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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논산이 여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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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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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P 공조 논산시장 보궐 선거 딜레머… 대권주자들간 역학관계 맞물린 고차방정식

사진/논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DJP 공조 유지 여부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국민의 정부 출범 3주년 기념 만찬단에서 민주당과 자민련 핵심 인사들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민주당 의원의 자민련 임대’라는 엽기적 수단을 동원해 DJP 공조를 복원한 민주당과 자민련이 오는 4월26일 치러질 논산시장 보궐선거 때문에 또다시 삐걱대고 있다. 자민련은 민주당 소속 전일순 시장이 선거법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치러지는 논산 보선에서 시장후보 공천권을 양보할 것을 민주당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논산지구당위원장인 이인제 최고위원의 연고권과 차기 대권과 관련한 당내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린 이 문제에 대한 조정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다.

배타적 독점권 내세운 자민련의 요구

자민련의 태도는 명확하다. “충청권에 대한 자민련의 배타적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양당공조를 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논산시장 공천은 자민련과 민주당간에 뒤엉켜 있는 충청지역 연고권 등 온갖 난제를 풀 수 있는 시금석이다. 이것은 JP의 확고한 생각이기도 하다.”(김현욱 자민련 지도위의장) 충청권 전체가 자민련의 지역기반인 만큼 논산을 자민련 몫으로 돌려주는 게 공조복원 정신에 합치될 뿐 아니라 앞으로 공조유지 여부를 가늠할 핵심고리라는 것이다.


자민련은 지난 3월5일 총재단회의에서 이런 방침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민주당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시작했다. 오장섭 자민련 사무총장은 같은 날 오후 박상규 민주당 총장과 4·26 재보선이 실시되는 서울 은평, 부산 금정, 경남 사천, 전북 임실, 충남 논산 등 5개 지역에 대한 연합공천 문제를 논의하면서 “논산을 달라”고 정식 요구했다. 오 총장 등 자민련 지도부는 최근 “호남은 민주당, 충청은 자민련이 공천한다는 큰 원칙에 합의했으며 이는 내년 4대 지방선거에도 적용된다”고 밝히면서 임성규(도의원), 박원래(자유총연맹 논산지부장)씨 등 10여명의 후보군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공천 작업에 착수했다. 충청권에 대한 자민련의 배타적 공천권 행사를 기정사실로 굳히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자민련의 이런 공세를 일단 “논산의 경우 지구당위원장인 이인제 최고위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받아넘기고 있다. 박상규 총장은 자민련의 ‘충청권 공천 보장설’에 대해 “자민련이 논산에 연합공천 후보를 내고 싶다고 요청해 논의키로 했을 뿐”이라며 부인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자민련의 계속되는 공세에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논산시장 공천은 단순히 ‘자민련에 양보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기싸움’ 정도가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우선 이번 선거는 양당공조 복원 뒤 첫 선거인만큼 앞으로 있을 각종 선거에서 연합공천 등 DJP공조의 기본방향을 확정하는 이정표가 된다. 민주당이 자칫 자민련의 심기를 자극할 경우 ‘의원임대’라는 무리수를 동원해 복원한 공조틀이 균열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민주당 안에서도 “일단 양보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민주당 한 핵심당직자는 “연합공천에는 명확한 원칙이 있어야 하지만, DJP공조가 우여곡절 끝에 막 회복단계에 들어선 만큼 논산은 원칙 이전에 정치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조유지가 급선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논산 문제는 민주당안 대권주자들 사이의 미묘한 역학관계와 내년 4대 지방선거 및 대통령 선거전 공천문제까지 걸려 있어 말처럼 쉽게 답을 찾기 어렵다는 데 민주당의 고민이 있다. 우선 이인제 최고위원의 연고권 문제. 공천권 양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논산·금산 지구당위원장인 이 최고위원의 양보와 결단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은 양보와 고수 두 방안을 놓고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열심히 주판알을 두드릴 뿐 좀체 결단을 못내리고 있다. 이 최고위원에게도 정치생명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이 최고위원은 충청권의 확고한 자기 기반이 필요하다. 당내 다른 대권주자와의 내부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내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에 선출되기 위해서는 충청권 대의원 한자리가 아쉬운 실정이다. 쉽게 양보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40년간 충청권의 맹주 노릇을 해온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와 관계도 걸려 있다. 자민련 한 핵심당직자는 이 최고위원과 JP와의 이해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인제가 충청권을 장악하려면 JP의 인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먼저 JP의 역할과 몫을 인정해야 한다. 당장 논산 한 군데를 잃는 듯하지만 충청향우회나 충청인 일반의 정서 등을 본다면 얻는 게 더 많다.”

