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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반창연대’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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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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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YS+JP+민국당+한나라당 일부세력을 묶는 대규모 정계개편은 실현될 것인가

사진/DJP의 확고한 공조 속에서 추진되는 'DJP+α'는 반이회창 연대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청와대사진기자단)
“정치구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물밑에서 진행중인 것 같다. 반창연대라고 할까. 상반기에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여권 핵심에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뿌리깊은 것 같다.”(민주당 고위당직자)

“여권의 움직임이 솔직히 염려스럽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3당간 정책연합, 또 더 발전시켜 DJ와 YS, JP의 연대까지 가는 것은 문제다. 결국 귀결점은 반이회창총재연대가 아니겠는가. 특히 DJ와 YS가 큰 줄기는 다르지만 지역주의에 기대서 부활하고 그 아류들이 후계자로 포진하는 상황이 오면 심각하게 손익을 따져봐야 한다.”(이회창 한나라당 측근)

JP가 주연, 허주가 조연


사진/YS의 서예전을 찾은 김중권 대표.(국회사진기자단)
정치권에 이른바 ‘반창연대’(반이회창연대)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주역은 DJ, YS, JP 등 3김. 여기에 지난 총선에서 이회창 총재에게 ‘팽’당한 뒤 절치부심해온 허주(김윤환 민국당 대표의 아호)가 조연을 자임하고 있다. 산파 역으로는 지난해 총선 참패 이후 내내 정치적 겨울잠 상태에 있다 올 초 자민련의 교섭단체구성 이후 본격 기지개를 켠 JP가 맡고 나섰다.

실제 이들을 묶어세우려는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최근 행보는 심상찮다. 지난 2월21일 김윤환 민국당 대표와 오찬을 함께하며 ‘민주당+자민련+민국당’의 3당 정책연합을 논의한 데 이어 이날 저녁에는 민주당 개혁파 리더인 김근태 최고위원과 자리를 함께하며 운신의 폭을 넓혔다. 다음날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예전을 찾아가 6년 만에 화해의 물꼬를 텄다. 이날 회동에서 JP와 YS는 지난 95년 1월 당시 민자당 대표였던 JP가 YS에 의해 ‘팽’당한 앙금을 완전히 씻어내려는 듯 덕담을 주고받은 뒤 15분간 밀담까지 나누고 재회를 약속했다. 이어 3월2일에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DJP회동에서 선거공조를 포함한 ‘확고한 공조체제 유지’를 재확인했다.

정치권에서는 JP의 이런 활발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JP를 매개로 한 ‘3김+허주’의 반이회창연대가 가시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DJP 회동-자민련 교섭단체 구성-3당 정책연합 등 여권이 세불리기를 위해 준비한 듯한 시나리오가 착착 현실로 확인되고 있는 점도 이런 분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 연말 연초 DJP공조가 확고히 다져지면서 여권의 정국운영 방향이 이미 힘과 수의 우위에 의한 정국주도권 확보쪽으로 잡혀졌다. 따라서 그 연장선상에서 ‘DJP+α’가 추진되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결국 이런 흐름이 차기 대선구도로 이어지면 반이회창연대의 구체화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민주당 동교동계 의원) 정권재창출을 확신하지 못한 여권이 YS와 허주를 끌어들이는 대규모 정계개편의 시동을 건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권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대립각을 세워야 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쪽은 정작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우선 여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것인 만큼 끼여들 여지가 별로 없는 탓도 있다. 또 이 총재 주변에서 3김+허주의 ‘반이회창연대’ 가능성과 파괴력에 대해 “DJ와 YS, 허주의 서로 다른 정치 셈법과 이질적인 요소 때문에 잘 안 될 것”이라는 전망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것도 이 총재쪽의 적극적인 행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우리로서는 솔직히 대안이 마땅치 않다. 여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지금 이회창 총재가 나서 일일이 정치퇴물들의 퇴행적 행보라고 악쓰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우리 판단으로는 이질적인 인간들 사이의 연합이므로 잘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3김 연합이든, 3당 연대이든, DJ, JP, YS, 허주 등의 정치적 입지를 일시적으로 강화시켜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지역을 매개로 한 퇴행적 연합이라는 점에서 그들을 옥죄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핵심측근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다음 대선까지는 지역구도와 맞물려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각기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는 DJ와 YS, JP, 허주가 차기 대선을 겨냥해 한목소리를 내게 된다면 심각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확신할 만한 차기주자 부재의 딜레마

사진/YS의 서예전을 찾은 JP. YS와 JP는 15분간 밀담까지 나누고 재회를 약속했다.(이용호 기자)
대선구도의 재편을 겨냥한 이런 반이회창연대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일단 정치권에서는 반이회창연대의 조건이 마련돼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이의를 달지 않는다. 우선 3김씨 사이에 “이회창 총재는 안 된다”는 거부감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3김의 거부감은 상수로 봐야 한다. 게다가 ‘이회창 대통령’은 곧 3김의 정치적 퇴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 3김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상도동 사정에 밝은 야권인사)

