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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물 새는 빈배’의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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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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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자민련과의 연정, 잘되면 뭍에 오르고 안 되면 완전히 가라앉는다

사진/지난 3월5일 열린 민국당 최고위원·고문 연석회의. 논란 끝에 오는 3월23일 전당대회에서 연정안을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이용호 기자)
민주국민당이 창당 1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 2명뿐인 초미니 정당의 무기력을 절감한 김윤환 대표가 생존을 위한 묘책으로 내놓은 민주당-자민련-국민당의 ‘3당간 정책협의에 의한 연정’ 제안을 놓고 당이 내분에 휩싸인 것이다.

오랜 구애 끝에 찾아온 기회

김 대표는 지난 2월22일 오전 서초동 자택을 찾은 기자들에게 ‘3당연정’ 문제가 깊숙이 논의됐음을 털어놓았다. “어제 김종필 명예총재, 지난주 김중권 민주당 대표, 청와대 고위관계자와 만났다. 이들이 원내 과반 확보를 위한 협조를 부탁했고, 나는 정책협정에 의한 연정형태로 국정을 운영하자는 뜻을 전했다.” 김 대표는 “3당이 주요 정책에 대한 대략적인 합의를 한 뒤 국민에게 천명하고, 내각과 당정협의, 국정협의에도 모두 참여해야 한다. 소수끼리 정국을 이끌다보면 정권창출도 같이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YS도 같이 가는 게 좋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민국당과 권력분점이 연정의 핵심이며, 이 방안은 ‘3김연대’ 등 이른바 ‘반창연대’를 통한 정권재창출로 가는 묘수임을 은근히 과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묘수는 오히려 민국당을 발칵 뒤집고, 김윤환 대표의 정치적 생존마저 위협하는 요소로 발전했다. 연정계획에 대해 장기표·허화평 최고위원 등은 “민국당을 민주당의 들러리로 만들 뿐”이라며 반발했다. 김광일 최고위원은 2월23일 아예 탈당했다.

20여명의 지구당위원장들은 2월27일부터 여의도 당사 5층 일부를 점거한 채 “신3당 야합 분쇄”와 “김윤환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의 비판은 원색적이다. “김 대표가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자 DJ에게 잘 보여 감옥에 안 가려고 연정이란 미명 아래 여권에 민국당을 팔어넘기려는 한다”(오완선·광주북갑 지구당 위원장), “국민은 야당하라고 2석을 줬는데 제구실은 못하고 집권당과 야합을 하고 있다. 국민과 당원에 대한 배신행위다”(김명기·서울 동작갑 지구당 위원장)….

김 대표는 이런 비판에 대해 “미니 정당으로서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연정이 불가피하다. 당에는 연정 제의에 찬성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며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사실 김 대표가 여권에 연정을 제안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4·13총선 패배 직후인 지난해 5월1일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일본식 연정’을 주창했다. 서로 이해가 맞는 각 정당이 정책연합을 통해 법안통과 등 국회의 주도권을 잡자는 것이다. 김 대표는 그뒤에도 “어느 정당도 2002년 대선에서 독자적인 정권창출이 어렵다”는 논리를 앞세워 여권 핵심들에게 연정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여권의 응답이 없었고,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오히려 민국당 내부에서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불러왔고, 김 대표는 그때마다 “이야기가 와전됐다”는 식으로 피해갔다.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여권이 이른바 ‘반창연대’를 통한 정권재창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김 대표의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김중권 민주당 대표가 최근 “정책연합을 위한 협의기구를 만들 생각”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김윤환 대표쪽은 오랜 구애 끝에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결의에 차 있다. “솔직히 우리 당의 진로는 세 가지밖에 없다. 여권과 연정으로 제몫을 찾든지, 한나라당과 연합해 야당 역할을 하든지, 아니면 현재처럼 독자성을 유지하며 시간과 때를 기다리든지…. 그러나 한나라당은 우리와 연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독자생존은 말은 좋지만 무엇보다 당 소속 현역의원 2명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지방선거 때는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전락한다. 결국 길은 3당연정밖에 없다.”(윤원중 사무총장)

김상현·이수성 위원은 ‘연정 찬성’

사진/지난 2월27일부터 여의도 당사 5층 일부를 점거한 채 "김윤환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민국당 지구당 위원장들. 연정이 이뤄질 경우 대다수 지구당 위원장들로선 좋을 게 하나도 없다.(이용호 기자)
만약 연정이 성사되면 김 대표는 가장 확실한 수혜자가 된다. ‘영남권 후보론’ 등을 매개로 내년 대선전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할 수도 있다. 김상현, 이수성 최고위원도 연정에 찬성하는 쪽이다. 김상현 최고위원의 경우 전국구인 강숙자 의원이 연정에 따른 권력배분으로 입각하면 자신이 의원직을 승계받을 것을 내심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마당발’인 김 최고위원은 민주당 및 YS와의 오랜 연줄을 무기로 대선 판짜기에서 나름의 역할을 모색할 수도 있다. 최근 상도동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이수성 최고위원도 연정이 밑질 게 없는 장사다.

