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요?”의 승리와 “싹쓸이 막아달라”의 실패, 정치적 수사의 위력… 정권심판론, 세금폭탄론 등 상황 압축하는 말에 어린 과장법 따져야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오버하지 말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말이다. 그는 5·31 지방선거 유세 기간에 발생한 ‘피습 사건’을 한나라당과 자신의 지지세력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다가 자칫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했다. 그의 말은 ‘통’했다. 보수 진영은 과잉 반응을 조금씩 자제했고, 역풍없이 지방선거의 과실을 충분히 따먹을 수 있었다.
박근혜 피습사건에 ‘테러’ 명명하고… 박 대표의 말은 언론에 노출되기 전에 이 말이 어떻게 작용할지 복잡한 계산을 거치고서 나왔다.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오버하지 말라’는 말이 야당 대표의 품위와 무게를 떨어뜨리는 말은 아닌지 고민했다.
‘사건을 확대하지 말라’는 말로 바꾸려다가 ‘오버하지 말라’는 말이 박 대표의 의중을 나타내는 감각적인 언어라고 생각해 언론에 그대로 내보냈다”고 귀띔했다. “대전은요?”라는 박 대표의 또 다른 수사는 대전시장 선거의 판세를 뒤집었다. 열린우리당은 대패했다. 박 대표가 어디까지 계산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말은 정치적 셈법의 공정을 거쳐 생산됐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정치적 수사라고 평할 수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정치적 수사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하다.
한나라당은 피습 사건을 정치적 수사로 포장하면서 그 방식이 동의할 수 있는 성질인지 여부를 떠나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초반에는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에 9·11을 연상시키는 ‘테러’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붙여 국민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은연 중 야당에 대한 여당의 ‘대테러’로 비쳐지게 만들었다. ‘피습’이 아닌 ‘테러’를 당한 박근혜 대표에 대한 국민의 동정심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5·31에서 열린우리당 대패의 또 다른 원인은 이러한 일련의 정치적 수사 대결에서 밀린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싹쓸이만은 막아달라”는 구호는 열린우리당이 선거 막판에 어렵게 쥐어짜낸 것이지만 되레 역효과를 불러왔다. 거대 집권여당이 몸집에 맞지 않게 알량한 동점심에 기댄다는 매서운 비난이 돌아왔다. 탄핵 역풍에 꼬꾸라진 한나라당이 4·15 총선에서 “개헌저지선은 만들어달라”고 한 구호와 달리 이번엔 효과가 없었다. 또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정권심판론’은 열린우리당의 ‘부패한 지방권력 교체’보다 더 설득력 있게 유권자들에게 다가갔다. ‘세금폭탄’ 등 ‘메이드 인 한나라당’의 정치적 수사가 5·31 분위기를 휩쓸었다.
원래 ‘전략적 네이밍(naming·이름 붙이기)’은 열린우리당의 감각이 한나라당에 앞섰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을 ‘차떼기당’ ‘탄핵 정당’으로 몰아붙이면서 한나라당의 부패 이미지를 국민들의 뇌리에 단단히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부패가 있다는 것이 먼저고 이름은 그냥 갖다붙이면 되는 것 아니냐고도 할 수 있겠지만 효과적인 네이밍은 효과를 증폭시킨다. 이를 통해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 이후 한나라당에 대한 도덕적 비교우위를 자랑하며 적잖은 효과를 누렸다.
