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개정을 향해 달리는 여야 소장파 의원들, 당론 뛰어넘는 결과 나올까
사진/지난 1월29일 열린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연수회. 두당의 소장파 의원들은 이 자리에서 “국가보안법의 자유투표제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이종근 김경호 기자) 지난 1월29일 경기도 용인 중소기업개발원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수회장. 분임토의에 나선 이미경 의원이 “국보법을 3년간 끌어왔는데 이번에 안 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당내 공론화는커녕 자민련과의 공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의원입법으로 안을 내 크로스보팅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같은 날 한나라당 연수회가 열린 천안 중앙연수원에서는 안영근 의원이 “국보법 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유투표를 허용해 달라. 당내에 당론을 따르지 못하고 양심을 고수하려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으면 당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만약 자민련이 집단부결표를 던지면…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본격 요구하고 나섰다. 방법은 자유투표(크로스보팅). 논리는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의 경우 여야를 막론하고 당내에서도 시각차가 엄연한 이념과 신념체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론보다는 자유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 “국보법은 당내에서 화해할 수 없는 이견이 존재하는 문제이다. 예컨대 의원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조금씩 양보해서 의견조율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국보법은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에 절충이 어렵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의원 각자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
여야 소장파 의원들은 일단 행동이 결정되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설날인 지난 1월24일 서울 청진동의 한 해장국집에서 김희선·김성호·송영길·장성민(민주당), 김원웅·안영근·서상섭(한나라당) 등 여야 소장파 7인방이 모여 국보법 개정안 공동발의와 자유투표 추진 발의 방침에 의견을 모은 데 이어 여야별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이 뒤따랐다. 민주당쪽에서는 이재정·이미경·송영길·임종석 등 소장파 의원 11명이 2월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모임을 가진 뒤 자유투표제로 국가보안법을 처리할 것을 결의했다. 한나라당도 초선의원 모임인 미래연대가 2일부터 2박3일간 제주도에서 수련회를 갖고 국가보안법 개정을 위한 자유투표제 추진방안 등을 논의하는 등 국보법 개정 공론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여야 소장파 의원들의 움직임에 대해 여야 지도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경우 소장파 의원들의 자유투표 요구가 거세지자 김중권 대표가 지난 1월31일 당무회의에서 “국가안보 관련 법안에 대해 집권여당의 의견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직접 제동을 걸었다. 국보법이 정치권의 핫이슈로 등장한 것은 지난 1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이 정부업무평가 보고에서 “북한의 노동당 규약 개정과 관계없이 조속히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였다. 김 대통령의 뜻이 분명해지자 민주당은 국보법 개정 8인소위를 본격 가동하며 국보법 개정안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이 내부 논란만 거듭하며 좀처럼 국보법 개정안을 확정하지 못하는데다, 공동여당인 자민련이 개정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나서면서 국보법 개정논의는 벽에 부딪혔다. 국보법 2월 개정은 사실상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인 것이다. 김 대표도 2일 “급할 것 없다. 충분한 국민의견 수렴과정이 필요하다. 3년간 끌어온 일을 한달 만에 쉽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국보법 조기개정 포기를 시사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부에서 자유투표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으로서는 어렵게 공조를 복원한 자민련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당 관계자는 “자유투표로 할 경우 어떤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 판단이 정확하게 서지 않는데다, DJP공조의 첫 작품이 결국 자유투표라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자유투표를 할 경우 자민련은 집단 부결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도부는 판단하는 것 같다. 공연히 자민련과의 공조체제를 훼손시킬 불씨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당내 지도력 실추에 따른 당 장악력 약화 가능성 등도 고려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당지도부가 적극 나서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자제를 촉구할 경우 당내 반발은 물론 당의 개혁적 이미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좀더 수준높은 여야 정책연대의 계기로
한나라당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국보법 문제는 최대의 아킬레스건. 자칫 잘못하다가는 당내 분란에 따른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기부 예산 문제로 여당과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당의 단합된 모습이 절대 필요하다. 이회창 총재도 이런 심각성을 우려해 지난 1월28일 미래연대 소속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국보법에 대해서는 시간을 갖고 별도의 논의를 해보자”고 여지를 남겼다. 국보법 개정 불가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다간 29∼30일 열리는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수회에서 보·혁 대결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언제까지 미뤄둘 수만은 없다는 데 이 총재의 고민이 있다. 잠시 시간은 벌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이 총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보증수표를 버리고 국보법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 총재의 권위에 직접 도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부분 소장파들의 요구는 우선 당론을 열어달라는 것인데, 일단 당론을 열어주면서 설득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큰 분란이야 없을 것”이라면서도 “자칫 잘못 다룰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당이 다시 이념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은 언제든지 남아 있다”고 경계했다.