초미니 정당 소속 의원의 한계를 절감해온 한승수·강숙자 두 의원도 적극적이다. 두 의원은 “사는 길이 그것밖에 더 있느냐”며 연정 지지의사를 분명히 했다. 연정이 이뤄져 자신들이 민국당 몫으로 입각할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외 지구당 위원장들은 얻을 게 별로 없다. 단식 농성중인 영남권 한 지구당 위원장은 “영남에 기반하고 있는 민국당이 제 역할도 못하고 자꾸 여당편만 들다보니 지역에서는 명함조차 내밀기 어렵다”면서 “민주당과 합친다면 차라리 탈당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농성에 참여한 수도권 및 호남쪽 지구당위원장들도 “결국 여당 위원장들에게 지구당을 내주는 사태가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때문에 이들은 김 대표가 3당연정을 밀어붙일 경우 법원에 ‘대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공천헌금과 관련한 김 대표 구속 재판을 요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이다.

몇몇 최고위원들은 원칙과 절차, 실효성 등에 의문을 제기하며 연정에 반대한다. “당 정책을 관철하고 명분과 실리를 얻는 연정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김 대표는 사전에 당론이나 국민 여론을 모으는 어떤 작업도 하지 않았다. 대표가 여당과 연정을 논의했다지만 실제 보장된 내용은 전혀 없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 결국 민국당은 ‘여당의 2, 3중대’란 비난만이 돌아온다.”(장기표 최고위원) 신상우 최고위원쪽도 “민국당 대표인 허주가 영남후보론을 역설하는 등 민주당 대권후보에 대해 왈가왈부하면서 연정을 제안하는 것은 원칙과 절차 모두 잘못된 것”이라며 반대했다. 결국 이런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리면서 연정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꼬이는 양상을 보였다. 김 대표도 지난 2월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내 의견수렴을 거쳐 3월5일 최고위원·고문 연석회의에서 확정짓자”며 한발 물러서는 듯했다.

그러나 5일 연석회의에서 김 대표는 나름의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이날 회의에서 김상현 최고위원은 반대의견을 낸 최고위원들과 물밑 접촉을 거쳐 마련한 중재안을 김 대표에게 제시했다. ‘연정을 포함한 당의 진로를 적극 모색하되, 김 대표가 상임고문으로 물러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중재안을 거부하고, 전당대회를 열어 재신임을 묻겠다고 맞섰다. 최고위원들은 논란 끝에 오는 3월23일 전당대회를 개최해 대표신임을 단일 안건으로 다루되 신임이 확정되면 연정안도 받아들이기로 절충했다. 김 대표의 정치생명은 당원 전체의 선택으로 넘어간 셈이다.

허주의 결심, 정면돌파!

김 대표의 선택은 사실상 정면돌파에 가깝다. 김 대표는 그동안 최고위원회의에서 연정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자신과 친한 인사들이 다수 포진한 당무회의 의결로 이를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농성중인 지구당 위원장들과 장기표 최고위원 등 반대론자들은 “당의 정체성과 존재가치에 대한 도전인 만큼 당원 전체의 의견을 묻자”고 요구했고, 김 대표는 한동안 고심했다. 더욱이 연정 반대론자들이 당원들을 상대로 전당대회 소집 서명을 받는 등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자 김 대표 측근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전당대회를 통해 정면돌파하자”는 의견이 떠올랐다. 김 대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결국 전당대회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김 대표와 민국당은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김 대표가 3월23일 전당대회에서 불신임받을 경우 그의 정치적 몰락은 불가피하다. 킹메이커의 역할을 되찾겠다고 내놓은 ‘제 꾀에 제 스스로 넘어가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후 새 지도부가 들어서도 민국당의 활로가 보장될지는 미지수다. 민국당의 존재가치나 다름없는 한승수, 강숙자 두 의원이 현상유지를 통해 다음 기회를 엿보는 방안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재신임을 받더라도 상당기간 혼란이 예상된다. 농성중인 지구당 위원장들은 “전당대회 결과를 지켜보겠다”면서도 “부당한 선택을 강요한다면 갈 길은 뻔한 것 아니냐”면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몇몇 최고위원들도 “그동안 탈당하고 싶어도 명분이 없었는데, 오히려 잘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김 대표의 ‘3당연정’이라는 묘수풀이는 궁색하게 1년을 벼텨온 민국당에게 또 한번의 도전을 안긴 셈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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