‘차떼기당’ 이름짓고 덕봤던 열린우리당
하지만 최근 증세·감세 논쟁에서는 한나라당에 밀리는 형국이다.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은 “우리의 정책은 괜찮은데 말로 다 까먹고 있다. 증세가 왜 필요하고 어떻게 세수를 확보할지 국민들에게 먼저 설명하고 이해시킨 다음에 적합한 정치 슬로건을 말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잘못된 정치적 수사가 불러온 실패와 성공적 정치적 수사란 게 단지 앉아서 이름만 붙이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채 의원은 “지방선거 패인의 50%는 열린우리당이 정치적 수사를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해서고, 나머지는 우리가 역할을 못하고 한나라당이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고진화 의원도 열린우리당의 전략적 네이밍이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주장하는 ‘증세’의 본질은 부유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에 투자하겠다는 것인데, ‘증세’라는 구체적이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세금이 증가하는 것처럼 묘사됐다. 이는 한나라당의 ‘감세 전략’에 오히려 말려든 꼴”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자신을 가장 아프게 자극해온 ‘차떼기당’이란 말에서 ‘전략적 네이밍’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그리고 전략적 정치 수사를 활용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병국 의원은 “차떼기당이라는 말을 듣기 이전에 한나라당은 네이밍 작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지금은 의원 개개인뿐만 아니라 정책위원회와 홍보기획본부 차원에서 네이밍 작업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금폭탄론, 정권심판론처럼 함축적인 표현을 통해 상대방의 정책이나 이슈를 무력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광고기획사 등 전문가에게 카피를 의뢰하기도 한다”며 당 차원에서 네이밍 작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과 정치적 입장을 국민들에게 마케팅하기 위해 정치적 수사, 즉 정치광고 카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표 피습 직후 사건을 국민에게 알리는 과정에서도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수사의 효과에 대한 고민과 학습의 ‘성과’가 있었다. 이계진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 당시 사건을 ‘술 취한 사람의 우발적 범행’으로 규정지으려 했다. 이에 대한 역공 전략으로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라는 강렬한 느낌의 용어를 선택하게 됐다. 이 말이 여론에 먹혀 말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1.6%에 적용되는 세금이 ‘폭탄’으로 둔갑
하지만 정치적 수사가 안고 있는 표현의 과장을 어떻게 볼지 따져봐야 한다. 표현의 과장은 본질을 왜곡하기 십상이다. 말이란 갖다붙이기 나름이지만 아무리 되짚어봐도 박 대표에 대한 피습을 ‘테러’라고 보긴 어렵다. 테러란 말은 정치적 목적을 노리고 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피습 사건을 테러로 이름 붙인 것은 본질을 왜곡하고 과장한 측면이 있다. 실제 검경합동수사본부에서 피습 사건은 지충호씨 단독 범행으로 결론났다.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조세정책을 비판하면서 쓰고 있는 ‘세금 폭탄’이란 말도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폭탄’이란 말은 무차별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세금 폭탄이라고 하면 국민의 다수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보면 올해 종합부동산세 부과대상인 공시가격 기준 6억원 이상 공동주택은 14만704가구로 전국 871만여 가구의 ‘1.6%’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세금 폭탄이라는 말을 확성기로 끊임없이 틀어대면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모두 세금이 급격히 늘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정부 세금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좋지만 국민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면서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세금폭탄론, 대북 퍼주기 등의 말이 선동 효과, 베일(veil) 효과를 보여준다”며 정치 수사의 부정적 특성에 주목했다.
자신의 이해를 한껏 반영해 현상을 압축하는 정치적 수사는 말의 전파가 빠른 시대에서 정치권의 큰 무기다. 한편으로 복잡한 설명을 다 들을 수 없는 국민들의 처지에서 상황을 압축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수사의 필요성도 크다. 그것이 때론 현실을 왜곡하고 과장할지라도 그 효과가 눈에 보일 만큼 크기 때문에 생명력 또한 좀처럼 줄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치적 수사에 대한 책임을 계속 회피한다면 효과는커녕 국민들의 신뢰도 잃을 수 있다.
박근혜 피습사건에 ‘테러’ 명명하고… 박 대표의 말은 언론에 노출되기 전에 이 말이 어떻게 작용할지 복잡한 계산을 거치고서 나왔다.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오버하지 말라’는 말이 야당 대표의 품위와 무게를 떨어뜨리는 말은 아닌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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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5월29일 대전시 은행동에서 5,31 지방선거 지원 유세에 나서고 있다. "대전은요?"라는 박근혜 대표의 정치적 수사가 대전 시장 선거의 판세를 뒤집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장 등 지도부들이 5월31일 서울 영등포 중앙 당사 선거상황실에서 선거개표결과를 보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싹쓸이를 막아달라"는 호소도 지방선거의 참패를 막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