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걸림돌’, 영남권 후보론, DJ 자제 발언 등 입지 좁아지는 이인제의 고심
지난 4월3일 오후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의 후원회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 ‘정권재창출의 희망 국민지지 1위 이인제’, ‘새 희망 젊은 한국 이인제와 함께’ 등 대형 현수막 20여개가 내걸린 행사장은 참석자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이 빼곡히 들어차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예상 밖으로 많은 참석자에 고무된 듯 이인제 최고위원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대규모 후원회는 잔꾀다?
“저 이인제는 오직 여러분의 사랑과 믿음으로 여기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원대한 꿈과 따뜻한 희망을 여러분과 함께 키워나가겠습니다. 강력하면서도 창조적인 지도력이 건설되고 온 국민의 힘과 뜻이 하나로 모아질 때 실현시키지 못할 꿈이 어디에 있으며 이루지 못할 목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행사 주최쪽과 언론들의 추산 인원은 1만5천여명 정도. 정치권에서도 김영배·안동선·정동영·김옥두·최재승·정동채·이훈평 민주당 의원과 송광호·송영진·송석찬 자민련 의원,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 등 현역의원 60여명이 참석해 마치 정당행사를 옮겨놓은 듯했다.
이처럼 대규모 인파에 고무된 것은 주인공뿐이 아니다. 이 최고위원 캠프에서는 “개인 후원회에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일 것”, “우리가 호루라기 한번 불면 이 정도는 모인다”, “1만명 정도 예상했는데 우리도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는 등의 자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번 행사를 통해 ‘유력한 차기주자로서 분명하게 뭔가를 보여줬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내부 분위기와 달리, 민주당 내에서는 거꾸로 이인제 최고위원의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 “한마디로 초조해진 그의 잔꾀다. 이번 행사는 대규모 세몰이를 통해 무언중에 차기 보장을 압박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런 행사를 할 때인가’라고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곱게 볼 리가 없다.”(민주당 동교동계 의원) 대선이 점점 다가오고 있으나 아직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지 못한 이 최고위원이 조바심 끝에 대규모 인원동원을 통한 세몰이에 나섰지만, 역효과가 클 것이라는 말이다. 이번 후원회는 사실 캠프 내부에서도 논란거리였다. 이 최고위원쪽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DJP 공조 복원 이후 이 최고위원의 여권 내 입지가 좁아지면서 초조해 하는 분위기가 있다. 앞선 자는 늘 쫓기게 마련 아니냐. 그래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러나 경제난 등 나라사정이 썩 좋지 않을 때 대규모 행사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많았다. 자칫 차기대선과 관련해 세몰이로 여권핵심부를 협박하는 것처럼 비쳐져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주장을 제시하는 쪽도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차기후보 1순위임을 보여주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함께 뚜렷한 양강체제를 형성해왔다. 그렇다면 이런 그를 초조하게 몰고가는 요인은 무엇일까? 이 최고위원의 대선전략의 핵심축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높은 국민적 대중성을 무기로 ‘이인제 대세론’을 확산시켜 조기에 대세를 굳히고, 여기에 강력한 후원자 노릇을 해온 동교동계의 수장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지원을 통해 당내 취약한 지지기반을 보완한다는 구상이다. 그렇지만 이런 구도는 지난 연말 연초를 지나면서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정동영 최고위원의 ‘2선 후퇴’ 주장 등에 의해 낙마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불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DJP 공조 복원에 따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여권 내 영향력 확대, 김중권 대표, 노무현 상임고문 등 영남권 주자들의 부상 등 악재가 잇따랐다. 여기에 레임덕을 우려해 유력후보의 조기 가시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여권핵심부의 견제 등이 겹치며 사면초가 상황에 빠진 것이다. JP와 화해의 계기는 잡았으나
이 최고위원은 4월28일 대전에서 열리는 ‘운정(JP의 아호) 바둑대회’에 참석해 JP와 회동하기로 하는 등 JP와의 관계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JP가 이 최고위원의 면담요청을 번번히 거절하자 이 최고위원도 “미련없다”고 맞서는 등 극도의 대립을 보였으나, 4월2일 이 최고위원이 논산시장 공천권을 자민련에 양보하면서 화해의 계기를 잡게 된 것이다. 그로서는 DJP공조 복원에 따라 여권 내부에서 JP가 실세로 떠오른 상황에서, JP와의 불편한 관계는 자칫 대선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번 회동을 계기로 이 최고위원이 이른바 ‘JP 걸림돌’을 넘어설 수 있을지가 여전히 미지수라는 점이다. 구조적으로 그와 JP는 경쟁관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민련 관계자는 “이 최고위원은 JP와 지역기반이 겹친다. 아닌 말로 그가 뜨면 JP는 그냥 죽을 수밖에 없다. 지난번 총선 때 보지 않았느냐. 차기대선구도는 JP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JP가 사후 보장을 확신하지 못하는 한 이 최고위원에게 힘을 실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DJP 공조를 차기대선까지 이어가려는 여권의 차기구도상 그로서는 ‘JP 걸림돌’을 우려해야 할 대목인 것이다.
또 김중권 대표와 노무현 상임고문 등으로 대표되는 영남후보론도 여전히 부담으로 남아 있다. 실제 그동안 이 최고위원은 3월5일 기자간담회에서 영남후보론에 대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어느 지역 출신이든 국민지지를 많이 받는 것이 대선후보 요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등 맹공을 퍼부어왔다. 이 최고위원쪽의 한 관계자는 “영남권후보론의 실체가 없다. 각종 여론조사를 봐도 김 대표나 노 상임고문의 영남쪽 지지도는 이 최고위원보다 못하다”고 단언했다. 사실 영남후보론은 그의 영남쪽 지지도가 한계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언제든지 본격화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영남 출신의 민주당 관계자는 “영남 현지에는 일단 김 대표나 노 상임고문이 대선후보가 되면 관망하던 민심이 확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며 영남후보론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라고 말했다.
3월28일 서울 마포에 개인사무실을 내고 활동을 재개한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과거와 달리 이 최고위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변화된 환경이다. 실제 권 전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최고위원을 여전히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중에 이야기하자. 상식적으로 판단해야지.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내가 말할 수 있겠나. 원래 후원회에서는 격려하고 장점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이 최고위원 후원회에 참석해 “이인제 위원장은 21세기를 이끌 비범한 인물”이라며 “그가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도록 우리 모두 돕자”고 치켜세웠던 것과는 크게 다른 발언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 최고위원쪽 관계자는 “권 전 최고위원의 지지는 변함이 없다. 공개된 장소에서 말하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김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는 이른바 ‘차기주자들의 경쟁적 균형상태 유지’가 필수적이다. 평생을 김 대통령의 뜻에 따라 움직였던 권 전 최고위원이 쉽게 이 최고위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심의 향방이 두렵다
그렇다면 차기를 위해 뛰는 이 최고위원에게 대안은 무엇일까. 사실 그는 그동안 ‘국민의 지지를 받는 주자가 후보가 돼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이른바 높은 국민지지도를 통한 DJ 압박→대선후보 확보 전략인 것이다. 지난 2월6일 충남 당진 방문을 시작으로 안산, 포항, 광주, 거창, 진주, 여수 등을 돌며 본격적인 지역 민심탐방에 나선 것도 국민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지지도를 올려 여권 내 대세론을 뿌리내리겠다는 전략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중요한 것은 국민의 지지다. 대선후보도 당의 대의원이 뽑는 것이지만, 대의원의 표심은 국민의 지지도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이 최고위원의 대선 행보는 권력핵심으로부터 직접 견제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딜레마다. 실제 김대중 대통령은 3월17일 최고위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국민과 대화하고 지역발전을 협의하고 민심을 청취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지만 대권만 갖고 이야기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차기경쟁 움직임에 대해 에둘러 경고했다. 여전히 김대중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확고하기 때문에 ‘김심’의 향방이 대선구도에 결정적일 수 있는 상황에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은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라는 점에서 2인자다. 2인자는 어려운 자리다. 언제나 최고권력자의 견제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밑에서는 치고올라오는 자리 아니냐.”(이 최고위원 측근) 과연 본격 대선행보에 나서자니 ‘김심’이 신경쓰이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도 없는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글/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사진/1만5천여명이 참석한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의 후원회. 그러나 일각에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잔꾀’라고 비판했다.

