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아직도 왜 그 앞에서 설설 기는가… DJ-YS-이회창의 묘한 삼각관계
지난 1월31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는 아침부터 부산했다. 총재단회의를 마친 권철현 대변인은 곧장 기자실로 내려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영일 의원의 발언은 개인의견이며, 당지도부나 이회창 총재와는 사전 의논없이 나온 것이다. 우리 당은 김 전 대통령과 더 긴밀한 대화와 협력을 원한다. 이회창 총재는 ‘적절하지 못한 때 왜 그런 발언을 해 평지풍파를 일으키느냐’고 질책했다….”
민주당, 거의 언급을 피하다
전날 김 의원이 안기부예산 선거자금 전용사건과 관련해 “강삼재 의원이 ‘YS를 물고 들어갈 수 없어 검찰에 출두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YS쪽에서 “이 총재의 해명이 없으면 이 총재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김영일 의원도 파문이 확대되자 서둘러 해명자료를 내고 “강 의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추정한 것”이라며 “본의 아니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이회창 총재를 난처하게 했거나 두분 사이에 오해가 발생한다면 결코 원치 않았던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한 당직자는 혀를 끌끌 차며 자조했다. “과연 YS가 세긴 세군. YS의 한마디에 제1야당이 법석을 떠는 것을 보니. YS는 정치권에서 건드릴 사람이 없군. 가히 신성불가침이야…”. 사실 YS를 둘러싼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YS의 표정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한나라당만이 아니다. 검찰의 태도도 모호하다. 검찰은 95년 지방선거와 96년 15대총선을 앞두고 안기부예산 1197억원이 당시 집권당이던 신한국당으로 흘러들어간 혐의를 잡고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을 구속한 데 이어 1월22일 96년 총선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던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을 국고 등 손실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1월27일 YS의 차남 현철씨의 측근 박태중 전 (주)심우 대표를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으나, 크게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게 검찰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검찰의 칼끝이 YS를 겨냥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안기부예산의 선거자금 전용을 둘러싸고 DJ-YS-창(이 총재) 사이에 형성된 묘한 삼각관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권은 왜 YS에 그렇게 관대할까, 또 이회창 총재는 왜 YS에게 매몰차지 못한 것일까. 민주당도 YS에 대해서만은 한수 접어왔다. YS가 DJ를 거세게 비판할 때도 거의 응대를 하지 않았다 사실 YS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DJ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는 등 공격의 고비를 늦추지 않았다. 지난 1월13일에는 “(내가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 DJ 비자금을 하루도 안 빼고 조사했으면 (DJ)는 영국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며 DJ 비자금설을 거론하고 나섰다. 또 강삼재 의원이 기소된 1월22일에는 “이번 수사는 나에 대한 일관된 정치보복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의 말로를 명심하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수모 감수하는 이회창
그러나 민주당은 거의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김중권 대표도 “96년 당시 신한국당 선대위원장이었던 이회창 총재도 안기부 돈의 유입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이 총재를 겨냥했을 뿐, YS를 직접 거론하며 공격한 적은 거의 없다. 지난 1월31일 김영일 의원 발언파문으로 한나라당과 상도동 사이에 설전이 오갈 때도 김영환 대변인은 “(김 의원의 발언은) YS의 정치자금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적 관측에서 나온 말”이라고 YS쪽을 두둔했다.
사실 검찰수사 결과 신한국당으로 빼돌린 국가예산 1197억원을 집권당 사무총장과 안기부 차장 두 사람이 의논해 빼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수사가 진행될 수록 YS에게 유리할 가능성은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여권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DJ가 YS에 대해 사법적 조처를 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YS는 위기를 느끼면 느낄 수록 강력한 정면돌파로 맞받아쳐 살길을 모색하는 스타일이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 YS가 모질게 대드는 것은 그만큼 위기의식이 크다는 증거 아니겠느냐. 이를테면 YS로서는 죽기 아니면 살기인 것이다. 그러나 노벨평화상도 받고 세계적 인권지도자 반열에 오른 DJ로서는 YS를 건드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공연히 정치보복이라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를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YS를 잡아넣으면 전직 대통령은 모두 사법처리되는 잘못된 관례가 이어지게 된다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이다”고 말했다.
또 60년대부터 정치생활을 해오며 협력과 경쟁을 거듭하며 쌓인 동류의식 같은 것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DJ로서는 YS를 군부출신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다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오랜 세월 같이 정치를 해오며 함께 민주화투쟁를 하기도 하지 않았느냐. 그들만의 정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회창 총재는 왜 YS에게 수모를 감수하는 것일까.