여기에 여권 내 정권재창출을 확신할 차기주자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도 여권을 반이회창연대에 적극 나서도록 유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3김연대의 출발점은 무엇보다 여권 내 사정이다. 확실한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이 총재를 능가하는 슈퍼 후보를 찾아내 득표력에서 앞서거나 이 총재의 득표력 기반을 무너뜨리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그러나 연말 연초 DJP 공조를 회복해 겨우 이회창 대세론에 제동을 건 여권에 슈퍼 후보가 있을 리 없다. 결국 방법은 하나다.”(민주당 관계자) 여권이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DJ의 호남권과 JP의 충청권을 묶는 한편 YS와 김윤환이 일정부분 이 총재의 영남권 득표력을 잠식하는 구도말고는 별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 총재 포위전략이 실제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명분 때문이다. 실제 여권 내부에서도 반이회창연대가 신3김의 등장에 따른 구태정치의 재현으로 비쳐져 여론의 반발을 살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지금은 정국안정을 통해 임기 후반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3김이 나오면 ‘3김 청산이 언제적 얘기인데 또 3김이냐’고 할 것이다. 국민적 거부감이 만만치 않고 정국이 한 차례 소용돌이 칠 것이다. 여권의 정국운영 프로그램상 3김연대니 정계개편이니 하는 불확실한 요인으로 정국을 시끄럽게 할 때가 아니다.”(청와대 관계자) 정치권에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반이회창연대가 실현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실제 한나라당에서는 반이회창연대가 본격화하면 ‘3김정치의 부활’로 몰아붙여 이 총재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그동안 이 총재가 아무리 ‘새 정치’를 외쳐도 3김과 별차이 없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3김이 한쪽으로 확실히 모이면 이 총재가 이들과 대립각이 세워지면서 ‘이 총재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3김과의 전선이 명확해지면 이 총재와 3김의 차별성을 국민에 설득하기 쉬워지기 때문에 손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3김 연대는 호소력이 있을 것인가

정권교체 이후 거듭된 DJ와 YS의 감정섞인 대립도 걸림돌이다. YS의 대변인격인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은 “3김연대에 대해 지금 뭐라고 얘기하긴 어렵다”며 가능성을 닫아놓지는 않았지만 “DJ가 우리에 대한 일련의 정치보복을 직접 사과하든지 하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DJ와 손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둘 사이에 예쁜 모양을 만들기에는 진도가 너무 나갔다”고 DJ와 YS의 관계회복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점쳤다. 또 반이회창연대의 핵심사안인 차기주자의 조정도 진통이 예상된다. 이 밖에 조연으로서의 역할이 예상되는 김윤환 민국당 대표의 경우 벌써부터 3당 정책연대에 반대하는 당내분위기 때문에 내홍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선이 가까와지면서 어떤 형태든 반이회창연대가 구체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민주당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3김정치 부활에 비난여론이 쏟아지겠지만 그것이 꼭 역풍으로만 작용할 것으로 볼 수는 없다. YS, JP가 퇴물소리 들어가면서도 지금까지 현실정치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을 보라. 힘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뜰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도동쪽 사정에 밝은 야권 인사도 “여론의 반발이 있겠지만 3김의 효과는 나온다. 한국정치는 기본적으로 지역싸움이다. 영남권은 느슨하겠지만, 호남+충청+영남의 일부가 묶이면 막강한 파괴력이 있을 것이다. 특히 3김이 지나간 레퍼토리지만 ‘국가에 대한 최후의 충성’ 등 명분을 내걸고 나서면 DJ, YS, JP 모두에게 지금보다 좋으면 좋았지 더 나빠질 게 없다”고 내다봤다.

더 나아가 반이회창연대가 좀더 확실한 실효를 거두려면 결국 정계개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이회창연대의 핵심은 한나라당 가르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총재가 과거 어느 야당 총재보다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것은 지난 연말까지 계속된 ‘이 총재 대세론’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총재로는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면 한나라당에서 뛰쳐나올 사람이 적지않을 것이다. 계기는 몇 차례 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있고, 내년 지자체선거도 있지 않느냐.”(자민련 핵심 당직자) 한나라당의 분열을 전제로 DJ+YS+JP+민국당+한나라당 일부세력을 묶는 대규모 정계개편 가능성을 점치는 것이다.

한나라, 태스크포스팀 꾸려 대응 준비

사진/지하철로 출근하며 민심을 살피는 이회창 총재. 반이회창연대가 본격화할 경우 '3김정치의 부활'로 맞받아칠 계획이다.(국회사진기자단)
실제 JP는 지난 2월27일 주한 일본특파원들과의 만찬자리에서 “한나라당에는 이데올로기가 다른 여러 계파가 공존해 있기 때문에 교섭단체 요건을 15석 정도로 낮추면 계파별로 쪼개질 가능성이 있다”고 심중의 일단을 드러냈다. 더욱이 DJ와 JP는 지난 3월2일 청와대 회동에서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섭단체 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공동노력하기로 합의해 DJ와 JP 사이에 서로 모종의 교감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 이후 여권이 개헌론을 들고나오며 정치지형에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김 위원장의 서울답방에서 평화선언 같은 것이 나오면, 여권에서는 한반도 평화시대에 걸맞은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개헌논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정·부통령제 도입 등을 축으로 해서 차기대선을 겨냥한 짝짓기나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있다. 각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대응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쟁적 공존관계를 지성하며 몇십년간 한국정치를 주물러온 3김이 반이회창 연대를 통한 새로운 활로개척에까지 이를지 주목된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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