이인제 최고위원의 양보와 결단이 중요

사진/이인제 최고위원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이 최고위원이 충청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JP의 '인준'이 필요한 탓이다.
이 최고위원쪽도 이런 설명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때문에 최근 JP와의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손익분기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게 이 최고위원의 고민이다. 지난해 4·13총선 때 JP를 “서산에 지는 해”에 비유해 사이가 크게 틀어졌던 이 최고위원은 최근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는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을 인용하며 관계 개선에 잔뜩 공을 들여왔다. JP도 잠시 화답하는 듯했다. 2월27일 주한 일본특파원들과 만찬 간담회에서 “조만간 만나기는 하겠다”고 틈을 열었다.

그러나 논산시장 공천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제가 꼬였다. 김창수(대전 대덕) 위원장 등 충청권 지구당위원장들이 이 최고위원과 민주당 지도부에 “그러면 우리는 뭐냐”면서 “공천권을 포기하면 탈당을 포함한 중대결단을 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JP와의 화해를 위해 섣불리 양보하면 대권후보 선출 때 자신을 지지할 가장 확실한 기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 이 최고위원은 결국 “지구당위원장이 공천권을 가져야 한다. 우리 당에도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당장 출마해도 당선될 사람이 4명 정도 된다”며 나름의 연고권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JP의 태도도 다시 냉랭해졌다. 3월7일 일본 출국에 앞서 JP는 ‘이 최고위원을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가로저었다. JP의 최측근인 한 고위당직자는 “‘만나는 보겠다’는 JP의 말은 공천권 양보와 같은 그런 것들이 지도자로서 인격과 도량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되는 만큼 잘 처신하라는 것이었는데, 이 최고가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고 너무 좁게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이 최고는 여전히 좌고우면하고 있다. 참모진들 사이에서는 “공천을 양보하고 JP의 확실한 도움을 받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고민하던 이 최고위원은 3월8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최고가 결단을 내야 한다”는 김중권 대표와 박상규 총장 등 당 지도부의 요구에 “당이 내년 전국적인 지방차치 선거 및 양당간 공조와 관련한 원칙과 기준을 정해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일단 지도부에게 공을 떠넘겼다.

이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현실을 토로했다. “양당 공조는 필요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민련의 요구 밑바닥에는 충청은 모두 내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고, 자칫 충청권을 모두 양보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우리도 우리지만 지구당위원장들이 더 난리다. ‘이인제도 빼앗기는데 원외는 설 땅이 없다. 탈당하겠다’고. 자민련에 선물로 주고 싶어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 인사는 “이 최고 개인의 결단문제가 아니다. 공조와 충청권 지구당위원장 모두가 중요한 만큼 당 지도부가 어떻게 적절히 조화할 것인지 고민하고 자민련과 협상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충청권에 대한 명확한 지분보장과 충청권 원외위원장의 동요 방지책 등 적절한 해법을 지도부가 찾아달라는 것이다.