사실 한나라당은 이번 안기부예산 전용사건으로 소속 의원들이 동요하는 위기를 겪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소속 의원들 특히 영남의원들이 안기부 자금 때문에 닦달을 받고 있다. 선거자금을 유용했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구에서는 그렇게 많이 돈받아 가지고 그동안 그렇게 인색하게 굴었느냐는 소리도 듣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저쪽에서는 개별의원 명단도 깔 수 있다고 은근히 흘리고 하니까 소속의원들이 압박을 느낀다”고 전했다. 안기부예산 전용 사건으로 주위로부터는 돈의 사용처를 놓고 의심받고 또 수사당국으로부터는 내역공개 압력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TK와 PK의 갈등기류
이 총재의 한 측근은 “이 총재가 ‘3김청산을 주장하면서 YS를 방문하느냐’는 당 안팎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28일 YS를 찾아간 것도 이 문제 때문이었다. YS가 털어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별 성과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YS가 이 총재 요구대로 털어주면 YS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인데 그렇게 하겠느냐. YS가 죽게되면 이 총재도 끌고 들어갈 가능성이 더 많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 고민은 문제의 돈에 대해 모른다는 점이다. 어디서 왔고, 어떤 성격의 돈인지 알지 못한다. 이 총재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그저 안기부 자금이 아니라는 것, 여당 때 여기저기서 받은 정치자금이라는 것 정도 수준이다. 칼자루는 강삼재 의원과 YS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이 돈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방법을 강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을 뒤흔들 폭발성을 지닌 핵폭탄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사실 지난 29일 불거진 김영일 의원의 발언 파문도 이런 당내 사정과 함께 TK와 PK의 갈등기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어났다. 김 의원은 이날 천안연수원에서 “강삼재 부총재가 검찰소환을 받던 날 밤 이회창 총재와 당 율사 출신 의원들 앞에서 진실을 밝히려면 김 전 대통령을 물고들어갈 수 밖에 없고 직권당 사무총장이 무덤까지 끌어안고 가야 할 정치자금문제를 일일이 밝힐 수 없다는 이유로 검찰 불출두 의사를 못박았다”며 “YS쪽에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YS가 나서서 당에 쏠린 의혹과 함께 소속 의원들의 부담을 털어줘야 한다는 당내 분위기를 반영한 발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총재쪽은 YS쪽의 반발에 황급히 진화에 나서는 굴욕을 맞보고 말았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이 총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 총재의 솔직한 심정은 일단 그냥 조용히 잦아들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상도동 자택에서 방문객들로부터 새해인사를 받는 YS. 그를 둘러싼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이용호 기자)
이 과정을 지켜보던 한 당직자는 혀를 끌끌 차며 자조했다. “과연 YS가 세긴 세군. YS의 한마디에 제1야당이 법석을 떠는 것을 보니. YS는 정치권에서 건드릴 사람이 없군. 가히 신성불가침이야…”. 사실 YS를 둘러싼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YS의 표정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한나라당만이 아니다. 검찰의 태도도 모호하다. 검찰은 95년 지방선거와 96년 15대총선을 앞두고 안기부예산 1197억원이 당시 집권당이던 신한국당으로 흘러들어간 혐의를 잡고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을 구속한 데 이어 1월22일 96년 총선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던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을 국고 등 손실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1월27일 YS의 차남 현철씨의 측근 박태중 전 (주)심우 대표를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으나, 크게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게 검찰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검찰의 칼끝이 YS를 겨냥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안기부예산의 선거자금 전용을 둘러싸고 DJ-YS-창(이 총재) 사이에 형성된 묘한 삼각관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권은 왜 YS에 그렇게 관대할까, 또 이회창 총재는 왜 YS에게 매몰차지 못한 것일까. 민주당도 YS에 대해서만은 한수 접어왔다. YS가 DJ를 거세게 비판할 때도 거의 응대를 하지 않았다 사실 YS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DJ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는 등 공격의 고비를 늦추지 않았다. 지난 1월13일에는 “(내가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 DJ 비자금을 하루도 안 빼고 조사했으면 (DJ)는 영국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며 DJ 비자금설을 거론하고 나섰다. 또 강삼재 의원이 기소된 1월22일에는 “이번 수사는 나에 대한 일관된 정치보복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의 말로를 명심하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수모 감수하는 이회창

사진/안기부예산 불법전용 혐의로 구속되는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 그러나 검찰의 칼끝이 YS까지 겨냥하리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김진수 기자)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