대 때에 이어 다시 내놓았으나, 여당은 기업의 준조세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국회법도 지난 15대 국회 정개특위에서 논란이 됐던 대목을 그대로 옮겨왔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의 당적이탈 법제화와 함께 국세청장, 국정원장, 검찰청장, 경찰청장 등 이른바 ‘4대 핵심 권력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다만 의장 당적이탈의 경우 15대 때 반대했던 자민련이 “중립성 보장을 위해 긍정 검토할 수 있다”고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어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결국 뒤늦게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재가동된 정개특위도 15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여야간 첨예한 공방만 거듭할 뿐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정치개혁운동에 몸담고 있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이강준 간사는 “지난 15대 때도 내내 허송세월하다 선거가 임박해서야 의원들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법을 고치겠다고 나선 탓에 정치개혁법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는데, 지금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해당사자인 정치인들이 제살을 깎는 진정한 정치개혁을 이루기 힘든 만큼 결국 시민사회단체와 국민이 단일한 의견을 만들어 관철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국회법 개정안은 정개특위 최대의 쟁점이다. 지난해 국회법 개정안 상정에 항의 하는 정창화 한나라당 총무.(김경호 기자)

사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3대 정치관계법 개정운동을 시작하는 등 정치권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박승화 기자)
한나라당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곤경에 빠진 쪽은 민주당과 자민련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당 지도부가 “정치개혁”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정작 한나라당 정도의 준비조차 갖추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국회 정개특위가 출범한 지 두달 뒤인 지난 3월7일에야 당 정개특위(위원장 박상천 의원)를 늑장 구성했다. 그나마 3월13일 첫 회의를 연 뒤 지금까지 4차례 전체회의를 거쳐 지방자치제도개선방안과 농축임삼협 등 조합장 선거개선 방안을 논의했을 뿐이다. 자민련은 더 한심한 수준이다. 현재 국회·선거·정당 관계법 등 국회 정개특위 3개 소위 가운데 국회관계법 소위에 김학원 의원 1명을 인선했을 뿐 당내 관련 기구조차 갖춰놓지 않고 있다. 그나마 자민련의 관심은 그동안 줄기차게 주창해온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내용으로 한 국회법 개정쪽에 맞춰져 있다. 그것도 5월 안에 마무리지어야 나머지 법안들에 대한 논의를 더 진행할 수 있다는 태도다. “한나라당이 공청회를 제안한 만큼 정개특위를 5월 한달 더 연장해 타당성을 논의하겠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안 된다. 5월 안에 정개특위서 처리가 안 되면 운영위로 넘겨야 한다.”(김학원 자민련 의원) 자민련이 이렇게 배수진을 치고 나온 데는 다급한 속사정이 있다. 최근 자민련 소속인 원철희 의원이 농협중앙회장 재직 때 비자금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서 원 의원은 형이 최종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고, 이 경우 민주당 의원 4명을 임대받아 겨우 교섭단체의 소원(?)을 이룬 자민련은 다시 비교섭단체의 설움과 수모를 겪어야 할 처지인 것이다. 결국 각 정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너나없이 “정치개혁”을 소리높여 외치며 활동마감 시한이 며칠 남지 않은 국회 정개특위를 열겠다고 뒤늦게 부산을 떨고 활동시한 연장에 잠정합의한 것이다. 최근 태도를 180도 바꾼 한나라당도 공식적으로는 “정치개혁특위의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속에는 아주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괜한 버티기로 교섭단체 요건 완화 문제가 정쟁화돼 3당연합을 통해 다수 의석을 확보한 여권이 실력 처리할 빌미를 주기보다는 여야 동수인 국회정개특위 안에서 이 문제를 포함한 정치관계법을 논의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내년 대선을 생각할 때 자민련을 일방적으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내부 논의도 있었다.”(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 이 인사는 “상황에 따라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위한 국회법 처리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뜻밖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어쨌든 여야 3당의 정치적 이해가 맞물려 뒤늦게 기지개를 켠 국회 정개특위는 최대 쟁점인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둘러싼 국회법뿐 아니라 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3대 정치관계법 개정에도 뭔가 해답을 내놓아야 할 처지다. 지난해 총선 때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했던 200여개 시민단체가 2월27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를 구성한 데 이어 지난 4월13일부터 3대 정치관계법 개정운동을 시작하는 등 정치권에 대한 본격적인 압박에 나선 때문이다. 연대회의는 5월 말까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공직후보 선출 과정 민주화 및 비민주적 공천에 대한 처벌조항 신설, 정치자금 수입 내역 신고 및 공개 의무화, 30만원 이상 정치자금 수표사용 의무화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3대 정치관계법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법안을 마련해 제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어느 하나 수월한 것 없어

사진/ 15대 국회 정치개혁특위 회의 장면. 재가동된 정개특위도 15대와 마찬가지로 여야간 공방만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이용호 기자)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