사진/이인제 최고위원은 최근 영남권 후보론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는 지지율을 올려 대세론을 뿌리박겠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대규모 인파에 고무된 것은 주인공뿐이 아니다. 이 최고위원 캠프에서는 “개인 후원회에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일 것”, “우리가 호루라기 한번 불면 이 정도는 모인다”, “1만명 정도 예상했는데 우리도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는 등의 자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번 행사를 통해 ‘유력한 차기주자로서 분명하게 뭔가를 보여줬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내부 분위기와 달리, 민주당 내에서는 거꾸로 이인제 최고위원의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 “한마디로 초조해진 그의 잔꾀다. 이번 행사는 대규모 세몰이를 통해 무언중에 차기 보장을 압박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런 행사를 할 때인가’라고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곱게 볼 리가 없다.”(민주당 동교동계 의원) 대선이 점점 다가오고 있으나 아직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지 못한 이 최고위원이 조바심 끝에 대규모 인원동원을 통한 세몰이에 나섰지만, 역효과가 클 것이라는 말이다. 이번 후원회는 사실 캠프 내부에서도 논란거리였다. 이 최고위원쪽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DJP 공조 복원 이후 이 최고위원의 여권 내 입지가 좁아지면서 초조해 하는 분위기가 있다. 앞선 자는 늘 쫓기게 마련 아니냐. 그래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러나 경제난 등 나라사정이 썩 좋지 않을 때 대규모 행사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많았다. 자칫 차기대선과 관련해 세몰이로 여권핵심부를 협박하는 것처럼 비쳐져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주장을 제시하는 쪽도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차기후보 1순위임을 보여주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함께 뚜렷한 양강체제를 형성해왔다. 그렇다면 이런 그를 초조하게 몰고가는 요인은 무엇일까? 이 최고위원의 대선전략의 핵심축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높은 국민적 대중성을 무기로 ‘이인제 대세론’을 확산시켜 조기에 대세를 굳히고, 여기에 강력한 후원자 노릇을 해온 동교동계의 수장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지원을 통해 당내 취약한 지지기반을 보완한다는 구상이다. 그렇지만 이런 구도는 지난 연말 연초를 지나면서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정동영 최고위원의 ‘2선 후퇴’ 주장 등에 의해 낙마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불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DJP 공조 복원에 따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여권 내 영향력 확대, 김중권 대표, 노무현 상임고문 등 영남권 주자들의 부상 등 악재가 잇따랐다. 여기에 레임덕을 우려해 유력후보의 조기 가시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여권핵심부의 견제 등이 겹치며 사면초가 상황에 빠진 것이다. JP와 화해의 계기는 잡았으나

사진/대표적인 영남권 주자인 김중권 대표.

사진/노무현 상임고문.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