공조 원칙·기준 부재… 모두 잃으란 말인가

사진/김대중 대통령이 논산 해법을 위해 직접 나서기도 힘든 상항이다. DJ와 JP의 청와대 만찬 모습.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 역시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최고위원의 이런 요구를 충족시킬 뾰족한 묘안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고민은 이 요구를 들어줄 만한 책임있는 인사가 민주당에 없다는 것이다. 김중권 대표는 “이 최고위원이 결단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김 대표는 자민련과 공조유지쪽에 무게를 두고 이 최고가 양보해야 한다는 쪽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관측이다. 김 대표쪽 한 핵심당직자는 “이번에는 자민련에 주는 게 정치적 순리에 맞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지난 7일 전용학 의원과 함께 대책마련을 요구하러 찾아온 충남도지부 인사들에게 “민주당 후보를 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자민련과 공조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결론이 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명목상 당의 수장인 김 대표가 드러내놓고 이 최고위원의 양보를 요구하기는 좀 난처한 면이 있다. 김 대표는 이 최고위원과 차기 대권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다. 더욱이 김 대표가 ‘영남후보론’을 주창하고, JP에게 밀착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이 최고위원과 감정적 대립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김 대표가 이 최고위원의 충청권 지분을 명확히 보장하지 않고 자민련에 공천권 양보쪽으로 당론을 무리하게 몰아갈 경우 이 대표의 반발은 불보듯 빤하다. 논산문제가 민주당 대권주자간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설사 논산공천을 양보한다 해도 숙제는 남는다. 민주당 조직국 한 핵심관계자는 “정치적 고려로 이번에 논산을 자민련에 양보할 수 있지만, 이것이 관행이 돼 자민련이 내년 지방선거에서까지 충청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까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총선에서 충청지역 21개 지역구 가운데 민주당이 8석을 얻는 등 약진했는데, 무작정 양보할 경우 민주당은 다시 호남당으로 전락한다. 때문에 연합공천의 원칙과 조건, 한계가 명확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논산시장 공천권 양보가 자칫 충청권에 대한 민주당의 완전포기로 읽히면 민주당 조직 자체가 와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민련 자도부는 논산을 달라는 이유가 “충청권에 대한 배타적 권리 보장”을 의미하며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민주당에서는 이런 안팎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할 때 당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최고위원에게 모종의 안정장치를 마련해 주거나 최소한 민주당 차원에서 이 최고위원과 JP가 내년 지방선거 공천문제 등을 교통정리 할 수 있도록 중간다리를 놔주면서 이 최고위원을 지원사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DJ가 나서는 것도 간단치는 않다. 일단 DJ가 이 최고위원에게 논산 양보를 요구하고 뭔가 보장을 한다면 이것은 곧 김 대표를 비롯한 당내 다른 대선주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 김 대통령 또한 이 최고가 유일한 정권재창출의 대안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 이상 이런 행동을 할 가능성이 없다는 게 정치권의 보편적 분석이다.

철벽공조 물밑으로 치열한 전쟁 치른다

사정이 이렇게 미묘하다보니, 결국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식창구인 박상규, 오장섭 두 총장에게 해결책이 맡겨진 형국이다. 그러나 오 총장은 “충청권에 대한 자민련의 배타적 권한 보장”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자민련 다른 한 핵심당직자도 “저쪽과 타협해 뭘 더 얻어내겠다는 게 아니라, 공조가 복원된 만큼 우리가 잃었던 지분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박병석 의원의 지역구에서 벌어진 지난해 10월 대전서구청장 선거 때도 민주당 후보와 경쟁해 우리가 승리한 경험이 있다”며 결코 타협이나 양보는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8일부터 한나라당은 “독자후보를 못내는 정당인 만큼 아예 합당하라”며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천갈등을 부채질하며 틈 벌리기에 나섰다.

결국 애타는 사람은 박상규 민주당 총장이다. 대권주자들간 복잡한 역학관계와 자민련과 공조가 걸린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 총장은 3월10일에는 일본에 머물고 있는 JP까지 찾아나서는 등 백방으로 뛰고 있다. 박 총장은 일단 이 최고위원과 JP가 직접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박 총장의 한 측근 인사는 “결국 충청권에 대한 각자의 연고권을 주장하는 이 최고와 JP가 만나서 푸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이 최고도 당에서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 분위기를 띄워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인사는 “둘 사이에 논산문제가 잘 풀릴 경우 이 최고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다른 대권주자들, 특히 김중권 대표가 갑갑해할까 걱정”이라며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정말 좁다”고 하소연했다.

김중권 민주당 대표와 김종호 자민련 총재권한대행은 지난 3월7일 대표회담을 갖고 양당 합동 의총, 양당 합동 3역회의 등을 통해 합당수준에 가까운 ‘철벽공조’를 다짐했다. 그러나 그 다짐은 구호일 뿐이다. 현실에서 양당은 논산시장 공천권을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와 대권 주자들조차 서로의 정치적 이해가 첨예하게 맞물린 논산 보선이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지 못한 채 그저 고심하고 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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