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1돌 맞은 민주노동당, 전국연합과의 통합 놓고 고심
2월25일 새벽 3시께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크라운관. 창당 1돌을 맞은 민주노동당의 올해 사업계획과 2002년 대통령선거 및 지방선거의 기본방침을 정하는 정기당대회장은 치열한 심야 논쟁으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재창당을 추진하면 민주노동당의 당명도 없어지는 것 아니냐”, “지도부가 당원들의 뜻과 상관없이 전국연합과 상층부끼리 합당하려는 것 아니냐”…. 몇몇 대의원들이 이렇게 목청을 돋웠다.
‘진보정당 건설’은 피할 수 없는 대세
이날 논란은 지난해 4·13총선 패배 뒤 외연확대 방안을 고민해온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내년 대선에 대비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등 진보적인 정치·사회단체와 연대를 통한 재창당을 모색하면서 비롯됐다. 당 지도부는 이날 전당대회에 재창당추진위를 설치하자는 안건을 내놓았다. 사실 외연확대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오랜 숙원이면서도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 당원 3만명 확보 목표는 현재 1만9천명선에서 정체돼 있다. 창당 1년을 맞았지만 유력한 연대 대상이었던 시민단체나 한국노총과의 결합도 여의치 않다. 농민 조직의 참여는 전무한 실정이다. 결국 “진보세력의 총결집을 통해 이땅의 일하는 사람들의 당을 만들겠다”는 민주노동당의 꿈은 가로막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민주노동당에게 희망을 주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진보진영의 한축을 형성하면서 전농과 한총련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전국연합이 지난 2월18일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 방안을 검토”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이때부터 전국연합과의 통합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권영길 대표는 “앞으로 전국연합과 정기적으로 만나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며 상당한 진전이 있음을 내비쳤다. 전국연합의 이번 결정은 진보진영 전체에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전국연합은 “진보정당 건설은 이땅 민중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취했다. 전농과 한총련도 민주노동당에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전국연합의 결정으로 진보진영 안에서 ‘진보정당 건설’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진 것이다. 전국연합과 연대가 가시화될 경우 민주노동당은 최대 취약점인 농민층을 파고들 여지가 생긴다. 또 한총련이 참여하면 당장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전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돈과 조직에서 열세인 민주노동당에 학생운동 내 최대조직인 한총련이 합세할 경우 전국에 걸쳐 엄청난 자원봉사자를 얻는 셈이다.”(박용진 민주노동당 강북을지구당 위원장) 이런 상황 판단 속에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전국연합과의 통합을 통한 재창당에 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날 전당대회에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진보정당 건설을 부정해온 전국연합과의 재창당 논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주장이었다. 사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당대회 이전부터 “당원들이 재창당 문제를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데다, 재창당을 한다 해도 진보정당의 대의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이질적 집단과의 결합인 만큼 선거에서 당론을 힘있게 결집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야기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재창당추진위 설치안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당대회를 통과됐다. 박흥순 기획위원장 등은 “당명은 당원 전체투표로 바꿀 것이며, 전국연합에 당의 이런 특수성을 설명하고 미래를 모색해보자고 합의했다”며 재창당에 회의적인 대의원들을 설득했다. 대의원들은 일단 이런 지도부의 뜻을 받아들였다. 정체성 혼란 우려하는 내부 목소리도 그러나 이런 결정에도 불구하고 앞날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전국연합이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방안 검토”를 선언했지만 이것이 곧바로 민노당과의 통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 호남지역 농민단체가 핵심인 전농이 민주노동당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민주당과의 관계설정 등 현실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전국연합과의 연대가 진보정당의 정체성 혼선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민주노동당 내부의 비관적 시각도 넘어야 할 과제다. 일부 통합반대론자들은 “무리하게 당을 통합할 경우 이탈세력이 생겨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 핵심 당직자도 “이번 당대회에서는 아직 논의단계인 만큼 재창당추진위가 인준됐지만, 조직간 통합 등 재창당 문제가 가시화될 경우 어떤 논란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재창당추진위 설치로 외연확대를 위한 닻은 올렸지만 순항을 장담할 수는 없는 셈이다. 권영길 대표는 이와 관련해 “전국연합과의 논의진행을 곧바로 민주노동당의 내용 변화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정책변질이 없는 속에서 충분히 논의하겠다. 통합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진보진영의 총결집을 훼손하는 것으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창당 1년을 넘긴 민주노동당은 이제 조직의 외연확대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지난 2월 25일 열린 민주노동당 정기 당대회. 재창당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됐다.(이용호 기자)
