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성송연’(한지민)은 청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에 불려간다. 궁중 화가 옆에서 먹을 간다. 화가의 그림을 받아든 청나라 사신은 흡족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화답한다. “조선엔 세 가지가 좋다고 하더니 그림이 좋고…저리 이쁜 계집도 있다.” 눈치 빠른 조선의 대신들은 성송연을 청나라 사신에게 바치려 한다. 이때 정조 이산(이서진)이 성송연을 놔주라고 말한다.
드라마 <이산>의 한 토막이다. 이 짧은 장면은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대주의, 허약한 국력, 봉건왕조, 조선 시대 여성….’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에 위치한 미 대사관을 지나칠 때도 순간 비슷한 불편한 감정들이 스친다. 높은 담장에 철책까지 두른 대사관 옆을 뺑 둘러 줄줄이 서 있는 이들. 미국행 비자란 ‘선물’을 받으려면 자존심을 구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국력의 차이가 만들어낸 낯익은 풍경이다. 한국 땅을 밟으려는 동남아 이주노동자들도 한국 대사관 앞에서 줄서기를 한다.
힘의 차이가 만들어낸 풍경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인 여의도에서도 펼쳐진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를 빼곤 대선을 앞둔 각 당과 정치 세력의 후보들은 으레 미국 대사를 만난다. 언론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보다 만났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기사화한다. 하기야 여의도에서 청와대로 가려면 미 대사관 앞을 지나쳐야 한다. 미 대사관은 그렇게 한국 정치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미 대사관의 ‘1등 서기관’(국내 정치팀장)은 국회를 안방처럼 드나든다.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과의 약속도 손쉽다. 주미 한국 대사관에서 상상할 수 없는 부러운 일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조차 미국에 가 미 의회의 의원들을 만나 ‘낯도장’을 찍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격도 안 맞고 만나서 특별히 들을 얘기도 없을 텐데 뭣하러 만나냐고 한 정치인에게 물었더니 답은 이랬다. “그러게, 처음엔 뭔가 들을 게 있을까 싶었지. 몇 년 지나서 보니, 우린 얘기만 했지 듣는 얘기는 없어.” 정치인들 스스로가 미국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고 하면서,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나치게 의식하게 됐다. 한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은 바쁘다. 미국엔 중앙정보부(CIA)와 국무부 관리들로 짜인 한국 대선을 관찰하는 태스크포스(T/F)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팀원들은 올 들어 벌써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수십, 수백 명의 한국 정치인과 관료, 기자 등을 만났다. 국내 여론 동향과 대선을 더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다. 어느 범여권 인사는 한나라당 내 내밀한 정보를 미국 정보원들한테서 전해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여의도 정보도 미 대사관으로 모인다. 미 CIA와 국무부는 지난 두 번의 한국 대선을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이번엔 아주 신중하게 접근한다고 한다. 오판의 원인 분석이 재밌다. ‘한국의 친미지향적이고 보수적인 목소리에 지나치게 의존해 예측 능력이 떨어졌다’. 이번 대선은 미국의 예측이 맞을지 모른다. 여의도는 여전히 미 대사관에서 불러만 주면 다들 달려갈 준비가 돼 있는데다, 미국이 자신들의 시행착오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13일 630호를 끝으로 중단됐던 ‘정치의 속살’을 이번호부터 매주 다시 싣습니다.

(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힘의 차이가 만들어낸 풍경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인 여의도에서도 펼쳐진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를 빼곤 대선을 앞둔 각 당과 정치 세력의 후보들은 으레 미국 대사를 만난다. 언론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보다 만났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기사화한다. 하기야 여의도에서 청와대로 가려면 미 대사관 앞을 지나쳐야 한다. 미 대사관은 그렇게 한국 정치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미 대사관의 ‘1등 서기관’(국내 정치팀장)은 국회를 안방처럼 드나든다.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과의 약속도 손쉽다. 주미 한국 대사관에서 상상할 수 없는 부러운 일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조차 미국에 가 미 의회의 의원들을 만나 ‘낯도장’을 찍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격도 안 맞고 만나서 특별히 들을 얘기도 없을 텐데 뭣하러 만나냐고 한 정치인에게 물었더니 답은 이랬다. “그러게, 처음엔 뭔가 들을 게 있을까 싶었지. 몇 년 지나서 보니, 우린 얘기만 했지 듣는 얘기는 없어.” 정치인들 스스로가 미국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고 하면서,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나치게 의식하게 됐다. 한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은 바쁘다. 미국엔 중앙정보부(CIA)와 국무부 관리들로 짜인 한국 대선을 관찰하는 태스크포스(T/F)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팀원들은 올 들어 벌써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수십, 수백 명의 한국 정치인과 관료, 기자 등을 만났다. 국내 여론 동향과 대선을 더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다. 어느 범여권 인사는 한나라당 내 내밀한 정보를 미국 정보원들한테서 전해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여의도 정보도 미 대사관으로 모인다. 미 CIA와 국무부는 지난 두 번의 한국 대선을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이번엔 아주 신중하게 접근한다고 한다. 오판의 원인 분석이 재밌다. ‘한국의 친미지향적이고 보수적인 목소리에 지나치게 의존해 예측 능력이 떨어졌다’. 이번 대선은 미국의 예측이 맞을지 모른다. 여의도는 여전히 미 대사관에서 불러만 주면 다들 달려갈 준비가 돼 있는데다, 미국이 자신들의 시행착오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13일 630호를 끝으로 중단됐던 ‘정치의 속살’을 이번호부터 매주 다시 싣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