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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민국당 1년, 나는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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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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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정책연합 확정 뒤 사퇴서 던진 장기표 민국당 최고위원을 만나다

사진/“어쩌면 벌써 떠났어야 했는지도 몰라.” 장기표 최고위원은 그의 정치실험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사퇴서를 썼다.
4월4일 오후 3시30분. 서울 여의도 산정빌딩 5층에 자리잡은 10여평 규모의 허름한 개인사무실인 신문명정책연구원에 장기표(56) 민주국민당 최고위원이 들어섰다. 그는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급히 써내려갔다. “민국당이 온갖 실정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는 김대중 정부와 정책연합을 추진키로 의결함에 따라 창당정신에 의거, 국민에 봉사하는 독자정당으로서의 역할이 어렵게 된 데 책임을 지고….” 그 자신이 신상우·이기택·허화평·김동주 최고위원 등과 함께 줄기차게 반대해온 민주당-자민련-민국당의 3당 정책연합을 김윤환 대표가 이날 오전 당무회의에서 당론으로 전격 확정한 데 반발해 최고위원직 사퇴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또 한번의 정치적 실패를 자인하듯 그의 얼굴에는 쓴 웃음이 맴돌았고,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이제 나는 민국당을 떠났다. 이럴 수밖에 없어. 아니 어쩌면 벌써 당을 떠났어야 했는지도 몰라.”

“통사정 했어, 그런데 밀어붙였어”

60년대 학생운동을 시작해 70년 유신체제와 80년 신군부 치하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재야·운동권의 대부’로 불렸던 장기표. 그러나 92년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명분으로 민중당에 참여하면서 시작된 그의 제도권 정치 진입은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16대 총선을 겨냥해 지난 2000년 벽두에 만든 새시대개혁당을 접고 홍사덕 의원과 무지개신당을 만들었지만 홍 의원이 등을 지고 한나라당에 입당함으로써 좌절됐다. 그리고 지난 2000년 3월8일. 한나라당 공천에서 밀려난 김윤환·신상우·이기택씨 등과 함께 민국당을 창당할 때 ‘재생공장에 들어간다’는 비아냥에 맞서 “1인지배 정당체제 타파를 위한 현실적 선택이며, 지난 35년 동안 유지해온 내 이미지를 건 엄청난 도박”이라고까지 주장했던 그가 13개월 만에 다시 빈털터리로 돌아서고 있었다.


사퇴서 작성을 끝낸 그는 이를 민국당 지도부에 일방 통보한 뒤 2시간여 동안 기자를 상대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처음에는 차분해 보였다. “사소한 정책이나 대표경선 문제라면 승복할 수 있어. 그러나 당 진로를 결정하는 데는 처신이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 김대중 정부와 연정은 야당 역할 포기야. 생각이 다른 내가 당을 떠나야지, 어쩌겠어.” 그러나 곧 험한 표현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누굴 탓하겠오만…. 오늘 당무회의 결정은 아주 웃기는 거야. 전당대회가 무슨 애들 장난이야. 지난번 전당대회 때 안건은 대표신임건이었어. 그쪽에서 더 하려면 다시 전당대회를 개최해 신임을 물어야 해. 그런데 당무회의 열어 연정을 당론으로 정했기 때문에 전당대회를 안 한다는 게 말이나 돼. 이건 완전히 쇼야 쇼. 이렇게 만든 놈이 누구냐.” 3당 연정을 추진한 김 대표의 신임을 묻기 위해 소집된 지난 3월23일 전당대회가 대리투표 부정시비로 무산된 이후 별도의 전당대회 소집 없이 당무회의에서 단숨에 일을 밀어붙인 데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짙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체념한 듯했다. “당헌을 어기고 권한도 없는 당무회의에서 처리했으니 법적다툼을 하면 전당대회를 또 열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까짓 것 열면 뭐해. 불상사만 생길 텐데.” 무엇이 치열한 싸움꾼이었던 ‘재야·운동권의 대부’를 이토록 체념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말을 이었다. “전당대회 무산 뒤 정치력을 발휘해 원만히 해결하려고, 나…. 솔직히 별짓 다했다. 김 대표에게 ‘끝까지 붙으면 어느 한쪽이 당을 떠나야 하니까, 연정에 대해서는 당론 정하지 말고 엔시엔디(NCND)로 가자’고 타협안을 냈다. 사실 인정은 어렵지만 그냥 현 상태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김 대표에게 ‘통사정’도 했다. 그런데 기어이 밀어붙였어.” 그는 이 대목에 이르자 도저히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쳐가며 김 대표와 최근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입각한 민국당 한승수 장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한승수도 저러면 안 된다. 당론도 안 정해진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에 입각하고 꼴이 우스워지니까 연정을 당론으로 정하라고 압박했다. 김 대표도 어떻게든 한승수를 붙들고 있어야 하니까,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진 거지만…. 이거 정말 우스운 일 아냐.”

민국당 결성은 불가피했던 일

사진/장기표씨의 주도로 설립된 신문명정책연구원. 그는 이곳을 떠나 칩거에 들어갔다.
이렇게 말을 이어가던 그는 체념한 듯 지친심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신상우·이기택 등 다른 최고위원들은 소송까지 가자며 사퇴를 막았다. 솔직히 나도 당을 안 떠나고 붙어 있을 명분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또 싸우려니까 너무 피곤하다. 너무 지쳤다. 나, 참을 만큼 참았고, 노력할 만큼 노력했다. 솔직히 내 능력으로는 전당대회 다시 열어봐야 안 된다. 대의원들 돈 안 주면 전당대회에도 안 온다. 내가 그만둬야지 별 수 있겠어.”

