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공천

683
등록 : 2007-11-01 00:00 수정 :

크게 작게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류 기자 여기 ○○○ 의원 공천 좀 꼭 챙겨!”

“….”

“이 자리에서 약속해!”

“….”

농담으로라도 기자가 뭐라고 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얘기를 꺼낸 △△△ 의원이 술김에 한 농담으로만 와닿지도 않았다. 옆에 있던 ○○○ 의원은 무안한 표정을 질 뿐, △△△ 의원의 말을 끊거나 말리지 않았다. 최근 여의도에서 만나 저녁을 한 두 의원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 진 후보 쪽에서 일을 했다. 둘 다 지역구 의원이지만, 소속 정당의 집권보다 국회의원을 뽑는 2008년 총선을 놓고 근심에 싸여 있었다. 대선이 총선보다 시간적으론 가깝지만, 아무래도 좀 ‘먼 일’이다. ○○○ 의원의 경쟁자는 당내에 있다. 벌써 여럿이 거론되고 있다.


총선에 누가 나가냐는 당내 가장 큰 권력 게임이다. 경선 때 의원들의 당내 경쟁과 줄서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도, 한 꺼풀만 벗겨보면 총선의 전초전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경선에서 패한 그룹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의원은 마치 대통합신당의 의원처럼 걱정스레 말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겠지. 대선이 끝나면 한바탕 폭풍이 몰아칠 거야. 이겨내야지.” 그의 우려처럼 ‘폭풍’은 쇄신과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몰려온다. 승자는 자신과 다른 세력의 인물을 대폭 물갈이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이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를 준비 중이다. 요즘은 너무 바빠 보인다. 당의 대통령이 된 후보를 종종 따라다녀야 한다. 국정감사철이라 의정 활동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지역에 내려간다. 일찍부터 점찍은 곳은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다. 의원실의 형편이 그러 넉넉하진 않지만 지역에 사무실도 하나 냈다. 지역에 조직을 다질 믿을 만한 ‘국장’ 한 명을 상주시켰다. 당내에 손꼽을 만한 경쟁자는 없다. 지금 이 지역구의 주인은 한나라당 의원이다.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낮은 정당의 의원이나 의원 지망생의 고민은 한층 크다. 아무리 노력해도 큰 판에서의 싸움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이없이 결판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은 오는 12월19일 있을 대선 바로 넉 달 뒤에 치러진다. 대선의 승패가 총선에 그대로 투영될 가능성이 높다. 때마다 있는 일이지만 좋은 조건을 찾아 ‘철새’들도 생겨날 것이다.

물론 상대적 안전지대도 있다. 영호남이다. 지역주의 정서가 강해, 영호남에서 총선은 대선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과거 여당에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되고 갑론을박하는 과정이 있긴 했지만 사실상 최종적으로 공천권을 장악한 것은 대통령 아니었습니까. 이번 총선(2004년 4월15일)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공천 과정에서 전국구건 지역구건 단 한 명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어요. 행사할 수 없게 시스템이 갖춰졌어요.” 2004년 9월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의 말이다.

하지만 2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내년 총선이 김 전 의장의 말처럼 될 거라고 믿는 ‘바보’는 아무도 없다. 청와대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299개 배지의 주인공이 달라질 수 있다. 의원들은 누구보다 이걸 잘 안다.

참, ○○○ 의원의 공천을 부탁했던 △△△ 의원에게 어떻게 답했어야 할까? “근데요, 전 공천을 책임질 힘도 없거든요!”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