이날 논란은 지난해 4·13총선 패배 뒤 외연확대 방안을 고민해온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내년 대선에 대비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등 진보적인 정치·사회단체와 연대를 통한 재창당을 모색하면서 비롯됐다. 당 지도부는 이날 전당대회에 재창당추진위를 설치하자는 안건을 내놓았다. 사실 외연확대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오랜 숙원이면서도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 당원 3만명 확보 목표는 현재 1만9천명선에서 정체돼 있다. 창당 1년을 맞았지만 유력한 연대 대상이었던 시민단체나 한국노총과의 결합도 여의치 않다. 농민 조직의 참여는 전무한 실정이다. 결국 “진보세력의 총결집을 통해 이땅의 일하는 사람들의 당을 만들겠다”는 민주노동당의 꿈은 가로막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민주노동당에게 희망을 주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진보진영의 한축을 형성하면서 전농과 한총련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전국연합이 지난 2월18일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 방안을 검토”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이때부터 전국연합과의 통합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권영길 대표는 “앞으로 전국연합과 정기적으로 만나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며 상당한 진전이 있음을 내비쳤다. 전국연합의 이번 결정은 진보진영 전체에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전국연합은 “진보정당 건설은 이땅 민중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취했다. 전농과 한총련도 민주노동당에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전국연합의 결정으로 진보진영 안에서 ‘진보정당 건설’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진 것이다. 전국연합과 연대가 가시화될 경우 민주노동당은 최대 취약점인 농민층을 파고들 여지가 생긴다. 또 한총련이 참여하면 당장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전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돈과 조직에서 열세인 민주노동당에 학생운동 내 최대조직인 한총련이 합세할 경우 전국에 걸쳐 엄청난 자원봉사자를 얻는 셈이다.”(박용진 민주노동당 강북을지구당 위원장) 이런 상황 판단 속에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전국연합과의 통합을 통한 재창당에 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날 전당대회에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진보정당 건설을 부정해온 전국연합과의 재창당 논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주장이었다. 사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당대회 이전부터 “당원들이 재창당 문제를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데다, 재창당을 한다 해도 진보정당의 대의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이질적 집단과의 결합인 만큼 선거에서 당론을 힘있게 결집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야기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재창당추진위 설치안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당대회를 통과됐다. 박흥순 기획위원장 등은 “당명은 당원 전체투표로 바꿀 것이며, 전국연합에 당의 이런 특수성을 설명하고 미래를 모색해보자고 합의했다”며 재창당에 회의적인 대의원들을 설득했다. 대의원들은 일단 이런 지도부의 뜻을 받아들였다. 정체성 혼란 우려하는 내부 목소리도 그러나 이런 결정에도 불구하고 앞날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전국연합이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방안 검토”를 선언했지만 이것이 곧바로 민노당과의 통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 호남지역 농민단체가 핵심인 전농이 민주노동당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민주당과의 관계설정 등 현실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전국연합과의 연대가 진보정당의 정체성 혼선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민주노동당 내부의 비관적 시각도 넘어야 할 과제다. 일부 통합반대론자들은 “무리하게 당을 통합할 경우 이탈세력이 생겨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 핵심 당직자도 “이번 당대회에서는 아직 논의단계인 만큼 재창당추진위가 인준됐지만, 조직간 통합 등 재창당 문제가 가시화될 경우 어떤 논란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재창당추진위 설치로 외연확대를 위한 닻은 올렸지만 순항을 장담할 수는 없는 셈이다. 권영길 대표는 이와 관련해 “전국연합과의 논의진행을 곧바로 민주노동당의 내용 변화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정책변질이 없는 속에서 충분히 논의하겠다. 통합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진보진영의 총결집을 훼손하는 것으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창당 1년을 넘긴 민주노동당은 이제 조직의 외연확대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