그에게 좀 모진 질문을 던졌다. “결국 ‘퇴물 정치인들이 모여 만든 재생공장’이라는 비판과 주변의 만류를 거부하고 민국당을 통해 정치적 이념을 실현시키겠다고 나선 그 선택부터가 잘못된 게 아니냐”고.

그는 긴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잘됐다고 보지는 않지만…. 불가피했다고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당시 ‘지조를 꺾는 것 아니냐’는 말도 많았고, 나도 민국당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정치적 신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디제이가 나라를 망쳤고,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별로 봉사하지 못했다. 이 틈을 노려서 잘하면 충분히 국민지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패했고, 결국 잘못된 선택임이 판명된 것 아니냐”고 다시 따져 물었다. 그는 주춤거렸다. 그리고 회한이 섞인 듯한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 “판명됐다는 말은 좀 그렇고…. 결국 나의 역부족으로 안 된다는 것이 드러났다. 결국 장기표식 정치실험은 실패한 셈이지. 아니 실패했다. 내 절대능력도 부족했고, 선택의 잘못도 있다. 그래서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다.” 괴로운 듯 그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그리고 오히려 기자에게 진지하게 되물었다.

“승근씨, 하지만 그때 민국당이 아니었다면 잘됐을까.” 잠시 뜸을 들인 그는 스스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당시 내가 만든 새시대개혁당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내 이미지가 좀 나아졌을지는 몰라도 당사 유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말이야, 12년째 정당다운 정당 건설을 위해 노력했는데…. 이거, 정말 어렵구만.”

기자는 그에게 “도대체 뭘 믿고 대다수가 반대하는 민국당행을 결심했냐”고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그의 입에서는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 하지만 솔직히 내가 민국당 들어갈 때는 다른 중진들이 나이도 많고 시련도 많이 겪었고 해서 곧 (정치에서) 은퇴할 줄 알았어. 그러면 곧 우리당 될 줄 알았지. 4·13 총선 패배 직후 윤원중 사무총장이 와서 ‘이제 장 최고밖에 민국당을 이끌 사람이 없다’고까지 말했고, 그때만해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는데….” 순간 ‘발빠른 변신은 고사하고 너무 순진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기자의 머리를 스쳤다. 이때 그는 넋두리처럼 몇 마디 덧붙였다. “얼마 전 이부영하고 만났는데…. 정말 이부영, 김근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표를 적게 얻었지만 최고위원이라도 하고, 부총재에 당선된다는 게…. 대의원이 전당대회 나오는 데도 돈을 줘야 하는 현실정치판에서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말이 나온 김에 “차라리 김근태, 이부영 등 정치철학이 비슷한 인사들과 제3세력을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인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부정적이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하지. 그런데 잘될까. 한두번 해봤나. 우리가…. 그들의 선택도 한길일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가는 이 길도 길이다. 상전벽해라고…. 나처럼 이런 길을 걸어온 사람이 국민에게 돋보이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한듯 “이제 정말 내 갈길 가겠다. 처음 그 정신으로 돌아가겠다”고 입을 악다물었다.

영원한 꿈, 새로운 정치세력

앞으로 그가 갈길이 궁금했다. 그러나 그는 또다른 실패를 우려한 듯 극도로 말을 아꼈다. “마음속으로는 기와집이야 얼마든지 지을 수 있지만. 지금 말하면 경망스럽다고 비판받을 것이다. 지금 이것도 잘 못하는 주제에…. 다만 마이웨이 하겠다.”

“도대체 그 마이웨이가 뭐냐”고 몇번을 캐묻자 속내를 내비쳤다. “새로운 정치세력 만들어야지….” 현실정치 진입에 거듭 실패해온 그는 아직도 정치세력화를 꿈꾸고 있었다.

“나는 철학있는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단 몇명이라도 새로운 이념을 가진 집단이 나와야 한다. 지금처럼 합종연횡을 통해서는 안 된다. 또 그냥 모이는 게 아니라, 내용적으로 정말 새로워야 한다. 우선 개인생활이 도덕적이라야 한다. ‘행동수칙’ 등을 정해놓고 약간은 종교집단 비슷하게 운영돼야 한다. 조금 유치하더라도 그런 생활을 통해 자기를 단련해야 한다. 둘째….” 그동안 기자들에게 “나는 정말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철학과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꼭 한번 집권을 해보고 싶다”던 그는 민국당을 통한 새정치 실험이 실패한 뒤 더욱 근본주의적인 자세로 돌아선 것 같았다. 문제는 현실성이었다. 그도 이런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속이 아주 오만한 사람이다. 문명사적 전환기에 걸맞은 새 정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이 일을 한다. 때문에 내 비판은 아주 근본적이고 래디컬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마음놓고 뛸 수 있는 정치공간이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 그 답답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입을 닫았다. “솔직히 이부영이나 김근태가 대권후보가 된다면, 그들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쳐 나설 텐데…. 김근태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민주당에 가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 내 비판은 그들이 그 당 안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을 대통령 만드는 데 봉사한다면 함께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지. 그들과 단결을 못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때가 아니다.”

글/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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