여야 소장파들은 여야 지도부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단 국보법에 대한 자유투표를 강행할 태세다. 양당 소장파 의원들은 보안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이 당별로 수렴되는 절차를 거친 뒤 2월 중순께 국보법 개정에 찬성하는 소장파 의원들의 여야 합동모임을 열 계획이다. 또 국보법 관련 공청회도 열어 국보법 개정 논의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해 개혁적 소장파 의원들의 단일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이번 모임을 가칭 ‘국회독립을 위한 의원연대’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협의할 계획”이라며 “향후 이 모임을 통해 인권법과 부패방지법 등 개혁입법, 그리고 영세상인임대차보호법 등 민생법안 등에 대해 당적과 관계없이 정책연대를 추진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장파 의원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이들의 적극적인 추진에도 자유투표에 의한 국보법 개정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우선 현실적으로 이런 당지도부의 저지를 뚫고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자유투표에 부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래연대 소속인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우선 여야 소장파 의원들끼리만 나서 자유투표하려 한다면 백전백패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안 되는 점이다. 지난해 송석찬 의원이 제출했던 국보법 폐지안도 지금껏 낮잠만 자고 있다”고 말했다. 소장파 의원들끼리 개정안을 내더라도 상임위에서 제동이 걸려 본회의에는 상정조차 안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안법 개정, 단일안 마련이 급선무
여야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 처한 위치가 다르다는 점도 운신의 폭을 제한한다.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도 보안법 개정의 폭에서 차이가 있다. 일단 단일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쉽지 않은 작업이다. 또 논의과정에서 개정안에 대한 더 많은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개정의 수준을 크게 낮추게 되면 법개정의 취지가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민주당 초선의원)
국보법 개정에서 의원들 사이에 이견이 많은 부분은 7조(찬양·고무 등)의 처리 문제. 보안법 구속자들의 90% 이상이 이 조항에 따른 것이다. 예민한 문제인 만큼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도 전면 폐지에서부터 일부 개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 가운데서도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근거가 되는 7조 3항(이적단체구성)의 경우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찬양·고무의 목적을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하는 선에서 보완하자는 방안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그동안 여야 소장파 의원들간에 쌓인 감정상의 앙금도 걸림돌이다. 실제 여야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는 지난해 16대 국회의장 선거에서 자유투표를 다짐했지만, 실제 투표결과는 당론을 거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9월 여야간 벼랑 끝 대치로 국회가 공전을 거듭하던 당시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국회 정상화 방안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댔으나, 국회파행에 책임있는 양당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자는 주장을 둘러싸고 여야간 이견을 보이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볼썽사나운 모습만 보여줬다.
전일적인 당론투표가 일상화된 국내 정치풍토에서 과연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국보법 자유투표 추진을 통해 새로운 정치문화 형성의 동력을 얻어나갈지 주목된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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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소장파 의원들은 일단 행동이 결정되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설날인 지난 1월24일 서울 청진동의 한 해장국집에서 김희선·김성호·송영길·장성민(민주당), 김원웅·안영근·서상섭(한나라당) 등 여야 소장파 7인방이 모여 국보법 개정안 공동발의와 자유투표 추진 발의 방침에 의견을 모은 데 이어 여야별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이 뒤따랐다. 민주당쪽에서는 이재정·이미경·송영길·임종석 등 소장파 의원 11명이 2월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모임을 가진 뒤 자유투표제로 국가보안법을 처리할 것을 결의했다. 한나라당도 초선의원 모임인 미래연대가 2일부터 2박3일간 제주도에서 수련회를 갖고 국가보안법 개정을 위한 자유투표제 추진방안 등을 논의하는 등 국보법 개정 공론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여야 소장파 의원들의 움직임에 대해 여야 지도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경우 소장파 의원들의 자유투표 요구가 거세지자 김중권 대표가 지난 1월31일 당무회의에서 “국가안보 관련 법안에 대해 집권여당의 의견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직접 제동을 걸었다. 국보법이 정치권의 핫이슈로 등장한 것은 지난 1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이 정부업무평가 보고에서 “북한의 노동당 규약 개정과 관계없이 조속히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였다. 김 대통령의 뜻이 분명해지자 민주당은 국보법 개정 8인소위를 본격 가동하며 국보법 개정안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이 내부 논란만 거듭하며 좀처럼 국보법 개정안을 확정하지 못하는데다, 공동여당인 자민련이 개정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나서면서 국보법 개정논의는 벽에 부딪혔다. 국보법 2월 개정은 사실상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인 것이다. 김 대표도 2일 “급할 것 없다. 충분한 국민의견 수렴과정이 필요하다. 3년간 끌어온 일을 한달 만에 쉽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국보법 조기개정 포기를 시사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부에서 자유투표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으로서는 어렵게 공조를 복원한 자민련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당 관계자는 “자유투표로 할 경우 어떤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 판단이 정확하게 서지 않는데다, DJP공조의 첫 작품이 결국 자유투표라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자유투표를 할 경우 자민련은 집단 부결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도부는 판단하는 것 같다. 공연히 자민련과의 공조체제를 훼손시킬 불씨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당내 지도력 실추에 따른 당 장악력 약화 가능성 등도 고려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당지도부가 적극 나서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자제를 촉구할 경우 당내 반발은 물론 당의 개혁적 이미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좀더 수준높은 여야 정책연대의 계기로

사진/여야 소장파 의원들은 “국가보안법은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원 각자의 양심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권단체의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단식농성.(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