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개헌에서 유신헌법 답습한 현재의 헌법재판소 조직구성법이 문제… 국회·대법원·청와대의 사전 조율 만든 이상적 삼권분리, 재검토 필요하다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헌법재판소에는 헌법재판소장이 없고, 헌법재판소장 지명 과정에는 절차가 없고, 헌법에는 헌법다운 헌법이 없다. 정치만 있을 뿐이다. 최근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 전후의 파문을 요약하면 이렇다. ‘전효숙 사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1988년 헌법재판소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헌재 소장 공석 사태를 맞게 됐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과 임채정 국회의장이 세 야당(민주·민주노동·국민중심)의 중재안에 따라 절차상 문제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한나라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노무현 대통령의 지명 철회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버티고 있다. 결국 중립적이어야 할 헌법 기관이 정치 싸움에 휘말리는 꼴이 됐다. 절차상의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정략만 남았다. 재탕 청문회 논란, 국회법 개정의 실패 이런 파문은 여야 정치인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전 후보자가 재판관직을 사퇴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헌재소장에 지명되면서 헌법 111조 제4항(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헌법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을 어겼다는 데서 사태는 출발했다. 헌법의 조문에 충실할 경우, 지난해에 신설된 국회법 제65조 2의 제2항(헌법재판관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한다)에 따라 전 후보자가 일단 재판관으로 재지명된 뒤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를 치르고, 다시 또 헌법재판소장 지명자로서 인사특별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 참석해야 한다. 사람은 한 명인데, 한 번은 재판관 자격으로 또 한 번은 재판소장 자격으로 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 물론 헌법을 문자 그대로, 시간의 선후로 해석하지 않고 헌법 조항이 만들어진 의도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해석할 경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법사위 소속의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은 “헌법재판관직에서 사퇴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헌재 소장에 지명하는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고, 헌법 제94조에는 ‘행정 각 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지만 먼저 국무위원으로 임명한 뒤에 장관으로 임명하는 절차를 밟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윤영철·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들은 헌법재판관을 사퇴한 뒤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노 의원은 국회법 제65조 2의 제2항의 경우 “재탕 청문회 논란은 국회법을 개정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실수에서 불거진 것”이라며 “청와대와 여당이 사전에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예방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헌법학자들은 좀더 근원적인 데서 원인을 찾는다. 청와대의 실수 혹은 욕심이나 국회법의 미비, 정치권의 정략적 이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헌법재판소가 처음 생긴 1987년 개정 헌법에 이런 문제점의 씨앗이 뿌려져 있었다는 주장이다.
헌법학자 허영 교수(명지대 법학)는 “전효숙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헌법 자체”이라며 “오늘날 헌법재판관 구성 방법이 유신체제 때 헌법을 맹목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가 지적하는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해 헌법재판관을 선출하는, 이른바 ‘3:3:3법칙’(헌법 111조)이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사시 동기인 전 후보자의 임기를 늘려주려고 재판관에서 사퇴시킨 뒤 소장에 임명했다”고 주장하지만, 대법원과 사전에 조율했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다르다. 전 후보자는 2003년 8월 대법원장 몫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대법원장이 지명한 전 후보자를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할 경우 3:3:3이 4(대통령):3(국회):2(대법원)로 바뀌게 돼 결과적으로 헌법을 어기게 된다는 것이다. 재판관 신분을 유지한 채 소장이 되건, 사퇴를 하고 소장이 되건 문구대로 해석하면 위헌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귤에서 탱자로 변한 헌법재판소
이처럼 헌법재판관 및 헌법재판소장 임명과 관련한 헌법 조항은 오류를 안고 출발했다. 또 6년 임기가 헌법에 명시된 대법원장(105조 제1항)과 달리 헌법재판소장 임기는 명시되지 않아 이에 관해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다. 결국 부실한 헌법 조항이 ‘전효숙 사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독일의 모델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런데 재판소의 구성 방식은 유신정권 때의 헌법위원회에서 따왔다. 겉보기에 삼권분립 정신에 충실한, 그래서 지극히 민주적으로 보이는 ‘3:3:3 원칙’에는 보이지 않는 함정이 있다.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을 3명 지명하고, 국회에서는 적어도 여당 몫으로 1~2명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면 적어도 7~8명의 헌법재판관을 대통령의 입김을 발휘해 선출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9명 전원을 국회에서 임명하되 국회 제적 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정치세력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임기는 12년을 보장했다. 헌법학자인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학)는 “3:3:3법칙이 삼권분립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것은 명분일 뿐이며, 현실적으로 그것은 대통령이 국회에 대한 우위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허영 교수도 “3:3:3법칙 때문에 대법원과 청와대가 헌법재판소장 사퇴와 임명에 대해 사전 조율을 하는 잘못된 관행이 생긴 것”이라고 꼬집었다. 헌법재판소는 ‘귤’이 ‘탱자’가 돼버린 전형적인 사례인 셈이다.
