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김영식씨, 형 종료 통보 없었다며 투표소에서 거부당해…18년 동안 이상 없이 투표했는데 이제 와서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여느 때와 다름없이 투표소 1등이었다. 오전 6시30분, 투표소가 주민들을 맞을 준비를 막 끝낸 뒤였다. 어떤 후보를 찍어야 할지 마음을 정한 지 오래다. 18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투표를 해온 덕에 모든 게 낯익은 풍경이다. 투표 관리원에게 아무 생각 없이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관리원은 선거인명부를 뒤적이더니 휑하니 주민등록증을 돌려줬다. “할아버지, 투표권이 없네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이제껏 이런 일이 없었는데…. 뒤에서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더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장기수들은 모두 투표
김영식(72) 할아버지는 지난 5월31일 지방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못했다. 남들처럼 어디 놀러가느라 못한 게 아니다. 서울 관악구 봉천6동 서울미술고에 마련된 투표장에 들어갔다가 어이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할아버지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할아버지는 남한 사회가 자신에게 붙여준 비전향 장기수라는 딱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달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26년 동안의 옥살이를 마친 1988년부터 줄곧 투표를 해왔지만, 한 번도 못하게 하는 사람도,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번만큼은 투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봉천6동의 선거담당자는 “반공법 위반으로 투표권이 없는 결격자다. 나머지 사항은 대검찰청이나 본적지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본적지인 대전 중구청 호적계의 설명도 이해하기 어렵다. 1963년 11월7일자로 대법원에서 반공법 혐의로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은 뒤 기소를 맡은 수도방위사령부 군법회의 검찰부에서 감형이나 사면 등 후속 조처 통보가 없었다는 것이다. 중구청 호적담당자는 “선거일에 하루 앞선 5월30일까지 형 종료가 된 사람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만 무기징역을 받은 김영식씨에 대해선 언제 출소했는지 사면은 받았는지 등 아무런 통보가 없다”며 “그래서 수형인명표에 따라 선거 부적격자로 관할 구청에 통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무기징역을 사는 셈이다.
하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출소한 지 이미 18년이나 됐다. 가깝게는 지난 2004년 4·15총선에서도 투표했다. 낙성대 만남의 집에 머무르는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은 모두 투표를 했다. 권오현 양심수후원회장은 “행정착오가 아닌가 싶지만 공안에서 장난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미군 훈련 반대 시위 때문인가
언뜻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긴 하다. 지난 4월 말 태안반도 만리포 미군상륙작전 훈련장을 찾아가 “전쟁 연습을 반대한다”고 시위를 벌인 것이다. 그 일로 지난주 경찰서에서 간단한 조사까지 받았다. 경찰에서 할아버지에게 벌금이 나올 수 있다고 살짝 귀띔했다. 2002년엔 30여 명의 비전향 장기수 동료들과 함께 북송 신청을 한 것도 왠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관에서 내건 반공법 위반 사유와는 거리가 멀다.
김영식 할아버지는 “글쎄, 관에서 내가 미워서 뺐는가 싶기도 하지만 누가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이 남지 않은 생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해 살 수 없는 할아버지가 남한 사회에 대한 신뢰를 모두 버리진 않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선거 때마다 투표장을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표를 하면서 좀더 나은 사회로 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재미마저 뺏겼다.
김영식(72) 할아버지는 지난 5월31일 지방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못했다. 남들처럼 어디 놀러가느라 못한 게 아니다. 서울 관악구 봉천6동 서울미술고에 마련된 투표장에 들어갔다가 어이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비전향 장기수인 김영식 할아버지가 서울 낙성대 만남의 집 뜰 앞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후손을 위해 키웠다는 호두나무를 자랑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