이쯤 되면 1987년 헌법을 개정할 때 제대로 했으면 최근 같은 소모전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 헌법 개정에 참여했던 현경대 전 의원은 “개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염불(개헌작업)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권력구조)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헌법개정안 기초소위 위원장이었다. 개헌을 논의한 ‘8인의 정치협상’(여야 대표의원 각각 4명으로 구성)에서 의원들은 대통령 임기와 선거 일정 등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헌법 내용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나머지는 별다른 논의 없이 쉽게 타협할 수 있었다는 게 현 전 의원의 설명이다. 특히 헌법재판소 신설 및 헌법재판관 구성과 같은 것은 실질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부차적인 의제였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와 관련된 헌법 개정은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을 한다는 111조 제1항의 5와 113조 제2항을 제외한 나머지 조항들은 기존의 유신헌법 조문을 조금 변화시키거나 그대로 수용하는 선에 그쳤다.
대통령 직선이라는 권력구조에 관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과거의 유신헌법을 준용하는 식으로 여당과 야당은 헌법 개정 작업을 빨리 마칠 수 있었다는 얘기다. 1987년 민주항쟁에 밀려 직선제를 수용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개헌을 빨리 마무리짓고 선거 국면으로 들어가기를 원했다. 현 전 의원은 “(여야 간 이견이 없어서) 펜을 쥔 내가 신바람 나게 개헌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개헌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전두환도 김영삼도 김대중도 관심 없던 문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대법원 등 사법부의 이해도 헌법재판소 관련 헌법이 민주적인 방향으로 개헌되는 것을 방해했다. 당시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생기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위헌법률심사권과 위헌정당해산심사권, 탄핵심판권을 갖게 될 경우 정치에 휘말리는 부담은 피하길 원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를 신설하는 안을 찬성하면서도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 3명을 지명하는 기득권을 지켰다는 것이 헌법학자와 당시 정치권 인사들의 분석이다.
헌법재판소장이나 재판관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도 사는 데에 전혀 불편이 없거나 너무 빤해서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토지공개념, 2004년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 판결 이후 달라졌다. 그럼에도 개헌을 얘기하는 정치인들은 권력구조에 관해서는 말이 많지만 헌법재판소에 대한 언급은 극히 드물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헌법재판소에는 헌법재판소장이 없고, 헌법재판소장 지명 과정에는 절차가 없고, 헌법에는 헌법다운 헌법이 없다. 정치만 있을 뿐이다. 최근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 전후의 파문을 요약하면 이렇다. ‘전효숙 사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9월8일 오후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의 지명 절차를 둘러싼 여야 공방이 거듭되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결국 1988년 헌법재판소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헌재 소장 공석 사태를 맞게 됐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과 임채정 국회의장이 세 야당(민주·민주노동·국민중심)의 중재안에 따라 절차상 문제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한나라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노무현 대통령의 지명 철회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버티고 있다. 결국 중립적이어야 할 헌법 기관이 정치 싸움에 휘말리는 꼴이 됐다. 절차상의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정략만 남았다. 재탕 청문회 논란, 국회법 개정의 실패 이런 파문은 여야 정치인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전 후보자가 재판관직을 사퇴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헌재소장에 지명되면서 헌법 111조 제4항(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헌법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을 어겼다는 데서 사태는 출발했다. 헌법의 조문에 충실할 경우, 지난해에 신설된 국회법 제65조 2의 제2항(헌법재판관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한다)에 따라 전 후보자가 일단 재판관으로 재지명된 뒤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를 치르고, 다시 또 헌법재판소장 지명자로서 인사특별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 참석해야 한다. 사람은 한 명인데, 한 번은 재판관 자격으로 또 한 번은 재판소장 자격으로 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 물론 헌법을 문자 그대로, 시간의 선후로 해석하지 않고 헌법 조항이 만들어진 의도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해석할 경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법사위 소속의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은 “헌법재판관직에서 사퇴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헌재 소장에 지명하는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고, 헌법 제94조에는 ‘행정 각 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지만 먼저 국무위원으로 임명한 뒤에 장관으로 임명하는 절차를 밟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윤영철·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들은 헌법재판관을 사퇴한 뒤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노 의원은 국회법 제65조 2의 제2항의 경우 “재탕 청문회 논란은 국회법을 개정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실수에서 불거진 것”이라며 “청와대와 여당이 사전에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예방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헌법학자들은 좀더 근원적인 데서 원인을 찾는다. 청와대의 실수 혹은 욕심이나 국회법의 미비, 정치권의 정략적 이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헌법재판소가 처음 생긴 1987년 개정 헌법에 이런 문제점의 씨앗이 뿌려져 있었다는 주장이다.
2월1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1세기 선진한국, 열쇠는 개헌이다’를 주제로 한 개헌 연구 세미나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참석해 개헌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